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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 역사상 최초로 ‘국회외통위’ 청룡장학회 참석하다국회외교통일위원회(강석호 위원장·해병 351기, 정병국 위원·해병 416기)
  • 취재 : 장하정 취재본부장, 사진 : 박흥배 보도국장
  • 승인 2019.01.1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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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청룡장학회 보고 및 송년의 밤 행사 참석자들이 국민의례 하고 있다.

2018.12.14. 저녁. 베트남 호찌민시 중심가에 있는 뉴월드호텔 벤탄홀에서 호찌민해병대전우회 2018년 청룡장학회 보고 및 송년의 밤 행사가 거행됐다. 전우회 주요 인사와 한인사회 주요 임원, 호찌민 영사관을 대리한 부총영사관 외에도 특히 눈에 띄는 참석 인물이 있었다. 바로 해병대 출신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강석호(자유한국당·경북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3선·해병 351) 위원장과 정병국(바른미래당·경기 여주시양평군·5선·해병 416) 위원이었다. 통상적인 송년회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갖는 행사지만 연말에 국내 각종 공식·비공식 행사로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국회의원이 베트남 호찌민전우회의 행사에 참석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무적해병신문사의 기자들이 가방을 챙겨 부랴부랴 베트남을 향해 달려갔다.

■ 베트남해병대전우회를 가다
베트남해병대전우회는 기존에는 주로 호찌민에서 운영되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도 전우회가 창립되어 현재는 해병대전우회베트남연합회가 구성되어 연합회장은 조규석(해병 222) 월드비나 회장, 호찌민전우회는 고대원(부 172) 회장, 하노이전우회는 전현수(해병 515) 회장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기자가 지금까지 방문한 여러 전우회를 관찰한 결과, 모임이 활성화 된 전우회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공통점은 바로 전우회 임원진의 개인적인 헌신과 사명감 이외에 원로 해병들이 임원진의 추진사항에 대해 간섭은 최소화하면서도 필요시에는 전폭적으로 물심양면의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기자가 이번 방문을 통해 살펴본 베트남 호찌민전우회도 전형적으로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청룡장학회 보고 및 송년의 밤 행사
본 행사에 앞서 국회의원과 청룡장학회 및 전우회 주요 임원이 간담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장학회 사업의 경과를 설명하고 국회 차원에서의 지원사항 등에 대한 의견이 교환됐다.
간담회 직후 고대원 호찌민전우회장의 주도하에 준비된 2018 청룡장학회 보고 및 송년의 밤 행사를 시작, 박재만 부회장이 사회를 보며 진행했다. 엄숙한 국민의례에 이어 주요 내빈 소개 및 축사와 인사말이 있었다.
강석호 의원이 “여기 같이 있는 정병국 의원은 5선이고 저는 3선인데 의원 간에는 다선 의원 순으로 서열이 정해집니다. 그러나 해병대 모임에서는 제가 선임이라 술이 떨어지면 ‘정 의원, 여기 술이 떨어졌으니 더 가져와!’ 하면 ‘예, 선배님, 알겠습니다.’ 하고 냉큼 다녀옵니다.”라고 말해 좌중에 폭소를 자아내는 한편,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표어를 은연중에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강 의원과 정 의원은 자신들의 신분을 떠나 마주한 원로 전우회원들에게 “선배님, 선배님”하며 다정다감하게 대해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내빈 소개와 축사 및 인사말에 이어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이호연 총재의 신년사(고대원 회장 대독)가 있었고, 배용효 청룡장학회장이 장학회사업 추진 배경과 목적, 처음 시작한 2008년부터 금년 10월까지의 추진 실적 및 주요 행사, 기대 효과 및 향후 계획 순으로 보고했다.
이어 한 해 동안 전우회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내빈께 감사패 및 감사장을 전달한 후 모두 일어나 ‘나가자 해병대’가를 제창했다. 그 자리에는 60대 이상의 회원이 많았음에도 20대 현역 해병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군가 소리가 우렁차 그 자리에 있던 기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1부 행사를 마치고 2부에서는 그날 행사를 위해 준비한 여학생들이 무대가 쿵쿵 울릴 정도로 열정적인 안무와 함께 노래를 열창해 주었고, 회원들의 여흥이 이어진 후 한 번 더 ‘나가자 해병대’가 제창을 끝으로 행사가 완전히 마무리됐다.
행사에 참석한 또 다른 특별한 모임이 있었는데 바로 ‘포헌회(포항헌병대전우회)’이다. 이들은 포항 헌병대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을 바탕으로 이종태(해병 375) 회장 주도하에 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정 의원도 여기 회원인 관계로 이번 행사의 취지를 듣고 이를 위해 성금을 찬조하고 고국에서 달려와 행사에 참석한 것이었다.

