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우 총리 통역에 큰 관심
저우 총리는 통역이나 번역에 큰 관심을 기울여 나로서는 잊기 어려웠다.
많은 나라에서 통역자는 연회장에서 일할 때는 정식 식탁에 앉을 수가 없고 주빈(또는 주인)의 뒷자리에서 일을 하므로 식사를 하지 못해 배고프다는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저우 총리의 배려로 연회석상에 정좌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보살핌을 받았다.
70년대에 들어와 저우 총리는 외빈과 회견한 후에는 그 소식을 보도할 때 배석한 보도원들과 같이 통역원들도 명단을 적어 볼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내부에서 토론할 때도 그는 각급 영도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뿐만 아니라 통역에게도 지명하여 발언토록 했다.
저우 총리는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의 외교공작도 진행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와 동시에 저우 총리는 통역원들에 매우 엄격히 요구하였다.
그는 외빈을 만나 늘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일본 문제를 말할 때는 일본인명과 지명이 자주 한자의 발음상 큰 차이가 있어 통역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곤 한다고 하였다.
대략 1971년으로 기억하는데 총리께서 조선요인과 일본문제를 이야기할 때 사또(佐藤), 나고야(名古屋) 등의 어휘가 나와 나는 순간적으로 잘 몰라 통역하지 못했다.
총리께서 이것을 바로 발견하고 즉각(자신이) 일본어로 손님께 말하셨다.
총명이 일생을 풍미하던 사람도 때로는 멍청해진다.
나는 갑자기 난처하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회견이 끝나고 나서 총리는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이미 이런 문제들을 발견하여 여러 가지 말들을 통역하는데 되도록 빨리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총리는 외교부에 지시하여 일본의 인명, 지명 사전을 편찬하여 영문발음을 병기하고 빨리 기억하도록 하였다.
총리는 나에게도 그날 통역하지 못한 것을 지적, 다음에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돌아온 즉시 일본어 통역을 찾아 총리의 지시를 전달하였고, 이들 사이에 일본인명과 지명사전을 편찬하여 각종 어휘의 발음 번역 등을 서둘러 외우도록 하였다.
나 자신은 특히 전심전력을 다하고 감히 태만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는데 총리가 언제 또 조선 손님을 맞아 회견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대략 한 달 후에 조선 손님을 회견했는데 과연 일본인명과 지명이 나왔는데 내가 통역을 다하자 총리께서 나를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계속>

1972년 9월 저우언라이(左) 중국 총리가 중·일 국교 수교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와 만찬장에서 건배하고 있다

▲ 박 실 초역 / 전 국회사무총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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