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식 해병대전우회 울산연합회 고문, 6.25참전전우회 지부장

배 사업 도산 후

울산역 철길에 목 올리고 죽을 결심…

but, 해병대 정신력으로 재기 성공해

- 이금식 전우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포항 구룡포에서 태어나 해병111기, 하교31기로 입대했습니다. 해병대군번은 9286425이며 하사관 군번은 7214785입니다. 아직도 누가 물어보면 달달 외워 바로 대답할 정도로 주민번호는 잊어도 군번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

- 해병대를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당시 경주상고로 진학을 했던 저는 인생의 반항기를 겪었습니다. 권투를 잘 한다는 소문이 나자 학교 1년 선배가 저를 불러 조직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더군요.

당시 경주를 휩쓸던 조직에 가담하게 되면서 여러 번 사고를 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경주시장 아들과 시비가 붙어 급기야 큰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퇴학까지 할 위기에 처하자 삼촌의 큰 배려로 조직에서 빠져나온 저는 곧바로 부상 해양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삼촌의 말처럼 조용히 공부를 하며 지내려 했지만 사정은 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싸움을 잘 한다는 소문이 나자 툭하면 아이들이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부산 해양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도저히 참지 못하고 시비를 거는 아이들과 한 번 크게 싸움이 났습니다. 이 일로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에 입대하게 됐습니다. 일종의 도피처였던 셈이지요.

- 그렇군요. 해병대에 입대한 후 군생활은 어땠습니까?

10대 끝자락에 피하듯이 숨어 들어온 해병대는 저에게 처음에는 매우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특히 순검시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포의 시간이었지요. “순검!” 하면 신병들이 양 쪽 침대 앞에서 2대 횡대로 정렬하고 소대장이 들어와 검사했습니다. 어느 날은 식기가 제대로 닦여 있지 않은 걸 보고는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팬티바람으로 모조리 기합을 받기도 했지요.

- 영창에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지옥 같은 훈련이 반복되던 중 동기 두 명이 도저히 훈련을 견딜 수가 없다며 도망가자는 제의를 한 것입니다. 고등학교 폭력 사건으로 엉겁결에 들어온 해병대라 준비가 안 된 나로서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급기야 탈영을 했고 3일을 걸어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구룡포로 향했습니다. 인간은 가장 어려울 때 고향으로 회귀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분명 경찰들이 고향에 잠복 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고향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그날 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잠복 해 있던 소대장과 경찰에게 곧바로 잡혔고 진해훈련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신병 훈련을 마친 후 포항 해병사단 근무대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불량한 훈련생활 과정에서도 좋은 환경 부대에 배치 받을 수 있었는데, 해병대사령부 인사부에 있는 양복수 준위님 덕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해병대가 적성에 너무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군 생활을 잘 적응 해 나갔습니다.

- 참으로 다이내믹한 군 생활을 하셨군요. 그런데 월남 파병을 자원하셨다고요?

동생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저의 동생도 해병대특수교육대 조교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부모님도 모르게 동생이 월남으로 파병을 가버린 것입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 집안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동생의 월남 파병은 계속해서 인명피해가 나자 급히 손실된 병사를 보충하기 위해 잘 훈련된 특수교육 1중대를 LST(상륙함)으로 파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원망은 저에게로 쏟아졌습니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겁니다.

결국 저는 베트남으로 떠난 동생을 찾기 위해 죽음의 사지인 월남 파병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끔찍한 전투가 이어졌지만 오직 해병대 정신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인 고엽제의 피해로 2006년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됐습니다만 수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이렇게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이 천운이라 생각하면서도 먼저 간 동료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전교 1등 불우학생 도와 대학등록금 마련…

“죽을 때까지 기부하며 봉사하는 삶 살 것”

- 제대 후에는 어떠한 일을 하셨습니까?

남 밑에 있는 것보다는 남위에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제대 후 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자금으로 월남에서 벌어온 돈 전부를 쏟아 부어 철선을 구입했습니다. 그런 배 덕분인지 1년은 수익을 크게 올릴 수 있었지요.

