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 중국 방문의 숨겨진 의미
그해 7월 마오쩌둥 주석이 상하이에서 조선대표단을 만났는데 이때도 내가 다시 통역을 맡았다.
비교적 순탄하게 일을 마쳤다.
회견이 끝나자 마오 주석이 머리를 돌려 나를 보고선 함축성 있게 “자네 조선 사람인가?”라고 말했는데 내가 아니라고 내젓자 그는 머쓱한 듯 웃었다.
같은 70년 10월 8일은 김일성 수상이 몇 년 만에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역시 마오 주석과 저우 총리를 만났는데 나는 또 한 차례 그 자리에 나가 통역을 하게 되었다.
김과 이들 두 분은 모두 오랜 친구 같은 사이였는데 신중국 성립 후 김일성이 이미 수차례 이분들을 만났고 저우 총리는 평양에 가서 만난 적도 있었다.
다만 문화혁명기간의 몇 년간 중국래왕이 끊겼다.
그래서 김 수상은 중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공과 북한은 문혁기간에 냉냉한 사이였다. 1967~69년 문화대혁명기간에 김일성은 중국으로부터 철저히 비판을 당했고 김일성이 수정주의자이며 흐루시초프와 같다거나 물질적 쾌락에 빠져 시대적 혁명의 숨결을 무시하는 수정주의 처신을 하여 단죄해야 한다는 대자보가 나붙기도 했다한다. 중소 이념분쟁 때는 북한의 주체(主體)를 내세워 두 공산대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시도하기도 했다. 편집자 註>
1969년 10월 1일 중국 수립 20주년에 최용건이 이 국경절 행사에 참가하여 마오를 만났는데 그때 마오가 자신의 안부 인사를 김일성에게 전해달라고 최에게 부탁한 일이 있고 그 후 저우 총리를 답방 차 조선에 보낸 적이 있었다.
70년 4월 저우가 평양에 도착했을 때 김일성 수상이 공항 영접을 하고 저우 총리의 머리에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생긴 것을 보고 “총리께서도 노인이 되시는 군요.”라고 마음 아파했다는 것이다.
저우는 이때 회담에서 솔직하고 성실하게 중국의 형세를 설명했는데 김일성은(문혁기간의) 마음속의 응어리가 가셨다한다.
김일성도 풀어진 마음을 보이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베이징에 도착한 그날 저녁 마오 주석은 김을 국빈관인 댜오위타이 18호실에 투숙토록 하고 직접 그곳을 찾아와 김을 만났고 연회를 베풀었다.
그 때 댜오위타이 18호실은 수년 동안 수선을 하지 않아서 장식과 설비가 오늘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낡았으나, 외국 귀빈을 맞는 방으로서는 그것만큼 고급스런 방이 없었다.
저우 총리가 김일성의 이때 방문을 중시하여 친히 현장을 둘러봐 손보고 식단(메뉴)을 손수 짜고 좌석을 배정하는 등 일체의 의전을 준비토록 했다한다.

■ 마오쩌둥과 김일성이 함께 한 만찬
김일성은 내심 마오 주석이 친히 오는 것에 대해 내심 불안했는데 마오 주석이 그보다 19살이나 연상이어서 큰 선배였다.
마오 주석은 이미 그를 이전에 여러 번 자신이 기거하는 중난하이에서 연회에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김 자신이 머무르는 곳에 친히 찾아오니 김 수상으로서는 어려워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비서가 이르기를 마오 주석이 도착할 때까지는 아직 기다릴 시간이 더 있다고 만류했으나 자신은 일찍 홀 입구에 나가 대기하였다.
저녁 6시가 막 지나 마오의 승합차가 18호실에 도착하여 느린 걸음으로 그가 들어오자 오래 그곳에서 기다리던 김 수상이 앞으로 나아가 마오 주석과 악수하고 포옹한 뒤 서로 문안인사를 나누며 양국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자 플래시 섬광이 화려하게 작열했다.
마오 주석은 김일성의 손을 잡고 응접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몇 년간 만나지 못해 김일성이 먼저 신수가 좋으신 것 같다고 말을 건넸는데 마오는 “그저 그렇다(馬馬虎虎)”며 “나이가 들어 전에 비해 왼쪽 팔이 들어올리기 쉽지 않았으나 그 후 활동하여 곧 좋아졌다.”고 말했다.
마오는 김일성을 바라보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아직 나이가 젊다.”고 했고 김은 “주석 면전이라 나이가 젊어 몸이 매우 좋다.”고 응답했다.
이 해 김일성은 고작 58세였다.
이날 마오 주석과 김일성 수상은 국제정세를 논하며 천하가 매우 태평치 못함을 지적하고 중국과 조선은 한 집안으로(一家) 단결하여 공동의 적에 대응하자고 했다.
김은 마오 주석의 분석에 완전 동의하고 이번에 자신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마오 주석의 분석을 경청하고 중·조 양국이 마땅히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사 때 마오는 중국 음식 맛이 어떤가 평가를 해보라고 말하고 그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고기와 생선 등을 기름과 설탕에 섞어 살짝 볶고 간장을 얹어 검붉게 익히는) 홍사오러우(紅燒肉)인데 맛을 보고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김은 이에 응해 맛을 보며 정말 맛이 있다고 응수한 뒤 자신은 몇 년 동안 진짜 중국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오는 앞으로 더 먹어보라고 권했고 김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마오는 김일성에게 며칠 더 묵으라고 말했고 저우 총리에게 시간을 내어 김과 회담하라고 말했으며, 김일성도 이런 제의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이날 김과의 만찬에 마오는 3시간이나 시간을 보냈다. <계속>

1970년 4월 평양을 방문한 중화인민공화국 저우언라이 총리(좌)와 김일성

▲ 박 실 초역 / 전 국회사무총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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