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특집
체험으로 말하는 월남전과 해병대김무일 전 현대제철 부회장 (월남전 당시 소대장)
김무일 전 현대제철 부회장 (월남전 당시 소대장)

소대장인 나의 월급 145달러 중 80% 송금, 모든 군인이 그렇게 했다

그 돈이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드머니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고자 한다.
전 세계의 몇 개의 국가가 있을까? 유엔 통계에 의하면 198개국이 있고 대만과 같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나라들이 10개국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떠한가? 국토 면적으로 봤을 때 1위 러시아, 2위 캐나다에 등이 있고 우리는 세계 109위 정도다. 인구 밀도로는 세계 26위다.
금년에 우리는 개인소득 3만 달러를 넘겼다. 세계적인 사례를 봤을 때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돌파하는 시간이 8.5년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12년이 걸렸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기록한 국가는 28개국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30, 50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30, 50클럽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가 5천만 명 이상 되는 국가를 의미하는데, 전 세계 6개 국가가 이 클럽에 가입되어 있고 우리가 7번 째 국가가 됐다.
우리가 오늘날 이러한 위치에 오기까지 70년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계발 5개년계획, 중화공업정책, 그리고 88올림픽 개최가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초반 우리나라 GNP는 0달러였다. 5·16 이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가발을 수출하기 시작했고, 1964년 10월 10일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면서 지금까지 ‘무역의 날’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액이 5,100억 달러다. 당시 GNP는 65달러였다.
내가 소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받은 월급이 145달러였다. 나를 비롯한 모든 장병은 그때 받은 월급의 80%를 한국으로 송금했다.
그것이 대한민국 경제의 동력이 되었다. 그때 북한이 우리나라보다 더 소득이 높은 나라였다.
대기업들이 해외용역으로 벌어들인 돈과 월남전참전용사가 송금했던 돈이 100억 달러가 넘었으니 대단한 국가경제의 초석이었다.
중화공업정책과 경제개발 5개년계힉이 없었다면 지금 누리는 영화는 상상 못한다.
자동차를 제대로 만드는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한국 등 단 6개국뿐이다.
중화공업 육성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2만여 개의 부품을 필요로 하는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가 됐다.
월남전의 참전이 우리나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당시 산업 현장의 한 축을 월참용사들이 이루었던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육사 출신 친구 하나가 LA폭동 당시 미국에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노병들이 나타나 폭동을 진압하고 교민을 보호했었는데 바로 해병대 예비역들이라고 전하면서 해병대의 진면목을 봤다고 놀라워했다.
현대그룹 입사 후 정주영 회장이 해병대 출신을 영입했다. 노사분규 때 정몽구 회장은 해병대 출신 직원을 뽑으라고 지시했었다.
정몽구 회장은 인사 담당 중역이 장교 출신 100명을 뽑는다고 하자 50명은 해병대를 뽑으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해병대 예비역 장교들의 현대그룹 입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자부심이 선배님들, 후배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적해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