그러나 순조롭던 앞날에는 더 큰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암초에 걸린 배가 침몰하는 큰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일로 선원 한 명이 사망하고 배마저 잃게 되자 결국에는 고향을 떠나 울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오직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막걸리 배달부터 막노동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지요.

하루는 큰 아들네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큰아들 성수가 3일째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연락을 받고 많은 생각에 젖었습니다. 집안은 어려워도 공부는 잘하던 아이인데 무슨 일인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학교에 파할 시간이 돼서 성수가 집에 돌아오자 저는 조용히 아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들을 보니 화가 나서 뺨을 한 대 올리니 아들은 그제야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육성회비를 안 가져오면 다닐 자격이 없다고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해서 친구와 3일간 태화강에서 놀다가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쓰라리게 아파왔습니다. ‘이 어린 것이 3일 동안 학교도 가지 못하고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까, 나는 얼마나 무능한 아버지인가’

이렇듯 사업실패에 대한 후회와 괴로움은 늘 그렇게 저를 엄습 해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주 없는 독한 술로 마음을 달랬고 결국 저는 죽기 위해 울산역 근처 철길에 목을 올렸습니다.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 때 갑자기 신의 계시와도 같은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죽으면 저 불쌍한 자식과 아내는 누가 돌볼 것인가’ 독한 마음으로 목을 올리던 저는 통곡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가족들 몰래 이불 속에 숨겨 놓았던 유서를 없애고 새 삶을 살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 힘든 고난 속에서도 잡초처럼 살아온 이 전우의 삶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 저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해병대에서 받은 모진 훈련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해병대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집단입니다. 그리하여 굶을 수밖에 없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끈끈한 생활력으로 우뚝 일어서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몇 번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서 건설업계에 발을 들였고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기쁨은 아이들 3남 1녀 모두 반듯하게 잘 자라주었다는 것입니다.

큰아들 성수(52세)는 현재 한진종합건설 대표이사로 있고, 둘째아들 성용(48세)은 초선이었던 울산시의원에 당선되어 환경복지위원장으로 재임 중입니다.

막내아들 상호(38세)는 해병대를 나와 경암주유소 대표로 운영하고 있으며, 딸 성희는 결혼하여 사위가 SK에 근무 중입니다.

지금도 딸이 매월 20만원씩 아버지 쓰시라고 용돈을 주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20만원이라는 돈보다도 저를 생각하는 씀씀이가 고마워 둘도 없는 부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습니다.

- 그간 기부를 많이 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기부를 실천하게 되었습니까?

제 생각엔 기부도 스스로의 만족이 더욱 큰 것 같습니다. 남을 도와주면 상대방이 감사한 것보다도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고 기분이 좋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보통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장애인 단체 등을 돕거나 보훈 단체에 기부를 하여 국가안보를 위해 힘쓰시는 어르신들을 독려하곤 합니다.

기부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일은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도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에 붙고도 가지 못할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 처지가 안쓰럽고 자식 같아 “등록금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만 해라” 하고는 등록금을 대신 납부 해 주었습니다. 현재 이 녀석이 벌써 중앙대학교 졸업반입니다. 어느 날 저에게 찾아와서 “할아버지처럼은 안 되더라도 제가 나중에 남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되면 꼭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하면서 꼭 자기 졸업식에 와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저에게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입니까?

벌써 기부를 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왔지만 오직 성실한 마음 하나만 갖고 달려왔습니다. 그렇기에 형편이 어려워 꿈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곤 합니다.

또 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에 참전했던 만큼 국가안보를 위해 힘쓰시는 분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국가 안보에 대한 강연도 계속 해 나갈 예정입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전우에게 해병대는 어떠한 의미를 가집니까?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 차가 지나가면 후배 해병들이 선배인 줄 알고는 정자세로 경례를 하고 직접 차문까지 열어줍니다. 모두 우리가 해병대라는 한 단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대우를 주고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딜 가던지 해병대라는 이름 하나로 뭉치고 서로 도우며 의리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해병대입니다. 이처럼 저에게 해병대는 녹슬지 않는 영원한 의미를 가집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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