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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식 장군은 수륙을 누빈 해병대의 덕장(德長)

| 추모의 글 |

○ 공정식 장군은 수륙을 누빈 해병대의 덕장(德長)

▲ 제재형 제15대 대한언론인회 회장

또 하나의 별이 떨어졌다. 몽매간에 그리던 남북통일을 보지 못하고 가는 길이 안타깝다.
귀신 잡는 청룡부대를 만든 전설적인 해병대사령관 공정식 장군이 지난 10월 25일 오후에 별세했다.
1925년 9월 3일 밀양에서 태어나 2019년 10월 25일에 돌아갔으니 만 94세 52일 간 누린 삶이다.
1957년 해군소위로 임관되고 1966년 해병 중장으로 예편되니 20년 간 복무한 장교이다.
그는 1947년 해군사관학교 1기로 졸업함과 동시에 해사 교관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1948년 해군 경주함 함장으로 바다를 지키다가 6·25전쟁이 터지자 해병대로 옮겨 1950년 8월 16일 김성은 부대가 주도한 통영상륙작전에 동참한다.
1952년에는 해병대 제3전투단장, 1957년 한미연합 상륙여단장, 1962년 해병 제1상륙사단장, 1964년 제6대 해병대사령관에 오른다.
바다의 용, 육지의 표범이라 일컬어질 만큼 바다와 뭍을 누빈 상륙작전의 달인이다.
6척 장신의 훤칠한 키, 늠름하고 단정한 용모의 덕장 공정식 장군의 무운은 승승장구하여 시산혈해(屍山血海)를 넘나드는 6·25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지장(智將)이요, 덕장(德長)이다.
1965년 베트남전선 파병 때 귀신 잡는 ‘청룡부대’를 창설한 주인공이다.
맹호·백마 부대와 더불어 한국군의 위용을 떨친 한국의 제1파병 시기, 가리산 전투, 화천· 춘천지구 전투, 6박7일간 밀고 밀리고, 뺐고 빼앗기고, 굶고 졸며 ‘작전상 후퇴’ 속에서 ‘하나님의 보우하심’을 체험했다는 도솔산 전투, 장단·사천강 전투 등의 실황은 눈물겨운 비극을 극복한 승전보였다.
미국 해병대도 쉽사리 접근치 못한 난공불락의 도솔산 고지를 탈환한 우리 해병대의 죽기 살기 투혼을 높이 기른 우남 이승만 대통령은 ‘무적해병(無敵海兵)’이라는 친필 휘호를 하사했다.
오늘날 우리 ‘무적해병신문’의 제자(題字)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명필 그것이다.
공정식 장군과 나는 ‘무적해병신문’ 고문단의 일원으로서 해병대전우 홍보매체의 발전과 해병대의 사기진작 및 해병 전우의 일치단결·충성봉사에 앞장 서 왔던 것을 큰 보람으로 길이 추억하고자 한다.
지난해 이른 봄 공정식 장군은 이화장 우남 동상 앞에 모인 젊은 참배객들을 상대로 “전쟁은 이겨야한다”는 주제의 특강을 한 적이 있다.
90 넘은 노구에도 꿋꿋이 서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사자후를 토하는데,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에서 지면 죽을 뿐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죽기를 각오하면 살아남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우남정신으로 나라를 지키자”하고 외친 것이 지금 생각하니 공정식 장군의 마지막 유언처럼 되새겨진다.
공정식 장군은 행운아라 할 수 있다. 그 숱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고 정계에도 발을 디뎌 7대 국회의원(공화당·밀양)으로서 민의를 대변했고, 사업가(해경상사 대표)로서 월급도 주어봤다.
한성로타리클럽 회장으로서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에도 앞장서봤고 국방부 군사정책 자문위원, 성우회 부회장, 해병대 해외참전전우회 명예회장, 재향군인회 고문, 이승만기념사업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공 장군은 남달리 훈장복도 많아서 앞가슴을 가득 장식하고도 남는다.
1949년 8월 미국 군사고문단장 납북사건으로 야기된 대북응징작전인 ‘몽금포전투’에 참전한 공로가 뒤늦게 알려져 2016년 최고 훈급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2회), 보국훈장 통일장 및 삼일장, 미국 지휘관 공로훈장 및 금·은성 훈장, 베트남 킹캉훈장, 중화민국 운마훈장, 태국 백상훈장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註 대한민국에는 건국·국민·무공·근정·보국·수교·산업, 문화 등 8개의 훈장이 있다. 무공훈장으로는 태극·을지·충무·화랑·인헌 등 5등급이 있다.)
평소에 공 장군은 조용히 말한 적이 있다. 육·해·공은 ‘군’인데, 물불 가리지 않고 바다와 육지를 누비며 용감하게 싸우는 해병은 ‘대’라고 불리고 ‘참모총장’이 아닌 ‘해병대사령관’이라며 중장으로 보직한다. 사기진작 측면에서 개선책이 없을까?
공 장군은 부인 주영열 여사와의 사이에 3남(용우·용대·용해) 2녀(옥희·덕희)를 두었는데 아들 셋이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은 해병대 출신이다.
공 장군님, 하늘나라 가시면 베트남 파병을 주도한 김성은 전 국방장관,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 채명신 전 주월군 총사령관, 김연상 전 청룡부대장 등을 만나 베트남전쟁을 화제 삼아 정담을 나누게 되겠지요.
부디 질병과 고통과 사망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소서,
그리고 공 장군의 모습이 그리울 때면 고이 잠드신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을 찾아 국화 꽃 한 송이 놓고 기도하겠습니다.
근심 걱정 내려놓고 평안히 쉬소서, 안녕. 샬롬!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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