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83세(1933년생)의 나이를 맞은 노해병 안근식 목사는 6·25전쟁 중 전상을 입어 한쪽 다리를 잃은 채 평생을 살아온 전쟁 상이용사이고 원로목사이기도 하다.
보훈의 달을 보내면서 귀감의 생을 살아온 안 목사와 잠시 그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 안녕하십니까? 우선 해병대 입대 이야기를 먼저 듣겠습니다.

황해도에 살던 조부는 경기도 양평과 여주에서 잠시 살다가 내가 6살 되던 해인 1939년 서울 대방동으로 이주해왔습니다.
거기서 6년제 중학교를 다니다 4학년 때인 17살에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 해병대를 가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17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학교에서 학도호국단훈련을 받아 군대에 익숙해졌을 때입니다.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까지 피난 갔다가 서울 수복 당시 집으로 왔습니다.
그때 미 해병대와 우리 해병대가 군용 트럭으로 서울 장안으로 입성하는데 태극기를 들고 길에 나가서 열렬히 환영을 했습니다.
그때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육군은 안보이고 해병대만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렇다! 나도 해병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동네 교회 벽에 ‘해병대 신병 모집’이란 벽보가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드디어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지요.
1950년 12월 10일 일신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험을 치루고 입대하게 됐습니다.

- 당시 시험은 어떻게 봤으며 합격 후 입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해병 5기생을 1,000명 모집했는데 5,500명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경쟁률이 높다보니 자연히 시험이 셌을 수밖에 없었지요.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20명씩 조를 짜서 팬티 바람에 맨발로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선착순으로 자르더군요.
그렇게 합격이 되자 12월 15일 트럭에 태우더니 인천 부두로 가서 해군 LST에 태우고 진해 신병훈련소로 갔습니다.
당시 훈련소장이 김광식 대위였습니다.
20일 정도 훈련 중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되자 보름후인 1951년 1월 20일 우리 5기생들은 드디어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 처음 작전을 어디서 했습니까?

우리야 뭘 알겠습니까? 1월 20일 훈련이 끝나자 그날 저녁 해병대 부대가 재편성됐지요.
재편성하고 남은 병력이 1개 대대 병력이 남게 되자 독립5대대(대대장 오명복 소령, 부대대장 이봉출 대위)가 탄생됐습니다.
그날이 해병대사관(해간) 3기도 같이 수료하는 날이었습니다.
해병대사관 3기는 견습사관, 해병 5기는 견습수병이라 불리며 배치되더군요.
밤 12시가 되니까 출동 명령이 떨어지더군요.
칠흑같이 어둔 밤에 우리는 트럭에 실려 전선으로 이동하는데 어디로 가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지휘관만 알고 있을 뿐 사병들인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춥긴 왜 그리 추운지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죠.

- 군인들이 추위를 이기려고 트럭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전쟁 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상됩니다. 다음 장면은 진을 치고 전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딱 맞아요. 바로 그 장면이지요.
먼동이 트는 새벽에 어디선가 내리라고 하는데 그곳이 안동이라고 하더군요.
그곳에 진지를 구축하라고 하는데 땅이 꽁꽁 얼어서 도무지 곡괭이가 들어가지 않는 거예요.
내리치면 탕탕 튀기만 하지 땅이 파지지 않더군요.
5.5대1의 경쟁을 이기고 들어온 우리들 아닙니까?
체력이 좋았던 우리들은 드디어 땅을 파고 진지를 구축하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3일쯤 지나니까 적군들이 해병대가 온다는 정보를 듣고 도망갔다고 하더군요.
그 후 영주작전을 하고 예천, 문경, 죽령을 넘어갔다가 다시 영주를 거쳐 안동으로 왔다가 다시 영덕을 지나 강구 해안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LST에 승선했습니다.
그때까지 별로 전투를 못했습니다. 적군들은 해병대가 온다고 하면 모두 도망가기에 급급했었습니다.
우리 독립5대대는 인천 팔미도 앞에서 인천 재탈환작전을 하다가 김포 양곡으로 이동하여 진을 치고 앉았습니다.

- 전상은 언제 당하셨습니까?

이듬해인 52년 10월경 휴전을 앞두고 한 치의 땅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전투를 했습니다.
경기도 하성에 대기하고 있었던 우리는 헬기에 올라서 사천강전투에 긴급 투입됐습니다.
10월 28일 새벽 2시경쯤 됐을까 하는 시각에 31고지에서 전투를 하던 나는 낮은 포복으로 고지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죠.
그때 공중에서 굉음을 울리며 포탄이 터지는 거예요.
순간 나는 뭔가 내 몸을 맞았다는 순간적 생각과 함께 나가 떨어졌습니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듣질 않더군요.
몸집이 좋은 동기생 김동조는 나를 부축하고 산에서 내려와서 후송 대기 중이던 앰뷸런스에 올려놨습니다.

- 안타까운 일입니다. 순간이 목숨도 앗아갈 수 있고 또는 평생을 불편함과 신음 속에 빠뜨리는 것이 전쟁인가 봅니다. 그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나는 좌하태절단으로 상이용사 4급 판정을 받고 제대했습니다.
그때가 25살 때였습니다. 한쪽 다리를 잃고 대방동 집으로 돌아 왔죠.
부모님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안타깝게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학교 다닐 때 체력 좋고 펄펄 뛰는 준마와도 같았던 청년이 갑자기 의족에 의지하여 절룩이는 모습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스스로 위로 했습니다.
집에 부모님이 계시고 나를 위로해줄 형제가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상이군인들은 집안이 어렵고 의지할 곳 없이 거리에 내몰렸던 시대였으니까요.
나라에서 복지라곤 생각도 못할 때였습니다.

