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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동네 사람들’과 함께한 四季 (完)
독거노인, 노숙자에게 침구류 생필품 전달하는 필자 김무일 고문.

내친김에 영등포구청 복지후생과를 찾아 실태를 들어보았다. 최근 자료를 열람해 보니 이곳 주민 627명 가운데 63.2%가 유입 동기로 ‘실직, 사업실패 等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이어 ‘젊어서부터 살았다’는 응답자가 10.5%, ‘이혼 等 가족해체’가 9,8%였다. 응답자의 77%는 ‘연락할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고, 최근 1년 동안에 가족이나 친지가 방문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47.3%가 ‘아무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했으니 59.1%는 방문할 가족이나 친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쪽방촌 거주민은 지난해 末 현재 2,473명이며,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1,225명(49.5%)이 60代 이상 고령자라 했다. 그리고 응답자의 32.8%는 ‘장애가 있다’고 답했는데, 장애가 아니더라도 71.8%가 질병을 앓고 있었다. 질병(복수응답)으로는 고혈압 44.2%, 관절염 38.7%, 당뇨 24.8%, 우울증 15.5% 그리고 신경통·디스크 12.8%, 심장질환 10.5%, 만성호흡기질환 9.8%, 뇌혈관질환 8.5% 等이 뒤따랐다. 문득 양지바른 육교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햇볕을 쬐던 노숙인들의 파리한 얼굴이 떠오른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난가을, 이 육교에는 계단이 하나 더 새로 생겼는데, 이는 2019년 서울시 주민참여 사업으로 선정된 ‘영등포역 횡단보도 육교 정비사업’을 통해서다. 새 계단을 통하면 이곳 주민들은 쪽방촌을 덜 거치고 대중교통 정류장이 있는 경인로로 막바로 나갈 수 있단다. 쪽방촌을 피하기 위해 만든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 눈발이 거세게 몰아치던 그날 저녁 무렵, 우산을 받쳐 쓴 채 쪽방촌을 황급히 비켜 가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종종걸음이다. 간혹 직업 재활 교육기관에서 열심히 기술 습득에 전념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도시 빈민의 마지막 보금자리 ‘쪽방동네’에서도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몸짓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쪽방을 찾는 저들은 좀 나은 편이다. 오늘은 2021년이 시작되는 정월 초하루. 체감온도 영하 25°에 육박하는 강추위가 닥친 오늘 아침 서울역 3층 KTX 대합실을 찿았다. 서울, 경기 等 가까운 이웃 지방 각지에서 왔다는 50여 명의 노숙인들이 곳곳에 쭈그려 앉거나 혹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 채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노숙인 정○○(65) 씨는 主생활반경이 ‘남대문 지하도로’지만 바닥 냉기가 너무 차 새벽녘 이곳 대합실로 옮겨왔단다. 정씨는 “날이 너무 추운데다 코로나로 밥 주는 곳이 점점 문을 닫아, 그나마 무료급식 주는 서울역으로 온 것”이라며 “갈 데가 없다 보니 지하철을 타고 빙빙 돌거나 혹은,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을까 싶어 급식소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서울역 광장과 광화문 지하도, 그리고 영등포역 광장 等은 노숙인들의 대표적인 집결지다. 볕이 날 때는 야외광장으로 나왔다가 날이 저물면 지하도로 내려가 두꺼운 종이 박스로 ‘1인용 바람막이 움막’을 급조해 밤을 지새우는 노숙인 수십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겨울엔 대표적인 노숙인 집결지에서도 노숙인들 숫자가 감소하긴 했지만 이들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서울市에 따르면, 2019년 서울 주요지역에서 육안으로 관찰되는 거리 노숙인 수는 하루 평균 650명 정도라 했다. 노숙인 정책을 담당하는 서울市 이진산 주무관은 “작년 말  末 관찰된 노숙인의 숫자는 2019년 末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고 했다. 코로나에 강추위까지 겹쳐 잘 곳, 먹을 곳을 찾아 이들은 ‘철새’처럼 이동하고 있다. 봉사활동 중 만난 노숙자들은 “여느 때보다 춥고 힘든 겨울.”이라고 입을 모았다. 언제 쯤에나 이들에게도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날이 올는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던가? “貧而無諂 富而無驕(빈이무첨이만 부이무교하고)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미약빈이락이라도 부이호례자야 하라!)” 비록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아니하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하라! 아울러 가난할지라도 즐겁게 살며, 부귀하다 해도 겸손과 예의를 잊지 말지니라! 論語 學而 편에 나오는 필자의 죄우명이다. 지난 한 해는 한성로타리클럽 회원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세상의 어두운 곳을 두루 살펴보는 귀중한 四季節을 보낼 수 있었음에 회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오늘도 세상의 음지(陰地)에서 신음하는 그들에게 하루 빠른 갱생(更生)의 새봄이 다가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구절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 ‘수하 김환기 선생’께서 평소 가장 아끼던 한 작품의 제목이다. 그리고 또, 이 구절은 수하 선생이 평소 자별하게 지내시던 서정시인 ‘이산 김광섭 선생’의 주옥(珠玉)같은 詩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꿈 많던 젊은 시절, 그렇게도 가슴조리며 암송하던 이 詩는 “저토록 수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로 시작된다. 훗날, 이곳에서 만났던 고엽제 戰友 강氏, 친척 빚보증을 잘못 섰던 李氏 할아버지와 푸른색 눈 화장이 꽤나 짙었던 50대 여성, 그리고 사업 실패와 마포 건설 현장에서 몸을다쳐 이곳에 흘러 들어온 박氏, 쪽방촌 터줏대감 장복순 할머니 等 모든 이들이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때,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그들의 수호신에게 간곡히 기도 드린다. 그리고 몇날 몇밤을 함께 했던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뒤돌아 보고, 또 돌아다 보며 이곳을 떠난다. 멀리 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들어 주던 박氏의 파리하고 가녀린 모습이 여태껏 눈에 밟힌다. Adios Amigo. (完).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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