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전우소식
해병대 큰 별, 해병대의 역사,해병 1기 이봉식 회장 타계하시다.
故 이봉식 회장, 해병 1기

지난 3월 22일 12시15분 이봉식 해병1기 회장이 포항세명기독병원에서 노환으로 95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고인은 생전에 김영환 前포항시해병대전우회장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그 내용은 “포항시해병대 전우회장(葬)으로 해달라. 그날 해병대사령관 제1사단장, 교육훈련단장, 포항시장, 국회의원 조화가 꼭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해병대 위상이 설것이다” 말씀했다고 했다. 하지만 유족 (이기홍, 성실, 인실, 현실) 4남매는 아버님을 가족장으로 모시길 원해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김계환 사령관은 제1사단장과 교육훈련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인의 가시는 길을 정중히 모셔주기 부탁한다는 애통함을 교환했다고 한다. 고인은 일 개월 전인 지난 2월22일 포항시해병 대전우회장 이·취임식에 참석하여 축하하고 중간에 부축을 받으며 퇴장했다 그날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00만 해병전우의 뜻을 모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故 이봉식 옹의 영정

1931년 2월 19일 충북 보은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 옹은 18세가 되던 해인 1949 년 4월 15일 군에 입대했다.
이후 해병대 1기로 지원했다. 그는 1950년 9월 해병대 제1연 대 3대대 10중대 1소대 1분대장으로서 12명의 분대원을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고인은 해병대 창설 당시 열악한 장비와 380명의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배고픔을 견디며 조국을 수호했다.
이 옹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배에서 내려 해안선에 모였을 때 함상 갑판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파이프를 문채 참모들과 작전을 논의하는 더글러스 맥아 더(1880~1964) 장군을 직접 봤다고 회상했다.
또 중동부전선인 가리산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쇄골을 부상 당하고도 4개월 만에 원대 복귀를 자청해 1951년 6월 양구 도솔산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인민군이 점령 중이던 24개 고지를 되찾는 승리를 거뒀고, 이승만(1875~1965)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 친필 휘호를 받았다.
인천상륙작전 전에 1950년 8 월 해병대 단독 작전이었던 통영 상륙 작전에도 참전했다. 이 때 퓰리처상을 받은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1920~1966)가 '해병대는 귀신도 잡을 수 있는 군대(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라고 표현한 것 이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의 어원이다.
이밖에도 서울수복작전 등 6·25전쟁의 주요 전투들에 참전한 이 옹은 이후 해병대 신병훈련소 훈련교관으로서 후배 해병을 양성하다 1962년에 전역했다.
고인은 최근까지 대한민국 6·25참전 유공자회 경상북도지부 고문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6 월에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을 찾아 강연하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빈소는 경북 포항 세명기독병원 4층 VIP실에 마련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했다. 유족은 1남3녀로 이성실·이인실·이현실·이기홍 (아들)씨와 사위 이문길씨 등이 있다. 발인은 24일 8시 30분이며 장지는 경북 국립영천호국원이다.        【신재은 편집팀장】

故 이봉식 옹을 운구하는 해병대 장병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경북 포항 영일만 해상 마라도함에서 열린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을 마치고 행사에 참석한 해병대 1기 이봉식 옹과 인사하고 있다.
이봉식 옹(해병1기,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이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김태성 해병대사령관(사진 왼쪽에서 네번째)과 행사장에 동반입장하고 있다.
해병대 1기 이봉식 용사 충혼탑에서 김병욱 국회의원과
잠실야구장에서 2022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경기에서 6.25 참전용사 이봉식 옹이 시구를 하고 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적해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