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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재천(人名在天)
월남전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청룡부대원들.

▲ 조성국(해병대사관 34기)

예·해병대위

국가유공자

법학박사

前 경민대학교 교수, 도서관장

前 의정부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

 

■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월남전의 기억
12월이 되면 필자는 1967년 12월이 생각난다.
1967년 1월 월남전에 참전, 청룡부대 제9중대에서 소대장을 시작하였다.
제9중대의 위치는 월남 중부 꽝아이성(Tinh Quang Ngai·廣義省) 북부 짜빈박(Tra Binh Bac·茶平北)에 있는 80고지였다.
제9중대에서 동남쪽 약 5㎞ 지점에 제11중대가 있었다.
제11중대가 위치한 짜빈동(Tra Binh Dong·茶平東) 진지에서 1967.2.15. 병력 수로 10배나 많은 월맹군 제1연대(정규군)의 기습공격을 물리쳤다.
주월한국군 전투사상 가장 빛나는 전공이다.
이 전투 공로로 제11중대 사병 전원이 1계급 특진하였다.
제11중대 선임하사인 상사(그 당시 사병 최상위 계급)는 준위로 진급, 사병이 장교로 승진하였다(故 채명신 주월한국군사령관 생존 시 KBS 방송에서 증언).
다음 날인 2.16. 필자의 소속 제9중대가 짜빈동으로 부대 이동하여 필자는 6개월간 짜빈동 진지에서 소대장, 작전장교, 부중대장을 하였다.
그 후 필자는 상급부대인 제3대대 본부로 전속되어 인사부관(S-1)을 거쳐 본부중대 부중대장을 하였다.
대대본부 정문에서 북쪽으로 약 1.5㎞ 지점에는 대대로 들어오는 교량(콘크리트 다리)이 있는데, VC(Viet Cong·베트콩)들이 이 다리를 폭파시키려고 해서 다리 옆에 교량매복대를 만들어 놓고 증강된 1개 분대 병력(15~20명)이 24시간 지켰다.
교량매복대장은 중위들이 돌아가면서 하였다.

■ 베트콩 기습공격에 파괴된 빈손군청
필자가 매복대장을 하던 12월 3일 01:00경이었다.
매복대에서 동북쪽 약 1㎞ 떨어진 빈손(Binh Son)군청에 포탄이 여러 발 떨어졌다.
필자는 VC들의 기습임을 알고, 매복대에 비상을 걸었다.
대대본부에 보고하니까 대대본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VC들이 쏜 박격포탄이 군청에 계속 명중하더니 이윽고 불꽃이 일면서 타기 시작했다.
불꽃 속에서는 이따금 폭발하는 것같이 화염이 올라왔다.
군청의 피습을 강 건너 불 바라보듯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또 VC들이 매복대에 박격포 사격을 가해오면 포탄에 대한 대피 시설이 미비했고, 병력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다.
청룡부대 포병이 빈손군청 주위에다 105㎜ 곡사포 사격을 했다.
이어서 포사격은 한쪽으로 치우치고, 건십(Gun-ship·무장헬리콥터)이 와서 라이트를 비추면서 기총소사를 했다.
날이 밝자 VC들은 다 도망가버렸다.
필자가 빈손읍에 가보니까 군청사는 부서지다 남은 벽만이 초라하고 흉물스럽게 서있었다.
이날 피습으로 빈손군청에 파견된 청룡부대 포병 연락장교 서용구(해간 28) 해병대위가 전사했고, 군청 고문관인 미 육군소령은 포로가 되어 갔으며, 군청을 지키던 민병대는 거의 다 전사했다.
이 민병대 중에 VC의 첩자가 있었는데 첩자는 VC와 함께 도주했다고 하였다.

■ 소설 같은 실화의 주인공 손이태 해병중위 
빈손군청에는 피습 며칠 전까지 손이태(해간 34·부산대 졸업·필자 군동기생) 해병중위가 포병연락장교로 나가 있었다.
손 중위는 그 수일 전에 부대본부에 업무 연락 차 잠시 들어갔다.
손 중위 옆을 지나가던 육군 십자성부대(청룡부대에 배속된 한국 육군 제11군수지원 대대) 사병이 손 중위에게 경례를 하지 않아서, 손 중위가 왜 경례를 하지 않느냐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이 사병의 태도가 불손하여 화가 난 손 중위가 손찌검을 하자 그도 덤벼들었다.
이에 격분한 손 중위가 쓰고 있던 철모를 벗어서 그 철모로 사병의 머리를 때려 중상을 입혔다.
사건이 이렇게 되자,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제11군수지원 대대장이 청룡부대장 김연상 장군에게 강력히 항의하여 손 중위는 부대장 명에 의해 영창에 구금되었다.
그의 구금으로 서 대위가 파월되자마자 손 중위 자리에 간 것이었다.
그런데 서 대위의 전사로 당장 군청에 포병연락장교가 없으니까 손 중위는 구금에서 풀려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필자는 운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월남 와서 C레이션 1박스(한끼 식사용 12개, 1인 4일 분)도 못 먹고 죽는다”는 말이 대원들 사이에 우스갯소리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파월된 지 며칠 안 되어 전사한 서 대위는 ‘죽을 운(運)’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이 어렵다.
한편, 손 중위는 예절을 갖추지 않은 육군 사병에게 주의를 주는 것으로 인하여 장교가 즉시 구금이 되고, 근무처인 빈손군청의 피습으로 많은 인원이 목숨을 잃은 자리에 되돌아 가, 소설 같은 실화의 주인공이 된 것은 ‘살 운(運)’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어렵다.
손 중위는 현재,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다.
필자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을 실감하였다.

■ 후일담
월남은 우리나라처럼 한문 문화권 국가여서 한자를 사용하였었다.
그런데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온 후 그들이 영어의 알파벳 비슷한 월남 문자를 만들어 월남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데 월남어의 약 70%는 어원이 한자이고, 순수한 월남말은 30%이다.
우리말도 약 70%는 어원이 한자, 30%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따라서 월남어와 우리말은 어원 같으므로 발음이 비슷하다.
예컨대 군 계급 대위는 우리말로 ‘대위’이고, 월남어는 ‘따위’이다.
필자는 월남에서 발행한 ‘한월사전(漢越詞典·Han VietT Tu Dien)과 ‘베트남어한국어사전(越-韓辭典·조재현 편저·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을 구입해서 활용, 칼럼을 쓸 때 월남의 지명이나 일반 용어에, 한자를 병기한다.
필자가 월남전 참전 중, 월남 노인과 한자로 필담을 한 경험이 있으므로 월남인 90세 이상 되신 분들(과거 한자 사용 세대)과는 한자로 필담이 가능하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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