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창설 반대한 채병덕 참모총장
자신도 모르게 창설안 서류에 서명
해군 병력 대거 해병대로 전과해…

■ “내가 언제 해병대 창설을 결재했나?”
해군 수뇌부의 관심과 노력과는 달리 해병대 창설 문제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되고 있었다.
가장 큰 난관은 역시 법적 근거였다. 당시의 국군조직법에는 해병대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순탄할 리 만무했던 것이다.
해군 총참모장을 거쳐 3군 참모총장에게 제출된 해병대 창설 안은 3군 참모총장 채병덕 소장에 의해 각하됐다.
채 참모총장은 육군과 같은 성격의 해군 전투 부대는 창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때 해본은 비상한 기지를 동원해 두 번째의 결재작전을 시도했다.
그 두 번째 안은 해군기지 경비라는 명목으로 작성된 김성삼 대령의 수정안이었으나, 실제 내용은 최초의 안과 거의 비슷했다.
따라서 두 번째 안도 따지고 보면 채 참모총장에 의해 각하될 것이 뻔한 일이었으나, 이번에는 내용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했는지 역사적인 서류에 그의 서명이 이루어짐으로써 해병대 창설 계획은 착착 진행된 것이다.
마침내 1949년 2월 1일 해군 총참모장은 육전 경험이 많은 신현준 대령을 초대 해병대사령관으로 발령하여 해병대 창설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갖추게 했다.
해병대 창설 기념식 초청장이 채 참모총장에게 전해지자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김성삼 대령을 불러 “내가 언제 해병대 창설을 결재했나?” 소리쳤다.
하지만 서류를 보니 분명 자신의 서명이 돼 있었을 뿐 아니라 장관의 서명까지 필해져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이런 중대한 문서를 브리핑도 한번 하지 않고 잡동사니 서류 속에 집어넣어 결재를 받았단 말이요?” 하고 김 대령을 공격하듯 힐책했으나 결국 그의 이런 힐책은 서류의 내용은커녕 제목도 보지 않고 서명을 해버린 자기 과오에 대한 안타까운 자책일 뿐이었다.

■ “이놈들 다 가란 말이야!”

신현준 초대 해병대사령관

신현준 사령관과 김성은 참모장은 사령부 행정부서 막료들과 장차 병들의 훈련과 신병 지휘를 맡게 될 장교, 하사관 등의 지휘관급 간부요원들을 해본 인사국을 통해 전과 희망자를 공모하게 요청했다.
당시 해군 장병들 대부분은 일본군이나 만주군 또는 팔로군 출신자였기에 같은 만주군 출신이었던 신현준 사령관의 포섭에 대거 해병대로 몰려왔다.
당시의 해군 내 각 부대에는, “얘! 너도 넘어가나?”, “물론이지, 나 혼자 남아서 뭘 하겠니.” 하는 투의 유행어가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퍼지고 있었을 정도였다.
심지어 목포 경비부대에서는 병과장교로서 총무·작전·경비 등의 주요 업무를 총괄하고 있던 김재주 대위가 해병대 전과를 결심하며 105명의 부하 장교·부사관과 함께 해병대로 넘어오는 일도 생겨났다.
이는 참모장 남상휘 소령이 해병대로 전과할 것을 결심하며 전과 지망생들의 사령관 결재를 뒤로 미룬 채 자신의 서명만으로 명단을 제출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정긍모 사령관은 혼자 폭음을 하고 “이놈들, 해병대로 가려면 다 가! 나 혼자서 지킬 테니 다 가란 말이야!” 하며 밤새도록 울분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렇게 모집된 전과 지망자들은 2~3차례에 걸쳐 발령이 났는데 2월 21일경 제1차로 발령났던 안창관 소위를 비롯한 30명의 육전 경험 장병들은 발령과 동시 덕산비행장으로 파견되어 장차 해병대의 병사 및 창고로 쓰일 비행장 시설물의 경비와 보수작업에 임했다.
그리고 3월 28일에는 제2차로 발령된 40명의 전투 유경험자들이 덕산 비행장에 도착했는데, 그들 중에는 과거 2차 대전 때 일본군 육전대로서 남양군도 및 동남아지구 전선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15명의 고급 부사관이 포함돼 있었다.
입대 후 해군의 주 병과학교인 항해 학교에 입교해 고등반 과정을 이수하거나 교관진 요원으로 활약한 그 15명의 고급 부사관들은 그 후 해병대간부후보생 제1기 및 2, 3기생으로 진출했다.

초창기 해병대 간부들

■ “한가락씩 할 만한 자들을 골라야 해”
장차 전투 부대의 초석들이 될 사병들은 해군에서 모집해 가입대 상태에 있던 해군 13기생들 중에서 300명을 선발하여 이들을 해병 1기생으로 훈련시킬 방침이었다.
김성은 참모장은 안창관, 김낙선 소위와 강복구 중사 등 3명을 선발요원으로 선정해 그 임무를 수행토록 했다.
참모장은 그들에게 “한가락씩 할 만한 똘똘하고 주먹 큰 놈들을 뽑으라”는 임명을 내렸다.
당시 해군의 신병 가입대자들은 통제부 내에 있는 내무실을 겸한 창고 속에 수용되어 있었다.
검은 색안경을 쓰고 반짝반짝 광채 나게 닦은 반장군화를 신은 일본 해군 육전대 출신의 강 중사는 어떻게나 기합이 들어 있었던지 빳빳하다 못해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동작을 취하는 자였다.
기합의 화신 강 중사는 절도 있고 야무진 목소리로 찾아온 동기를 간단히 설명하고 “해병대란 일본 해군의 육전사와 같은 군대며 적진 상륙을 감행할 경우 100명 중 99명의 희생자가 날 수도 있다”며 “해병대로 오려는 자는 중졸 이상의 학력 소유자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야말로 사나이답게 목숨을 바칠 각오가 단단히 서 있어야만 한다” 힘주어 강조했다.
해병대를 지망하는 자들은 내무실 옆 광장에 집합하라는 말에 700여 명의 인원이 몰려들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굳건한 결의에 찬 표정들이었다.
강 중사는 기뻐하며 똘똘하고 한가락 할 만한 자들을 골라서 330명을 뽑아내었다.
정원보다 30명을 더 뽑았던 것은 혹 그들 중에서 사고자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고, 또 구술시험관 안창관 소위, 김낙천 소위가 행사할 최종적인 재량권을 남겨두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10일 후 구술시험을 통해 확고한 결심을 가진 자 300명이 선발돼 해병 1기생이 탄생했다.

강복구(예·대령) 전 해병대전우회 총재는 살아있는 해병대 기합의 화신이었다.

▲ 다음 화 예고
해병대 역사의 시작, 창설기념식
해병대 잡는 ‘북해도 곰잡이’ 훈련
‘상거지 중의 상거지’ 꼬락서니로…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