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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배 장군(짜빈동 9중대 1소대장) 회고사짜빈동전투 전승 기념식
신원배 장군(짜빈동 9중대 1소대장)

오늘의 청룡부대, 실제 작전 중이다.

월남전 당시 청룡부대의 전선은 나트랑-츄라이-호이안이었지만 오늘의 청룡부대 전선은 김포반도-강화도-서북도서로 이어져 있고 57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룡부대는 실제 작전중이다고 할 수 있겠다. 한강 하구에서 불과 1.2Km 밖에 안되는 곳의 북한 김정은이 감히 엄두도 못내고 있는 것은 우리 해병대가 있기 때문이다.

57년 전 구정이 오늘과 같은 날

1967년 2월15일 짜빈동전투 전승의 날 닷새 전인 2월 10일이 구정이었는데 57년 후인 금년에도 꼭같다. 57년전 연합군과 월맹간 합의로 구정 휴전 기간 3박 4일을 지낸 2월15일 04시 월맹정규군과 베트콩이 합세한 2,400여 명의 1개 연대병력이 그 1/10도 안 되는 우리 청룡9중대를 전멸시키기 위해 공격해왔다. 그 때의 공격 양상이 마치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전술을 그대로 답습하여 제1파) 공격에 이어 제2파가 그리고 제3파가 물밀 듯 밀려오는 인해전술의 파상적 공세를 해 왔다.

적 병력의 1/10이 안되는 청룡이 이길 수 있었던 세 가지 요인

그러함에도 우리 청룡 9중대가 이길수 있었던 요인은 세가지였다. 첫째 캄보디아, 라오스 국경 3km 전방 서북쪽에 적 병력이 집결해 있는 정보를 알았다는 것, 둘째, 중대 외곽에 화지점, 다섯 곳에 미리 좌표를 설정해놔서 적들이 들어오면 그 화지점을 중심으로 좌,우 +,- 얼마 또는 전,후 +,- 얼마 등만 불러주면 신속하게 포탄이 날아오게 하는 화염 벨트를 설정해 놓았다는 것. 셋째, 적들이 진지내로 진입해올 경우를 대비하여 각 진지에는 수류탄과 실탄을 충분히 준비한 동시에 크레모어를 원형 철조망 근처에 설치해 적이 넘어오는 대로 폭파시키는 등 만반의 전투준비를 해놨기 때문이었다. 그러함에도 적2개 중대 이상 상당한 병력이 진지 내로 들어와 피나는 혈투를 벌여야 했다. 새벽 7시 30분 여명이 밝아오자 적들이 퇴각하고 전투가 종료된후 대원들을 파악했는데 아군은 전사 16명, 전상자 33명의 손실을 봤다.

상상도 못할 해병대정신, 짜빈동 영웅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학현 병장이 안보여서 포로로 잡혀갔는가 했는데 구석에 이병장이 몇 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 있지 않은가? 이병장의 시체를 들어보니 자신이 쏘던 M1소총을 3등분하여 적군이 다시 사용못하게 한 후 깔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故) 이병장은 그 소총을 적군이 아군에게 쏘지 못하게 하고 전사한 것이다, 정말 장렬한 죽음이었다. 배장춘 분대장의 경우 LMG 총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사격하다가 적군이 들어와 공방전이 벌어지자 적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LMG 몸통과 총열을 분해해서 어깨에 메고 나오는 것 아닌가. 그의 어깨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화상을 입었다. 그 광경은 평시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대원들의 임전무퇴 필사즉생 해병대정신이었고 승전의 요인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그날의 짜빈동 영웅 여러분이 자랑스럽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몇일 전, 해병대를 방문해서 “정말 해병대를 신뢰한다” 말씀하신 것에 감사드리며 전적으로 동감한다. 따라서 만약 김정은이 공격해오면 그날이 김정은이 살아있지 못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57년 전 짜빈동 전투에서 선배 해병대의 임전무퇴 해병대의 용감한 정신 DNA가 오늘의 후배 해병들에게 분명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유명을 달리한 그날의 전사자 여러분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린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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