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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전술 이론가, 차수정 장군(해병 준장, 해병대사관 12기) 별세하시다

차수정 장군

(해병 준장,해병대사관12기)

차수정 장군이 지난 10월 14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10월 17일 분당 차병원에서 발인하여 오산 선영에 모셔졌다. 차수정 장군은 6·25와 월남전을 참전한 해병대 전술이론가로 널리 알려진 장군이다. 1952년 7월, 6·25 전쟁기에 해병대사관 제12기로 입교 53년 9월 해병소위로 임관해 해병 제1전투단 2대대 7중대 2소대장으로 명 받아 영천 및 장단지구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휴전 후 1962년 도미 유학해 미 해병수송학교 고등군사반과 미 해군 노포크기지학교 교관반 수료 후 귀국하여 1966년 청룡 2대대 작전장교로 파월 북극성작전과 용안작전을 마치고 3대대 부대대장으로 투망작전과 짜빈동작전을 체험했다. 그 후 6여단장과 해본 해병참모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친 후 해병 준장으로 예편했다. 슬하에 해병대 뒤를 이은 아드님, 차기환(해간67기), 손자 차재화(해병1125기) 외 따님(정희, 민애, 미현, 미진)과 사위(박호철, 김진민, 설주원) 손자녀(차재희, 김양우, 김양하, 박수연, 박선영, 설효진, 설효정) 그리고 배우자 김희수 님이 있다.

<경력> 국방부 군사위원, 재향군인회안보연구실장, 한국전력기술(주), 상임감사, 대한민국6·25참전자회 부회장

<훈·포장> 화랑무공훈장, 월남금성훈장, 엽성훈장, 보국포장, 3·1장, 천수장 외 다수

 

실력파 장군, 이정윤 (예,준장, 해사19) 장군 타계하시다

이정윤 장군

지난 9월 29일 이 82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102일 발인하여 국립현충원에 모셔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연정, 子 이원, 이준, 子婦, 박정윤, 최송이, 孫子·女 이종우, 이승현, 이현지를 남겨놓고 떠나셨다.

이정윤 장군은 해병대 싱크탱크라고 알려진 해병대전략연구소를 지난 2004년 종자돈 5천만 원을 투자하여 설립, 초대 이사장으로 재임 후 명예연구소장으로 있었다. 이 장군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대지주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6·25전쟁이 일어나자 가족이 학살당하고 어머니와 형과 어린 이정윤이 해상 탈출해 남하한 뼈아픈 한국 현대사의 주인공이다. 이 장군은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주저함이 없이 해병대를 선택한 사람이다. 그 이유는 해병대가 실지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상륙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해사 19기로 입학, 세 차례 유학을 했던 영, 독, 스페인어에 통달한 실력파였다. 월남전 두 차례 참전자로 두 번째는 마지막 헬기로 철수한 중대장으로 기록되어있다. 1989년 준장 진급 후 2사단 부사단장, 제주방어사령관, 한미연합사 연합처장을 끝으로 1994년 4월 준장으로 29년간의 해병대를 마쳤다. 전역 후 독일 윌로(WILO) 한국지사장, 해병대전략연구소장 등을 맡았고 노년에는 지역 노인회장 등 봉사활동을 했던 신실한 기독교 신앙인이다.

 

해병대 마당발 1호, 강경서(해병169기) 영면하시다

강경서(해병169기)

해병대 74년 역사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마당발 1호라고 지칭되었던 강경서 해병이 지난 10월 16일 타계했다. 그는 1965년 3월 해병 163기로 입대 군악병과로 되어 군악10기 교육을 받았다. 천성이 활달하고 사교적인 그는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해병복지사업단을 만들어 미국, 필리핀, 등 해외해병대와 유대를 강화하면서 예비역 전우들을 모아 함께 방문하여 친선을 강화하면서 해외부대 견학 등 폭넓은 교류의 길을 텄던 사람이다. 자랑스러운 백인회 선정, 해병대 긍지와 명예를 함께 나누며 긍지를 공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해병으로 해병대 역사에 길이 기억될 해병이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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