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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같이 살아온 전상지체장애인 안근식(해병 5기) 목사

존경하는 안근식 목사님

안근식(해병 5기) 목사

목사님은 6·25전쟁 당시 사천강지구 전투에서 전상이 4급의 장애를 입으시고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삶이 자신의 안위보다는 병들어 거동 못하는 이웃을 돌보며 사랑과 베풂으로 살아오셨습니다. 당신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역이니까 당연한 삶이라 하시겠지만 그게 어찌 평범한 사람으로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가끔 안부를 여쭙기도 했지요.

어느 날인가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저는 목사님을 ‘이제 못 뵙는구나’ 하는 이별의 생각을 했었는데 사역을 마치시고 포항 따님댁에 계신다는 전화를 받고 크게 안도하면서 목사님의 여생이 평안하시길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400만 원 거금을 신문사 협찬금으로 입금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구순을 넘기신 노병이 무슨 돈이 있어 보내셨습니까? 하고 목사님을 책망(?)하면서 발전위원 추대증을 보내드려 자나 깨나 해병대를 생각하시며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랐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해병대가 잘되는 것을 보고 세상을 뜨는 것이고 무적해병신문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 것인가?” 하며 오직 신문사가 발전되길 기원하셨습니다.

존경하는 안근식 대 선배님,

제가 13년간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신문에만 집중해왔던 그 힘은 모두 해병대를 사랑해주시는 소중한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족한 재정 속에서 오직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음은 선배님들께서 이룩하신 “할 수 있다”라는 해병대 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행복합니다. 저희 신문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해병대의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기에 부족한 후배인 저 역시 눈감는 그 날 까지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해병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승!

무적해병신문 발행인 신동설 (해병184기) 올림

 

1933년생 노해병 안근식 목사는

6·25전쟁 중 전상을 입어 한쪽 다리를 잃은 채 평생을 살아온 전쟁 상이용사이고 원로목사이기도 하다.

17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학교에서 학도호국단훈련을 받아 군대에 익숙해졌을 때ㅡ서울 수복 당시 미 해병대를 보며 ‘그렇다! 나도 해병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던 중 동네 교회 벽에 ‘해병대 신병 모집’이란 벽보를 보고 1950년 12월 10일 일신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험을 치루고 입대하게 됐다.

1952년 10월경 휴전을 앞두고 한 치의 땅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했다.

사천강전투에 긴급 투입되어 10월 28일 새벽 2시경쯤 됐을까 하는 시각에 31고지에서 전투를 하던 나는 낮은 포복으로 고지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가 포탄에 몸을 맞고 함께 부상을 당해 상이군사가 되었다.

안근식 목사의 미담을 소개한다.
“전상을 입어 진해 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때였습니다. 장교 병동에 해병사관 2기생인 권병주 소령이 있었는데, 평양군정청에서 문교 분 야에서 있었던 분으로 영어를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분과 가 까운 사이가 되었죠. 그분은 나중에 간호해주던 최복순 간호장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나는 서울로 올라와 제대하곤  그분을 만나지 못 했지만 어디서 잘살고 계신가하는 정도였습니다.
1997년도에 동기생이 세상을 떠서 경기도 광주 화장장엘 갔다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권병주 소령을 만났습니다. 40년만의 해우였죠. 알고 보니 수원 우리 집 철길 건너편에 살고 있는 걸 서로 몰랐던 겁 니다. 나는 그분을 다시 만나서 사랑이 얼마나 인간에게 소중한지를 알게 되고 감사했습니다. 그분은 평생 혼자 운신을 못하는 1급 상이 용사였는데 78살까지 생존했었습니다. 그분은 욕창과 하체 완전 마 비로 인하여 혼자 소변을 못 보는 분이었습니다. 부인 최복순 대위 는 12년 연상으로 정말 정신적 사랑으로 평생 남편을 위해 헌신하였 던 분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 남편의 뒷바라지를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10년 동안 권병주 소령의 병수발을 하며 대소변을 받아주는 일을 대신해줬습니다. 부인 최 대위님도 2006년에 작고했는데 나는 두 분을 함께 합장시켜드리는 일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하여 해드렸습니다. 아마도 해병대라는 끈끈한 인연이 아니었 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해병대는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음을 느끼 게 됩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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