■ 베트남 청룡장학사업
여기서 잠깐 장학사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언급해 본다. 해병대 청룡부대는 대한민국 전투부대로서는 최초로 해외 파병된 부대로서 1965년 10월에 캄란만에 상륙했다.
이후 투이호아에서 전투를 실시하다가 미 해병대사령관의 요청에 따라 1966년 8월에 추라이 지역으로 이동했고, 1967년 12월 호이안 지역으로 북상해 1972년 2월에 마지막 부대가 철수를 완료할 때까지 무려 약 4년 2개월 동안 이 지역에서 거의 매일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
청룡 장학사업을 주도하는 김선만(해병 211), 조규석(해병 222), 류재목(해병 229) 원로 회원은 모두 청룡부대 일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전역한 이후 이곳 베트남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으나 이제는 모두 비교적 건실한 사업체를 운용하고 있다.
김선만 고문이 가장 먼저 장학사업을 제안했고, 나머지 회원들이 이에 동의하여 이를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복병은 의외로 현지 주민들이었다. 류재목 청룡장학회 후원회장을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미래지향적 뜻 품은 장학사업
“우리는 이곳 월남에서 전투를 하면서 매일매일 나와 전우들이 하루하루 무사하길 기도했습니다. 전투 중 전우를 잃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로 인해 분노가 쌓여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들도 당시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음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곳 베트남 사람들이 참 순수하고 착한 국민성을 가졌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희와 베트남인들은 전쟁의 상처를 입은 공동의 피해자들이라는 공감을 가졌던 겁니다.
그래서 2005년, 이곳 전우들 몇 명이 뜻을 모아 당시 우리가 주둔했던 호이안 지역의 현지 학생에게 장학사업을 진행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김선만 선배와 함께 지역민들에게 우리의 뜻을 밝혔는데 그들은 우리와 대화 자체를 꺼렸습니다.
당시 호이안 일대의 거주민들 대부분이 베트콩이었거나 그 부모형제였기에 누군가는 청룡부대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청룡이었던 우리에게 분노의 감정이 가시지 않았던 것이지요.
특히 이곳 호이안재향군인회는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만 가입할 수 있어서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컸는데 청룡부대와 싸웠던 그들은 40년이 지났어도 감정이 남아있어서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저희는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약 3년 동안 우리의 진심을 말했습니다. 그 결과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도 반신반의와 의심의 눈초리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우리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마침내 첫 번째 행사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현지 교육국에서는 지역학교에 낡은 책걸상 교체를 부탁할 정도로 우리를 신뢰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곳 호찌민 시에서 국도로 무려 21시간을 달려가면서 그들의 부탁에 응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21시간을 달려온 우리는 피로에 지쳤고 운동장은 빗물이 흥건하였건만 책걸상을 차에서 내려 옮기는 동안 학교에서는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책걸상 운반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점차 우리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은 현지 학교들이 서로 우리의 지원을 받으려고 경쟁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이 장학사업은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에서도 승인한 공식사업이 되었고 베트남재향군인회가 정부에 보고하여 승인을 받은 공인된 사업이 되었습니다. 지난 2015년 행사에는 중앙회 이상로 총재가 처음으로 참석했고, 올해 10월 행사에도 중앙회 이호연 총재와 임원들이 방문해 자리를 더욱 빛내주었습니다.
초기에는 연 2만 달러 정도의 성금을 조성하여 주로 책걸상과 같은 비품 위주로 지원을 하였으나 지금은 컴퓨터 및 전자제품 요구에 응해 지원했습니다. 또 학교 추천 학생 30명에게 장학금 1백만 동(한화 5만원/일인당 1년 학비) 씩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작년부터 인제대학교와 서울강서로타리클럽에서 뜻을 함께 하여 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있으며, 이번 행사에 인제대 학생들도 함께 할 예정입니다. 이 행사는 미래지향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산한 TV와 노트북으로 공부하면서 자라난 학생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학생들이 장차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한-베트남 국가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베트남 초등학교 장학금 전달식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강석호(右3) 의원과 정병국(左3) 의원 등 참석요인들이 베트남 초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베트남 초등학생들과 함박웃음 짓는 강석호(左1) 의원과 정병국(左2) 의원.
강석호 의원과 정병국 의원이 베트남 초등학교 학생들의 환영 퍼레이드를 함께 하고 있다.
강석호(左) 의원과 정병국(右) 의원이 교육기자재 대형TV를 전달하고 있다.

■ 베트남 초등학교 장학금 전달식
다음날 12월 15일, 장학금 전달 행사 참석자들 일행은 호찌민시의 국내선 공항에서 다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일행은 버스를 타고 디엔반군에 위치한 판딴따이(Phan Thanh Tai)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그곳은 과거 청룡부대  제1대대 제3중대가 주로 작전했던 지역이었다.
일행이 도착하자 시골 학교에는 주민들이 모여 있었고 고적대의 연주 아래 학생들이 태극기와 베트남 기를 흔들며 방문단에게 일일이 꽃다발을 걸어주며 환영했다. 이어 인제대학교 양영애 행정실장의 인솔하에 30여 대학생이 도착, 입장하자 장학금 및 물품 전달식 사전행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노란 베트남 전통복장을 차려 입은 어린 학생들이 단체무용을 선보였고 이어서 안무가 가미된 이중창, 그리고 간단한 단체율동 등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손으로 그린 태극기를 흔들며 강석호, 정병국 의원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바람에 두 의원은 만면에 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본 행사는 주요 내빈 소개를 시작으로 강 의원의 기념사, 류재목 장학회 후원회장의 격려사, 인제대학교 학생취업처장의 인사말에 이어 하퍽만 초등학교 교장과 푸옹따오 학생 대표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하퍽만 교장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 학교는 2017년도에 지역 우수학교로 선정되었지만 지역 내 주민과 학생들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해 많은 교육자재가 필요한데 이를 지원해 주므로 이러한 장학행사는 우리 학생들에게 매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푸옹따오 학생은 “어려운 우리들을 위해 장학금과 교육자재를 전달해 준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감사하며 이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장학금 전달식과 교육기자재인 대형 TV 21대 기증식이 있었다. 이에 소요된 기금은 국회 해병대전우회에서 모금한 성금과 호찌민전우회, 포헌회, 무적해병신문의 성금으로 이루어졌다.
인제대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로 모은 장학금을 전달해 마음을 훈훈하게 했고 호찌민전우회는 축구공과 축구용품을 전달한 후 전달식을 종료했다.

