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태조선대 군사학과 초빙교수

유럽 서쪽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은 이런 우화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스페인에 기름진 땅, 좋은 날씨, 풍부한 자원을 선물했다. 하지만 이런 축복으로 춤·음악으로 낙천적인 삶을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정치적 안정만은 부여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하나님께 여쭈었다. “온갖 축복은 다 주시면서 왜 정치적 안정은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왈, “그것까지 주게 되면 내 곁의 천사들이 모두 스페인으로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축복의 땅 스페인은 오랜 기간 정치적 불안정으로 숱한 전쟁·쿠데타·내전이 있었다. 이런 처절한 갈등의 역사는 전국에 산재한 군사박물관·전쟁유적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 무적함대 역사를 증언하는 마드리드 해군박물관

마드리드 해군박물관 입구 전경

대항해시대에 세계역사를 새롭게 만든 해양강국 스페인. 15세기 말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콜럼버스·마젤란와 같은 탐험가들은 스페인왕국의 지원으로 대서양·태평양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다. 우수한 항해술, 막강한 해군력으로 수많은 식민지를 확보했고 국가의 부는 쌓여갔다. 그러나 대제국 스페인도 1576년 네덜란드 전쟁 패배, 1588년 영국 해군에 의한 무적함대 괴멸로 서서히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마드리드 해군박물관은 1843년 11월 19일, 최초 개관되었다. 이곳에는 1474년 가톨릭 왕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해군역사의 중요 유물들이 총망라 되어 있다. 전시관 입구에는 콜럼버스·마젤란의 각종 사료, 최초의 세계지도, 대항해시대의 범선모형들이 대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스페인 해군전통을 계승해 갈 승조원 양성학교와 사관교육과정 소개 사진이 인상적이다.

1800년대 스페인 해군 승조원 양성학교 전경 (해군박물관 전시물)

■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요새도시 톨레도

요새도시 톨레도와 주변 타호 강 전경. 사진 왼편 가장 높은 첨탑건물이 왕궁을 개조한 군사박물관.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스페인 옛 수도이며 요새도시인 톨레도. 이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타호강과 높은 절벽은 천혜의 요새지로서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풍스러운 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특히 과거 왕궁을 개조한 군사박물관은 로마시대부터 1930년대 스페인 내전까지 이베리아반도의 처절한 전쟁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톨레도 군사박물관 강 건너편에는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스페인 육군보병학교가 있다. 장교 과정 생도들은 5년, 부사관 후보생들은 3년 과정의 교육이 사관학교 본교 및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과거 스페인의 수도였고, 숱한 전투가 있었던 역사적 현장에서 후보생 및 장교들이 교육받는 자체가 이미 군 간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스스로 깨닫게 해 주는 듯 했다.

톨레도 스페인 육군보병학교 정문 부근 전경.

■ 세계 최고의 토목기술 로마제국 수도교

세고비아 도심을 가로지르는 로마제국 수도관 전경

마드리드 북서쪽으로 90km 떨어진 세고비아 도심에 들어서면 시내를 가로지르는 웅장한 로마시대 수도교(水道橋)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제국이 만든 상수도 수로관이다. 이 건축물은 도시에서 17km 떨어진 강물을 고지대인 세고비아로 끌어오기 위해 만들었다. 로마가 제국 곳곳에 세운 수도교 중 가장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내 중심의 거대한 수도교는 길이 728m, 높이 30m, 167개의 2단 아치 형태에 24,000여 개의 화강암 덩어리가 사용되었다. 어떤 접착제나 꺾쇠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인력으로 쌓아올렸다. 더구나 중력을 이용,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도록 미세한 경사각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반영했다. 탁월한 로마인들의 토목기술에 “아!” 하는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이 건축물은 1800년대 말까지 상수도관으로 계속 사용되기도 했다.

■ 난공불락의 세고비아성과 스페인 포병학교

스페인 왕국으로 사용된 세고비아 성채 전경. 성문 앞 도개교 아래 깊은 해자가 있다.

수도교 저수탱크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면 중세시대의 골목길과 대성당이 나타난다. 이 거리 끄트머리에 난공불락의 성채 ‘세고비아 알카사르’가 버티고 있다. 이곳은 오랫동안 스페인 왕궁이었다. 성벽에는 다양한 방향으로 사격 가능한 총안구를 만들고, 밖으로 튀어나온 옹벽은 성 위로 기어오르는 적병 머리에 끓는 물이나 바윗돌을 쏟아붓도록 설계되었다. 성 외곽에는 깊은 해자를 만들어 물을 채웠고, 최후의 순간 왕의 탈출을 위해 물밑으로 비밀통로까지 준비했다.
또한 성채 앞 무기박물관에는 중세시대 석궁·칼·갑옷·대포 등으로 꽉 차 있다. 예나 지금이나 생존을 위한 투쟁에는 인간의 온갖 지혜가 다 동원된다. 특히 왕궁 이전 후 이곳은 스페인 포병학교로 운용되었으며, 부근에는 포병 상징 동상도 있다. 따라서 수백 년 전부터 포병의 요람으로 알려진 세고비아는 그 군사적 전통을 이어받아 현재도 도시 근교에 스페인 육군포병학교가 있다.

