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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주와 한국의 특별한 인연

▲ 신용석

인천개항박물관 명예관장

원로언론인

前 조선일보 프랑스특파원, 논설위원

미국의 중북부에 있는 미네소타주는 다코다 인디언의 말로 ‘하늘처럼 맑은 물’이라는 뜻이고 1만 2,000평 이상의 넓이를 가진 호수만도 1만 2,000여 개가 되는 호수의 고장이기도 하다.
미네소타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프랑스의 모피(毛皮) 상인들이었다.
1784년 미국이 독립한 후 미네소타 지역은 서북지역의 영토로 있다가 1858년 32번째 주로 미합중국의 영토가 되었다.

■ 미네소타대, 韓 의대 교수들에게 연수 제공
필자가 미네소타라는 주 이름과 미니애폴리스라는 도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56년 인천중학교 재학 중일 때였다.
우표 수집을 열심히 하고 있던 중학생에게 미네소타대학에서 연수 중이시던 외삼촌(서울대 의대 병리학과 교수)께서 수십 장의 미국 우표를 편지와 함께 보내주셨다.
당시 미네소타대학은 6·25전쟁 후 원조 계획의 하나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농과대학 그리고 의과대학 교수들을 초청하여 연수기회를 제공했다.
이 같은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1961년까지 8년간 계속되면서 226명의 교수가 다녀갔고 전후 학문과 기술분야의 공헌으로 국가발전에 토대가 되었다.

■ 6·25전쟁 시 미네소타 병사 4천 명 이상 전사
미네소타주와의 인연은 그보다도 일찍 시작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맥아더 사령관은 매섭게 추운 겨울의 전선에서 버틸 수 있는 군인들을 파병해 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했다.
펜타곤에서는 혹독한 겨울로 유명한 미네소타의 병사 연인원 10만여 명을 파병했고 4,000여 명 이상이 전사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선두에 섰다가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에는 미네소타 출신들이 많았다.

■ 전쟁고아 대대적으로 입양하기도…
미네소타주의 한국 참전과 학문교류는 전쟁고아의 대대적인 입양으로 연결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미네소타주의 입양아 중 50%가 한국에서 오는 입양아들인데 2만여 명이 넘고 인구 비율로 볼 때도 미국의 50개 중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지난해 별세한 심현숙 여사 같은 분들이 열과 성을 다해서 입양아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게 노력하기도 했다.
초기 주민들의 80% 이상이 북유럽의 노르웨이 출신이었고 유럽에서 노르웨이에 한국 입양아가 많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기도 하다.

■ 70년 이상 지속된 한국-미네소타 인연
6·25전쟁 참전과 대학 교류 그리고 전쟁고아들의 대대적인 입양 등으로 한국과 미네소타의 가연(佳緣)은 70년 이상 지속하고 있다.
미네소타주에 입양된 한인들은 문화,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지역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필자가 언론사에 근무할 때 몇 차례 미네소타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일간신문 ‘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의 간부는 혹독한 전쟁으로 파괴된 한국에서 이제는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게 경이적이라고 했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미네소타주에 가서 그동안의 우의를 확인한다면 성숙한 국가의 지도자로 모든 미국인에게 각인될 것이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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