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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노병은 살고 싶다살아있는 날 얼마 남지 않은 월남참전용사, 이제는 국가가보호하고 보상해야…

▲ 금강(琴岡) 송윤환(宋允煥)

문인화가

해병 222기

■ 그 누가 만들었는가, 전쟁이란 것을?
전쟁의 포화가 멎은 지 반백 년이 지난 오늘도 그대를 생각하면 내가 살기 위해 베트콩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지만 “졸면 죽는다”, “먼저 보고 먼저 쏘자”가 지상명령이요,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면 귀국선을 타지 못하고 꿈에만 그리던 부모 형제는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거의 매일 전개되는 야간 매복 작전은 해가 지기 무섭다.
어둠이 말없이 깔리면 허리에 찬 수통에는 물 대신 커피를 가득 채워 준비해서 매복대원 집합 출발 신고를 해야 하고, 내일을 망각한 채 오늘에 만족하며 대원 단합 악수를 하고 출발한다.
대원들의 진주알 같은 눈에는 분의 아린 살기가 감돈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다시 걸어오느냐? 베트남의 개죽음 걸레가 되어 해병 한 명의 목에 붙은 현상금으로 베트콩의 배만 불리느냐?
오늘도 빛나는 전과를 세우며 청룡의 금자탑을 쌓아올리느냐 둘 중의 하나다.
슬픈 운명을 지닌 이 순간에는 하느님 또는 천지신명께 모든 것을 맡기고 말없이 떠난다.
오늘의 문제는 무엇이냐, 싸우는 것이다. 내일의 문제는 무엇이냐, 이기는 것이다.
그 누가 만들었는가, 전쟁이란 것을? 포화가 스쳐 간 거리엔 한 많은 사연이 깃들고 이 땅에 평화는 언제일는지?
이름 모를 산속 기슭의 정글 속에서 한 해병이 굳게 잡은 M16 자동소총을 겨누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나 나나 정들지 않은 곳에서 젊음을 불사르고 있다.

■ 세계 제일 막강한 군대의 살아있는 장면
승자의 기쁨을 나누면서 멀지 않아 돌아올 이 땅에 평화의 수호자가 되기 위하여 이렇게 용감히 싸워서 살아온 우리에겐 귀국참전수당 30만 원이 안 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귀국한 나에게 축하 인사보다 “얼마나 벌었느냐”가 제일 먼저 질문이고, 두 번째 인사는 “그래도 살아온 것이 다행이다”였다.
월남 남포 시절부터 슬프고 괴로웠던 순간들, 초조와 긴장으로 번뜩이던 성난 청룡들, 고목나무 숲에서 불개미 지역 버선발, 젓꼭지 지역 헬리콥터, 런닝 작전에서, 그리고 알파 숲 작전은….
그렇다. 케이숀 고원지대 미 해병대와 연합작전에 이들의 모습은, 허리 총 자세에서 앞 대원을 따라가는 모습은 세계 제일의 막강한 살아있는 군대의 살아있는 장면이었다.
어디서 ‘딱-콩’하며 베트콩의 자동소총 소리에 우리는 머리를 땅에 박기 바쁜데, 그들은 여전히 허리 총 자세로 전진하는 미 해병대원들, 그들은 살아서 귀국하면 계급 관계없이 승용차 한 대라고 자랑했다.
알파 숲 베트콩 동굴 속에 매복대 폭음과 환희, 그 위에 핸드파라솔, 60만 촉광의 조명탄 불빛은 개미 새끼 기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수많은 병아리를 거느리는 암탉의 전과 보고 음성이 무전기에서 나온다. 무전기는 서로 무전기 옆에 가질 않는다.
왜냐하면 베트콩들도 무전기 받는 사람은 높은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총알받이가 되기 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전우가 총알받이가 되어 현장에서 즉사한 장면 속에는 앞뒤가 안 보인다.
그때 침착하지 않으면 많은 희생자가 나온다. 베트콩들도 그것을 노리고 있다.

■ 참전유공자들에게 KBS는 무한의 한을 남겼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며 주먹에 힘을 주는 나는 무엇인가. 해병혼의 정신인가, 아니면 요즘 매일 마시는 막걸리의 힘인가.
청춘을 바쳐 싸워서 돌아온 노병에게 지금도 위로의 말씀은 고사하고, 공영 방송 KBS-1TV는 지난 8월 7일 8시에 방영된 ‘시사멘터리 추적’으로 월남전참전 노병을 울분케 했다.
늦게 이 사실을 알고 피가 머리끝까지 솟는 것을 참고 참았다.
월남전에서 사망한 5,099명의 전사자와 수만 명의 부상자 또 고엽제로 후손까지 옮아 고생하는 분들과 살아계시는 유족들에게 KBS는 무한의 한을 남겼다.
월 34만 원의 참전유공자 보상비로 살아가는 80세 넘는 이들에게 이제는 대항력이 없는 늙어빠진 노병이라고, 기억력 없는 이들에게 KBS가 주는 마지막 보상이냐고 외치고 싶다.
2020년 그들의 소장에 의하면 한국의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총격으로 비무장 상태인 민간인 74명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소대급 이상의 작전을 할 때는 상당 기간 전에 작전지역 마을에 첩자를 두고 오랜 시간 근황을 조사한 후 대피 안내 방송도 하고, 베트콩과 친한 대리인을 선별하여 작전 상황을 설명하고 정해진 시간에 해병 전 부대의 포사격을 한 뒤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 보병이 진입하여 확인 사살로 작전은 끝이 난다.
그 당시 채명신 사령관의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지시가 귀가 아플 정도로 박혀있던 것이 현실이고 그곳의 실정이었다.
1965년 말부터 월남전에 본격적으로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의 전투부대가 파병될 당시 국내경제 상황과 한국군 현대사업, 나는 잘은 모르지만 한미관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6·25참전 유엔군의 대한 보답 차원에서 파병한다는 명분을 삼아서 1973년 3월까지 연인원 33만 명을 파병했다.

■ 세계 10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에 만세를 부른다
다시 한 번 강조하노니 이역만리 타국의 이름 모를 전선에서 개죽음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느니 악착같이 살아서 비겁하게 싸우고 용감하게 귀국하여야겠다는 생각은 6개월 지난 후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파월장병들의 피와 눈물과 총알받이로 받은 그 돈은 모두 그 당시 건립 중이던 포항제철 공사비와 경부고속도로 건설자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정한 사실이다.
그때 우리 졸병들 귀국준비 개인박스는 빈 박스로 보내니 차라리 전쟁터 포탄 탄피와 소총 탄피로 가득 채워 부산항 부근의 고물상과 풍산금속에서 매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얼마나 슬프고 슬픈 현실이고 사실인가. 그것도 부산항 하역 도중 귀국박스가 터져 포탄 탄피가 쏟아지는 것이 미국 현지 기자에게 사진이 찍혀 그 다음부터는 그것마저 중단된 사건이 있었다.
내 월남에서 병장 월급 45불 받아서 국내 강제 송금하고 잔금 몇 달러 시내 외출 한 번 하고 나면 한 푼도 없었다.
50여 년 동안 정권이 수없이 바뀌었지만 파월장병 우대 소리는 보훈처에서도 없었고, 그래도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건재하며, 우리 파월장병들의 그때 종잣돈으로 현재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것에 만세를 부른다.
월남전참전군이 살아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보호하고 보상해야 한다.
만약 파월장병의 기막힌 절규가 관철되지 않고 흐지부지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앞장서서 후손들에게 “너희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절대 눈물과 피 흘리지 말고 목숨 바쳐 희생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통곡하며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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