■ 수천 년 역사를 보여주는 지중해 군항 카르타게나

카르타게나 바닷가 해군군사박물관 앞에 전시된 화포. 사진상 건물 좌측 끝부분이 박물관 별관이다.

스페인의 지중해 군항 카르타게나는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도시다. 널찍한 항만을 감싸고 있는 4개의 반도에는 항구 방호를 위한 철벽 요새가 아직도 남아있다. 한국의 군항 진해와 지형이 비슷하다. 이 도시는 BC 3세기경 건설되어 수백 년 동안 로마제국 해군이 주둔했다. 현재도 스페인해군의 중요한 기지이다.
도시 주변 산정 곳곳에 로마제국 성벽들이 보이고 시내에는 해군군사박물관·고고학박물관·로마인 야외공연장이 있다. 부두 옆 해군군사박물관 앞에는 중세시대 화포가 줄지어 있고, 박물관 별관에는 1900년대 초 제작된 스페인잠수함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부두에서 다소 떨어진 고고학박물관에서는 2000년 전의 주민주거지·생활용품·무기류들을 볼 수 있고, 로마시대 야외공연장은 무대를 개조하여 오늘날까지 활용되고 있다.

■ 스페인 내전을 엿볼 수 있는 마드리드 공군박물관
스페인 공군박물관은 마드리드 교외 쿠아트로 비엔토스 비행장에 있다. 근처 지하철역에서 공군기지 울타리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면 프로펠러와 대형폭탄이 상징물로 서 있는 박물관이 나타난다. 전시관에는 공군 창설 및 발전 과정, 주요 전쟁 역사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실내외에 수십 대의 항공기가 기종별로 주기되어 있다.
특히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이탈리아 공군의 무차별 도시폭격 자료는 이 나라의 아픈 과거를 잘 보여준다. 내전은 1936년 3월, 좌파 인민전선정부 수립 후 사회적 혼란 속에서 노동자·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공화파)와 보수적인 군부·기업가·가톨릭교회(국민군파) 간의 갈등이 단초가 되었다. 급기야 7월에 양측 충돌로 전쟁은 시작되었고, 1939년 국민군파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약 100만 명이 숨졌고, 이웃 간 뿌리 깊은 증오심과 불신의 상처를 남겼다.

■ 무적함대가 숨 쉬고 있는 바로셀로나 요새
유럽인들이 가장 살아보고 싶다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연중 햇살 가득한 지중해성 기후에 다양한 볼 거리를 가진 매력적인 관광도시다. 이곳 사람들은 언제나 활기차고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런 축복의 도시에도 예외 없이 자신들의 부(富)와 생존을 위해 곳곳에 견고한 요새를 수백 년 전에 축성했다. 항만 근처의 육군박물관·몬주익성채·콜럼버스기념탑·해양박물관은 바르셀로나인들의 투쟁과 개척정신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카탈루냐인이라고 여긴다. 어려서 카탈루냐어를 먼저 배우고,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주기를 게양한다. 이들의 자치와 독립요구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최근 스페인 경제 악화로 그 갈등이 증폭되었다. 중앙정부는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부유한 카탈루냐 지방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지역민들은 반발했고, 2014년 주민투표로 독립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스페인의 젖줄을 포기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이 독립은 어려울 것 같다. 개인이나 국가의 생존문제를 서로서로 사이좋게 양보한 인간 역사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 바르셀로나 항만의 파수꾼 웅장한 몬주익 성채

몬주익 공원정상의 요새입구 전경. 사진 좌측에 1800년대 말 화포가 보이며 깊은 해자다리 좌측이 외성, 우측이 몬주익 요새 내성이다.

바르셀로나 관공명소 몬주익공원은 1992년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 선수가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곳이다. 지금도 이 공원에는 황영조 기념 동상이 있다. 케이블카로 공원 꼭대기에 오르면 탁 트인 지중해 전경과 웅장한 몬주익성이 나타난다. 성채 밑 바르셀로나 항만에는 크레인이 줄지어 있고 대형 크루즈선들이 바삐 오고 간다. 해자를 건너 요새 내로 들어가면 견고한 석조건물과 수많은 격실의 지하구조물들을 만난다.
1640년 최초 건설한 이 요새는 개·증축을 반복하면서 완벽한 방어진지로 변신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국민군(프랑코파)을 지원하는 150여 대의 이탈리아 공군기가 이 요새를 폭격했다. 공화파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1939년 초에 결국 패배했다. 내전 후 프랑코 정부는 이곳을 공산주의자 수감 감옥으로 활용하다가 1960년대 무기박물관으로 개조했다. 오늘날에는 한여름 밤의 영화 페스티벌 개최지로도 유명하며 시민들의 훌륭한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
성곽 곳곳에는 적 함대 격퇴 및 항만 보호를 위해 많은 화포들이 거치되어 있었으나 이제 그 수명은 다한 듯 했다. 고성능 폭격기·장거리 미사일이 전장 주역이 된 현대전에서 더 이상 요새 의미는 없어졌다. 화포는 녹슬고 포상에는 잡초까지 듬성듬성 나 있다. 하지만 이 유적들은 “나도 한때 제국의 영광을 위해 내 청춘을 다 바쳤소”라고 방문객들에게 이야기하는 듯 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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