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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백 년이 흘렀다… 해병대가족 9명이 탄생되었다!박성선(해병 196기) 노병

박성선 노병(해병 196), 아들 박수영(해병 858), 조카 박세영(해병 1189), 손자 박범근(해병 1219)
매제 한영규(부 146), 조카 한태종(해병 1045), 사돈조카 한민종(해병 1206)·한종율(해병 1219)·한종문(해병 1234)

박성선(해병 196기) 노병

■ 1개 분대 병력이 구성되다
양평군 개군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 살고 있는 박성선(해병 196) 노병을 찾았다.
박 노병의 삶은 해병대를 빼고 말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 아들과 매제와 처조카를 합하여 8명의 해병을 태어나게 했고, 그 여덟 명의 해병은 모두 박성선으로부터 시작됐기에 그 가정에서의 해병대 시조이기도 하다.
박 노병의 직계로는 아들 박수영(해병 858), 조카 박세영(해병 1189·수색 84차)과 손자 박범근(해병 1219)을 합해 3명의 해병대가 탄생했고, 여동생 가족으로는 매제(여동생 남편) 한영규(부 146·망치부대)와 그 아들 한태종(해병 1045)과 사촌(한영규 동생의 아들) 세 명 한민종(해병 1206), 한종율(해병 1219·수색대), 한종문(해병 1234·9여단)이 나란히 해병대전우들이다.
이렇게 박성선 노병 집안은 5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2대에 걸쳐 1개 분대 병력이 탄생된 것이다.
이렇게 놀라운 해병대 가족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그 가정의 큰 어른인 박성선 노병의 반듯하고 절도 있는 해병대 모습이 아랫사람들에게 귀감이 됐기 때문이다.

■ 국가사랑의 피를 이어 받은 박성선 해병대할아버지
박성선 할아버지에게 왜 손자들이 반했는가? 그 가정의 원천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피를 흘려온 애국자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박 노병의 선친(박태희 작고)은 6·25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6·25전상이 6급을 받은 국가유공자고 화랑무공훈장 수훈자다.
이러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장남 박성선 역시 월남전 참전유공자고 고엽제후유의증 환자다.
아버지가 전쟁의 상처로 평생 동안 고통으로 고생했던 것 같이 그 아들도 월남전에서 얻은 고엽제후유증으로 온몸이 고장 난 채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이고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엽제 질병은 매우 무서운 고통을 주고 있다.
박 노병은 월남의 정글을 누비며 ‘청룡, 그대의 기백으로’ 자유를 위해 싸웠지만 얻은 것이라곤 뇌경색, 뇌정맥 갑상선, 신경 척추신경, 혈압 당뇨, 담낭, 고지혈 등 10여 항의 대형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나라에서는 경도 판정자로 끝나 있다.
14만 여명의 월남참전 고엽제후유증 환자들이 모두 그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살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특별한 처우가 실종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국가정책이다.
박 노병의 경우 큰 수술로 복부 수술 2회, 목, 척추 등을 다섯 번이나 받았으면서 말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자만이 눈물의 대가를 안다고 했던가?
박 노병은 자신의 어려웠던 삶을 알고 있기에 남의 어려움을 돌봐주고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 결과 50여 회의 감사장과 표창장을 받았지만 어느 하나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의 미덕을 품은 채 오늘을 충실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 해병대 가족이 시작되기까지
박성선은 1967년 12월 해병 196기로 입대했다.
양평군 개군면이 고향인데 그곳에서 함께 자란 친구 5명이 어느 날 “우리 해병대로 가자”고 의견을 모은 뒤 해병 173기로 지원했으나 3명만 합격되고 박성선 외 한 명은 불합격됐다.
체중 미달이었던 박성선은 세 번을 도전하여 2년 후에 겨우 합격하여 친구들보다 23기가 뒤쳐진 196기로 입대하여 신병교육을 마치자 당시 치열했던 월남전에 1968년 7월 파병되어 다낭 11연대 3대대 통신병으로 근무하면서 작전 중 척추를 다쳤고 고엽제후유증을 얻었다. 【신동설 발행인】

박성선(해병 196기) 노병

▲ 박성선(해병 19)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양평고엽제구급차 과장
양평군 자율방재단원
바르게살기운동본부 양평협의회 산악대장
신양평산악회 개군산악대장
해병대전우회 개군분회 창설초대회장

 

| 일문일답 | 박성선(해병 196기) 노병

○ 해병대가족 9명 탄생 비결은 할아버지의 ‘모범적인 삶’

- 그동안 큰 수술을 다섯 번이나 받았다는데 가장 힘든 수술이 어떤 것인지요?

40세 전에는 잘 몰랐다가 면역력이 약해지니까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더군요. 이런 현상은 고엽제환자들의 공통된 상황입니다.
가장 힘든 것은 ‘대수술을 받아서 괜찮을 것이다’고 생각했다가도 알지 못하는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이겨내는 일입니다.
창자가 튀어나와서 두 번의 복부 대수술을 받았는데 항상 마음이 불안합니다.

- 그 고통을 평생 동안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얻나요?

산에 많이 다닙니다. 산에 오르면 고통이 사라지며 성취감이 생기는데 모두가 해병대정신 덕분입니다.
산에 오르면서 “해병대정신! 해병대정신!” 하면 나도 모르게 쭉~ 쭉~ 올라가게 되더군요.
‘고엽제후유증은 죽을 때까지 갖고 가야 할 나의 동반자다’고 생각하며 고통을 이기려고 산악대장을 맡아 열심히 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프다고 하면 모두 거짓말인줄 압니다.

-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아버님이 46세 젊은 나이에 작고하셔서 남동생 두 명과 여동생 한명을 장남인 제가 키워야 했습니다.
그동안 동생들 돌보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앞섭니다.
군에서 통신병으로 있다가 제대해서 한국통신에 입사하여 3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산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남의 땅에 허락을 받아서 우리 집 소유 6천 평을 합해 10만 평에다 관상수를 심었던 게 돈이 되기 시작하더군요.
그 돈으로 동생들 공부시키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집안에 본인 외에 8명의 해병대가 탄생한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손자들이 할아버지 때문에 해병대에 반해서 갔다고 합니다.
별로 잘살아오지 못한 할아버지를 그렇게 평가해준 손주들과 조카들에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고 더욱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개의 말씀 부탁합니다.

15년째 세계 빈곤아동을 위해 매월 6만원씩 내고 있습니다. 매년 성탄절과 어린이날에는 10만 원씩 내고요.
우리도 어렸을 때 미군을 만나면 “Give me”하며 손을 내밀었던 가난한 애들이었죠. 그때를 생각하면 오늘의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게 됩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가난했고 그 가난을 극복한 강한 국민성을 가졌다는 것을 기억해준다면 장래가 밝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두 과거를 망각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박성선 노병은 오늘을 행복한 마음으로 살고 있기에 전쟁의 후유증인 고엽제의 고통을 잊고 산다. 이것이 가장 현명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반문해 본다. 8명의 해병을 탄생하게 한 그의 모범된 삶에 경의를 표한다.

박성선(해병 196기) 노병의 해병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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