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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의 해병대 충성도박환인 6·25진실알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 (예·해병소장)
박환인 6·25진실알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 예·해병소장

귀신 잡는 해병 → 무적해병 → 신화를 남긴 해병

선배 해병들의 호국충성의 피값으로 얻은 명성

6·25전쟁은 한국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과 많은 참전군이 있었다.
지상전 병력만 살펴보면 미국은 1야전군, 3군단, 9사단, 2연대전투단 등 총 30만여 명의 병력이 참전했고, 영국은 1만 4천여 보병여단, 캐나다는 6천여 보병여단, 터키 5천여 보병여단 및 프랑스, 룩셈부르크 등 11개국에서 보병대대가 참전했다.
한국군은 육군이 8개 사단 2개 연대가 참전했고, 해병대는 창설 당시 380명이었던 병력이 전쟁이 끝날 무렵 27,500명이 됐다.
인명피해 상황을 봤을 때 해병대 부상자가 타군에 비해 비율이 높은 것을 보면 해병대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알 수 있다.

■ 6·25전쟁 당시 인명 피해 상황

해병대의 창설의 주역인 신현준 초대 사령관은 “민에게는 양이 되고 적에게는 사자가 되라”는 훈련 이념을 제시했다.
또한 해병대 발전의 디딤돌을 놓은 김성은 제4대 사령관은 “초창기의 우리 해병대는 불건전한 조직구조와 열악한 무기와 장비, 치열한 전투 환경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초인간적인 능력을 발휘해  엄청난 전과를 수립함으로써 온 국민의 열화 같은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이는 오로지 해병대의 전통과 문화 속에 배어 있는 조직에 대한 충성과 전우 간의 낭만이 빚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오늘날까지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된 6·25전쟁에서의 ‘귀신 잡는 해병’, ‘무적 해병’, 그리고 월남전에서의 ‘신화를 남긴 해병’ 등은 선배 해병들이 전투 현장에서 해병대 명예와 호국충성의 피 값으로 얻어낸 명성이다.
그 덕을 보고 있는 우리 후배들은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호국충성해병대’로서의 애국심을 예비역이 돼서도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정신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 6·25전쟁 기간 해병대 작전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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