-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상이군인들이 제일 지탄을 받았었습니다. 자신을 국가에 바치고 내몰려있기 때문이었겠죠. 안 목사님도 그랬을 겁니다.

나는 그런 소리 안 들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보통 상이용사들이 모이면 15명쯤 그룹이 짜입니다. 집단으로 행동을 하였죠.
나는 상이용사들의 기강을 바로 잡아 국민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질서를 바로 잡으러 다녔습니다.
상이군인이 어디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면 달려갔습니다.
그러면 “저기 해병대 안 하사 온다”며 모두 잠잠해지곤 했습니다.
가보면 갈고리, 팔 하나, 다리 하나밖에 없는 전형적인 모습의 상이군인들이 모여 있는 겁니다.
대개 선·후배들과 대부분 낯이 익은 사람들이라 안 하사인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정화 운동에 힘쓰다보니 1956년도에 영등포구에서 사회부장관 표창을 상신해서 수상한 바도 있습니다.

- 목사 안수는 어떤 동기로 언제 받았으며 목회 활동은 언제 하셨습니까?

나는 어렸을 적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대림동, 도림동, 대방동을 돌아가며 천막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저는 고신측 출신이지만  목사로 1972년 12월 경기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1997년까지 70~8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 활동을 했습니다.

- 그러셨군요. 창설동지회 우태영 전(前) 회장님을 비롯한 해병대창설동지회원들과 조윤환(해병 17기, 6·25전상 1급, 국가유공자) 회장 등이 목사님을 적극 추천하셨습니다. 해병대뿐 아니라 인간의 귀감이 되는 분이라고요….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부끄럽습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자꾸 만나자고 하셔서 군대 얘기만 하려고 했습니다. 물으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상을 입어 진해 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때였습니다.
장교 병동에 해병사관 2기생인 권병주 소령이 있었는데, 평양군정청에서 문교 분야에서 있었던 분으로 영어를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분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죠.
그분은 나중에 간호해주던 최복순 간호장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나는 서울로 올라와 제대하곤 그분을 만나지 못했지만 어디서 잘살고 계신가하는 정도였습니다.
97년도에 동기생이 세상을 떠서 경기도 광주 화장장엘 갔다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권병주 소령을 만났습니다.
40년만의 해우였죠. 알고 보니 수원 우리 집 철길 건너편에 살고 있는 걸 서로 몰랐던 겁니다.

-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만남은 하나님이 이뤄주신다는 걸 알게 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만남이 어떤 만남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맞아요. 나는 그분을 다시 만나서 사랑이 얼마나 인간에게 소중한지를 알게 되고 감사했습니다.
그분은 평생 혼자 운신을 못하는 1급 상이용사였는데 78살까지 생존했었습니다.
그분은 욕창과 하체 완전 마비로 인하여 혼자 소변을 못 보는 분이었습니다.
부인 최복순 대위는 12년 연상으로 정말 정신적 사랑으로 평생 남편을 위해 헌신하였던 분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 남편의 뒷바라지를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10년 동안 권병주 소령의 병수발을 하며 대소변을 받아주는 일을 대신해줬습니다.
부인 최 대위님도 2006년에 작고했는데 나는 두 분을 함께 합장시켜드리는 일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하여 해드렸습니다.

- 참으로 보기 드문 미담사례입니다. 자신의 몸도 불편한 노인이 더 불편한 노인의 대소변을 10년간 보살피다가 보내드리고 부인마저 마지막까지 병수발을 하다가 돌아가신 후 같이 합치게 하셨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목사님이라고 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렇게 하기까지는 신앙심과 또 다른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정신이 바로 해병대정신 아니겠습니까?

예, 아마도 해병대라는 끈끈한 인연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해병대는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음을 느끼게 됩니다.

- 부인께서도 치매로 고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의 아내(박영애)와 1959년 결혼해서 안성철(대전 자운대 참빛교회 목사), 박경철(금속과 졸업, 벤처기업 경영) 두 아들과 딸 경혜, 이렇게 3남매를 두었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치매로 기억을 상실하고 살고 있습니다.
단란한 가정을 꾸며 목사의 아내로 살아온 헌신적인 아내로 살아온 여성의 삶이 고맙습니다.
늘 함께 있어 돌봐줘야 하고 밖에 나올 때는 혹시 집을 잃을까봐 차 안에 있게 하고 일을 보곤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 그렇게 살아온 길이 힘들고 지칠 텐데 그것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 힘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낫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를 배우라”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며 죽을 때까지 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함에도 이렇게 쓰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오늘의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한쪽 다리가 없음에도 감사하게 살아왔던 분입니다. 남은 한 다리로 절룩이며 하체 마비가 된 전우를 죽을 때까지 보살피고 그 부인의 생을 마감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부인마저 치매로 사랑하는 남편을 못 알아보는 가운데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인간애가 목사님께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됩니다. 성한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 다리가 남아있음에 감사했고 90을 향해가는 연추임에도 정신이 흐려지지 않고 있음에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이 다음 하나님 앞에 나갔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 부름 받으며 칭찬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고(고) 권병주 소령과 부인 고(故) 최복순 여사는 인간 세상에서의 목사님의 따뜻한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릴 것입니다. 부디 남은여생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생을 사실 것을 확신하며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동설 발행인  sds15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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