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다고 나 누리지 말라. 복 다하면 그 몸이 가난해지네.
권세 있다고 함부로 부리지 말라. 권세 다하면 원수를 만나게 되네.
복 있을 때 항상 스스로 아끼고, 권세 있을 때 스스로 공손하라.
인생살이 교만하고 사치하면, 시작은 좋으나 끝은 형편없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일파를 모함하여 죽이고 남곤과 더불어 막강한 세도를 누리던 심정.
그의 아우 심의는 평소 형의 부도덕한 행위를 싫어하여 자주 형의 집에 들르지 아니했다.
원래 간사한 심정이지만 그 아우에 대한 우애는 지극했다.
어느 심정의 생일 날, 조정의 문무백관이 심정의 집을 찾아 성대하게 잔치를 했다.
심의는 저녁 무렵 나타나 인사를 하고 마루에 걸터앉아 손님상에서 술을 서너 사발 마신 다음에 귀빈들과 같이 앉아 있는 형 앞으로 가서 마당에 뚫린 쥐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님, 술만 잡숫지 말고 저 구멍으로 들어가 보시오. 같이 앉아 있는 분들도 한 번 들어가 보시오. 지금 훌륭한 선비들을 해치면 나중에 어찌 그 응보를 받지 않겠습니까? 그때에 가서는 저런 쥐구멍을 찾으려 해도 되지 않을 것이니, 오늘 시험 삼아 한번 저 안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뜻밖의 봉변을 당한 손님들은 흥이 떨어져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난 뒤 남곤 일파가 조정에서 숙청됐다.
심정도 같은 죄로 귀양 가고, 가산마저 나라로 몰수됐다.
이 소식을 들은 심의는 형의 집으로 달려왔으나 모두 흩어지고 마당에는 풀만 우거졌으며, 곳간 문들은 어지럽게 젖혀져 있었다.
다만 쥐구멍만은 여전했다.
심의는 쥐구멍을 내려다보고 대청 마룻바닥을 두들기면서 울먹였다.
“쥐구멍은 여전한데 우리 형님은 어디 가시고 안 보이는가!”
남에게 인덕을 베풀고 선행을 해도 집안을 온전히 보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남에게 해를 끼치고 얻은 부귀공명으로 이룩한 집안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을 있을 때 더 많이 아끼고 남과 원한을 사지 않으면서 사치와 교만을 조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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