청룡부대 호이안 주둔 당시 여단본부 자리의 현재 모습.
장하정(예·해병중령) 본지 취재본부장이 여단본부 부대표지석을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여단본부 자리를 찾다
점심을 마치고 일행은 조규석 회장이 고노이 섬에서 운용하고 있는 공장을 방문했다. 공장 크기는 30m*200m 크기로 안에 들어가 보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조 회장은 과거 월남전참전 시 근무했던 기억이 떠올라 현지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곳에 공장을 세웠으나 이곳의 젊은이들도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관계로 공장 운용에 필요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 공장의 2/3 정도가 비어 있었다.
공장을 둘러본 후 청룡부대가 호이안에 주둔할 당시 여단본부였던 곳을 찾아 길을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여단본부라고 얘기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여단장 집무실이 있던 곳이다.
모든 흔적은 사라지고 현재는 당시 여단본부가 사용하던 국기게양대와 부대표지석만이 남아있다. 여단본부 방문을 마친 일행과 인제대학교 학생들은 각자 숙소로 이동해 여장을 풀었고 우리나라 교민이 운영하는 다낭의 식당에서 만찬을 가진 후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때마침 그날은 ‘동남아시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컵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이 말레이시아와 결승전을 치른 날이었다. 모든 생맥주집이 장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안에 있던 손님과 주인은 가게 한 곳에 모여 축구만 보고 있었다.
마침내 축구가 승리를 거두어 우승하게 되자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낭시 전체가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거리에는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이 흔드는 붉은 베트남 국기로 뒤덮였다. 기자도 우리나라 사람인 박항서 감독이 승리의 원동력이 된 점에 잠시 호기를 부려 주변 현지인들에게 박항서를 외치며 맥주를 한턱냈다.
호이안에서의 행사를 모두 마친 후 그 다음날(16일), 인제대학교 일행은 귀국하고 강 의원은 다른 행사를 위해 동남아 인접국으로 떠났으며, 정 의원은 호찌민시로 내려와 국내에서 국회 일정상 급히 귀국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도 17일에 조규석 회장이 운영하는 공장을 방문한 후 귀국했다.

■ 취재후기
기자가 이번에 베트남에서의 장학행사를 거행한 호찌민전우회와 해병대 출신인 강 의원 및 정 의원과 동행하면서 느낀 소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병대 생명력의 원천은 굳건한 서열 문화이다.
이는 군 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전우회가 만들어 지고 유지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과 동행하면서 그들이 보여준 해병대 선배들에 대한 모습에서, 해병대가 모이면 정당을 떠나 신분의 높낮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병대 기수가 우선이며, 이러한 정신이 지금까지 우리 해병대를 유지하게 하였고 앞으로 영원히 계속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점을 다시 한 번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둘째, 해병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정자세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자세란 무엇인가? 아무리 주변 환경이나 요인이 변하더라도 군인으로서 유지해야 할 본연의 정신자세를 견지하며 이를 언행으로 나타내고 이는 전역한 이후에도 조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때에는 조국의 부름을 받아 이역만리 타국에서 목숨을 촌각에 두고 격전을 치렀고, 이제는 조국이 베트남을 지원하자 가장 앞장서서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현지인들에게 이러한 행사를 가지는 모습에서 그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셋째, 해병대 조직문화의 핵심은 단결력이다.
단결은 현역에 있을 때는 전투력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전역한 이후에는 해병대의 이름으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그 힘의 원동력이 되며, 이는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한다.
이번 장학행사 시 베트남 현지뿐만 아니라 국내에 있는 각종 해병대 단체와 예비역들이 성금을 비롯하여 후원을 보내왔다. 그러한 마음은 자신이 해병대 출신임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있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한때에는 수많은 청룡해병 선배들의 피와 땀이 스며든 곳이었지만 이제는 이곳에서 자라나는 현지 어린 학생들이 자신들의 나라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간성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 선배들이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 학생들이 진정 베트남의 미래를 비추는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간직한 채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취재 : 장하정 취재본부장, 사진 : 박흥배 보도국장】

취재 : 장하정 취재본부장, 사진 : 박흥배 보도국장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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