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중국 방문이 대외적으로 신문 등에 공표된 이후 우호국가들 내부에는 중국의 대외 정책의 변화를 한 때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었다.
바로 71년 7월 31일 ‘중조우호합작 상호원조조약’ 체결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 당정 대표단이 중국에 오게 되어 나는 통역을 담당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이들 대표단이 베이징에서 일을 마치고 다른 지역을 방문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돌연 댜오위타이 영빈관으로 와서 대기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무슨 대단한 임무가 주어질 것 같은 의식은 있었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내용인지를 한동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이런 때 나로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며 기운을 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다음날 새벽 5시에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기 바쁘게 대기하던 차를 타고 비행장으로 나갔다.

■ 저우 총리가 직접 김일성에게 설명
그제야 나는 비로소 총리가 친히 평양으로 날아가서 김일성에게 키신저의 중국 방문 정황을 알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6시 쯤 저우 총리를 태운 전용기가 곧 바로 평양으로 날아갔다.
기내에서 저우 총리는 조금도 쉬지 않고 번역 문건들을 들춰 보면서 마음도 몹시 안정 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몇 년 동안 나는 통역하는 것을 빼고도 총리가 주관하는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총리가 낮 시간에 분주한 일정을 마친 뒤 저녁에도 백가지 일을 돌보는 등 정무에 힘들고 바쁜 모습(日理萬機, 萬機親覽)을 지켜보고 알게 되었다.
전용기는 최단거리를 직선으로 날아 한 시간이 조금 지나서 평양 순안(順安) 비행장에 도착하였다.
김일성 수상이 바로 비행기 옆 탑까지 몸소 나와서 총리를 영접했는데 그는 중국말로 “환영합니다. 어서 오십시오.”를 연발했고 저우 총리는 “수상께서 직접 나오셔서 환영해 주시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고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영빈관으로 안내하는 차 속에서 김일성은 “총리께서 너무 피로하실 테니 오전 중에는 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고 말했고 저우 총리는 “조반 식사를 마친 후에 바로 회담을 할 수 있는 가요?”며 김 수상의 시간(일정)을 물었다.
곧 이어 김은 별문제가 없다고 대답하여 곧 바로 평양 주암산(酒岩山) 기슭에 있는 영빈관으로 안내했다.
이 영빈관은 평양 대동강변을 따라 뒤로는 산을 등지고 강물을 바라보는데 자리 잡은 아늑한 곳으로 북조선을 방문하는 외국영도자가 거처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저우 총리는 이전에도 이곳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이날 아침 지나 김일성 수상이 다시 이곳에 들러 저우 총리와 회담을 열었다. <계속>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한 미국 닉슨 대통령의 특사 키신저(左)와 저우언라이 총리

▲ 박 실 초역 / 전 국회사무총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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