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 줄거리
상남보병훈련을 마친 이질범은 빨강 명찰을 단 이병이 되어 감격에 젖은 채 연병장에 있을 때 ‘신장 180cm 이상과 해병대 폼이 잡혔다’는 이유로 본인의 의사에 관계 없이 의장대원으로 뽑혔으나 이번 기수엔 TO가 없다는 통보를 받자 즉시 김포여단으로 향했다. 여단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보안대원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군번 계급 이름을 잊어야 하고 상관의 이름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생소한 부대로 실려 간다. “이 시간부터는 서로가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특수 임무를 맡은 너희들이 지켜야 할 첫째 사항이다. 알겠나?” 이름하여 ‘지옥의 휘파람’이 불어오는 것인가?

해병대 북파공작대 훈련 모습.

차출된 요원들은 ‘특수임무’라는 말은 보안대원들이 맡는 업무를 통칭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요원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천정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복창했다. 지시에 따라 개인 사물을 버리고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어쩐지 분위기가 개운치 않았지만 보안임무를 맡은 부대이어서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다음날 새벽 일찍 기상과 동시 산악구보 30분을 시작으로 밤늦게까지 계속됐지만 해병대 기본훈련으로 단련된 체력이라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강도가 심해지더니 모래주머니 40kg를 넣은 배낭에 M-1소총을 둘러메고 산악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밥 먹듯 하는 것 아닌가?

그날도 교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등짝을 후려치듯 날아온다. “너희들은 북한 124군보다 월등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알겠나?” 길도 없는 산악지대 12km를 1시간 이내로 주파해야 된다는 말이고, 시간 내에 돌아오지 못하는 대원들은 손등과 발등을 가해하는 등 끔찍한 고문 이상의 기합을 받는다. 그것 역시 어떤 극한 상황하에서도 이겨내는 예비교육이라 한다.
이런 끔찍한 기합과 훈련은 보통 해병대 훈련에서는 볼 수 없는, 군대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차출 요원들은 휴가와 외박은 물론 가족들과 통신 연락마저 차단되었다. 복장은 군복이 아닌 평상복 얼룩무늬 트레이닝 복장만 입게 했고 머리는 길게 기르도록 허용되었다. 이 모든 것이 특수임무 보안부대 요원이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그려려니…” 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옆에서 자는 줄만 알았던 부산 출신 동기생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더니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봐라, 자나? 이런 상황에서 니 잠이 오나? 우리 이 훈련을 마친 날이 장삿날이다. 아나?”
“야 임마! 살아남아 잘살아보자는 훈련인데 죽긴 왜 죽어? 인마.”
“니는 아직 모른갑제?”
“뭘 말이여?”
“우리가 이 훈련 다 받고 평양에 보내진다 카드레이.”
“누가 그따위 말을 해. 분명히 보안대 차출이란 말여.”
“그게 그러니까 우리를 속인 헛소리라, 우린 재수 없이 거미줄에 걸린 목숨이라카이.”
“야, 인마. 쓰잘떼기 없는 소리 하덜 말고 그냥 자빠져 잘라, 본인 의사도 없이 그게 말이나 되는거여?”
“이 자슥 정말 안 믿네. 내가 시방 니한테 헛소리하는 것 같냐?”
“알았다. 헛소리 아닝께 그냥 자잔 말이여.”
“봐라 봐라, 우리가 여기서 좆 빠지게 훈련받다가 평양에서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이판사판이란 말이다.”

질범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디서 잘못들은 헛소리를 하는가보다 하고 무시해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자신들이 대한민국 비밀병기 ‘북파공작특수임무’로 차출된 것으로 알게 되면서 눈앞이 아찔하고 깜깜해졌다.
북파공작요원이란 무엇인가? 기계처럼 잘 훈련된 인간병기를 말하며 그 과정은 참으로 비인간적이고 인간 능력의 한계를 초월한 강도 높은 훈련의 제물이었다. 따라서 훈련 기간 동안 일체의 생사 여탈권은 교관들이 쥐고 있고 훈련이 끝나면 국가 비밀 병기로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모든 것이 국방의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것이다.

“내가 북파공작요원으로 차출된 것이라니…”언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속았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왜 이런 부대를 만들었을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즉 북에서 남파시킨 124군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 모가지를 따오라는 특명을 행하기 위해 1968년 1월 21일 저녁 북한산 방향으로 왔다. 그들 31명 요원들은 36kg 모래주머니를 메고 산악을 달렸기에 우리는 거기에 4kg을 더한 40kg 완전무장 구보로 산을 비호같이 오르내리는 훈련을 받은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경우 육·해·공군에서 북파공작 특수임무 부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특수부대는 HID를 본부로 하여 인천 앞바다 XX도에 창설했었고, 해군첩보부대는 ○○도에 공군은 서울 ○○○첩보부대 내에 본부를 두고 실미도에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해병대는 사령부 옥상에 본부를 두고 강화도 마니산에 특수부대가 창설되어 거기에 이질범이 들어온 것이다.
실미도 공군특수부대의 실체가 세상에 밝혀진 이른바 ‘1971년 실미도사건’으로 그 실체가 세상에 밝혀졌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당시 실미도 사건으로 인해 바짝 기장한 정부는 전국 특수임무부대를 점검, 인천 ○○도에서 훈련시키던 특수요원들을 UDU본부로 통합시키고 해병대 특수부대 MIU는 후에 우수평가를 받아 부대장이 정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중앙정보부 지시에 의거, 조직된 특수부대는 육군과 해병대 MIU만 남았는데 1973년 해병대가 해군으로 통합될 때 해군첩보부대 ○○○기지로 새로 발족하여 남게 되었다. MIU요원이 되려면 독자나 장남은 제외, 신장 175cm 이상과 고졸 학력자 이상과 운동 주특기자가 해당되었다.
즉, 대한민국 상남자이며 전사하더라도 핏줄을 이어가는데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전통적으로 핏줄을 이어야 한다는 선발 요건이다. MIU부대는 김신조 사건인 1968년 1월 21일 3개월 후인 1968년 5월 창설 계획되었고, 부사관 11명, 해병 203기생 1명, 204기 1명 도합 13명으로 1968년 12월 정식 출범했다. 이질범은 그 4년 후인 1973년 2월 제5차 요원으로 발탁되었다. <계속>
【글 : 이질범(해병 353기), 정리 : 신동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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