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훈부대, 제주기지 떠나 1950년 7월 16일 군산 상륙
장항 북쪽으로 기습 공격 감행, 북한군의 금강 진출 저지
군산·이리 방면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 벌이며 방어해…

■ 해병대의 처녀출전
제주도에서 6·25전쟁을 맞이하게 된 해병대는 천안에서 대천을 거쳐 군산으로 향하고 있는 북한군 부대의 진격을 지연 또는 저지시키는 한편, 군산에서 집적되어 있는 대량의 정부미(政府米)가 북한군의 손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정부미를 반출해내는 정부 당국의 반출작전을 보호 지원하기 위하여 2개의 보병중대와 1개의 중화기중대로 편성된 고길훈부대를 군산·장한지구로 출동시켰다.
이것이 곧 6·25전쟁기에 있어서 해병대의 처녀출전이었다.
창설된 지 불과 1년 2개월 만에 겪게 된 일이었으니 해병대로선 그야말로 성장 전의 나이 어린 소년의 몸으로 미지의 격전장에 출전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전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조국의 운명을 공산 침략으로부터 건져내고야 말겠다는 그 피 끓는 애국심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던 해병들.
그들은 평소 국방의 최강 부대가 될 것을 굳게 다짐해온 해병으로서의 긍지와 임전무퇴의 굳건한 신념에 투철해 있었다.
또한 그들을 싸움터로 내 보냄에 있어서 신현준 사령관은 해병대의 전통의 초석을 다질 기회는 바로 이 때이니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필승의 신념으로 용전분투하라는 요지의 훈시로 장병들을 격려했다.
때는 7월 중순경, 그러니까 6·25전쟁이 발발한지 꼭 3주째로 접어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 정찰대의 활약
1950년 7월 15일 오전 8시경 LST편으로 군산에 도착한 고길훈부대는 해양대학 교사에 본부를 정한 다음 장차 작전을 위해 즉각 수색대를 장항으로 보내어 적정을 탐색해오도록 명령했다.
그리하여 수색대장 김종식 중위는 대원들을 이끌고 선편으로 장항 쪽 해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즐비한 민간인 차량들 중에서 휘발유가 많이 들어 있고 타이어가 튼튼한 차들을 골라 그 위에다 기관총을 거지하여 시내 쪽으로 들어갔다.
장항에는 피난민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으며 그들의 말이 대중이 없는 것이긴 하였으나 종합해본 결과 적이 아직은 서산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그런 판단만으론 귀대할 수가 없었던 수색대는 보다 정확한 적정을 살피기 위해 서산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일행은 수신호를 하는 2~30명의 군인들과 경찰대가 있어 차를 세웠더니 그들은 인천에서 철수 중인 인천경비부 소속의 해군 장병들과 경찰관들이었다.
이들 일행은 해병대가 군산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곤 사기가 충천하여 어쩔 줄 몰랐는데 이때 수색대장 김 중위는 경찰관들이 소지하고 있는 99식 소총의 실탄을 회수하려고 했으나,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인천경비부의 권정식 소위가 저지를 하는 바람에 권총을 꺼내 그를 사살하겠다고 위협한 끝에 부족한 실탄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수색대는 그들을 뒤에 두고 대천 쪽 야산으로 올라가 정세를 살폈더니 북한군에게 실탄을 운반해 주고 오는 길이란 민간인 노무자들을 만나게 되어 더 이상 진출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알고 일단 군산으로 되돌아와 부대장에게 정찰 결과를 보고했다.

■ 불의의 요격으로 큰 전과
그리하여 고길훈 부대장은 비록 불리한 정세 상황이긴 했으나 적군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킴과 동시에 그 사이 계속되고 있던 당국의 정부미 해상 반출을 용이케 하기 위해 수색대의 계속적인 정찰 활동을 했다.
또한 10여 척의 민간인 선박들을 이용, 중화기중대(중대장 한예택 중위)와 제2중대(중대장 김광식 중위)를 장항 북방 약 4킬로 지점의 야산 일대로 진출시켜 진격해 오는 적 부대를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예비대로 선정한 제3중대(중대장 이봉출 중위)는 군산 쪽 해안에서 하명을 대기토록 했다.
그런 끝에 장항 북방 고지 일대에 진출해 있던 아군은 아군이 이곳에 배치되어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적군의 접근을 기다렸다가 통쾌한 일제 사격을 가한 끝에 약 3백 명의 적병을 사살 또는 부상시키고, 수 명을 포로로 잡는 등 뜻밖의 큰 전과를 거뒀다.
이러한 전과는 해병대가 원산에 상륙했을 때 북한군의 신문에서 확인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불과 2~30명의 사상자를 내고 이렇듯 큰 전과를 거두었던 고 부대장은 비록 기습적인 요격으로 일단 적의 예봉을 꺾긴 했으나 야포부대를 동반한 적의 대부대가 파죽지세로 쇄도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또한 실탄이 결핍된 낡아빠진 99식 소총으론 도저히 전투를 계속할 수가 없어 예비중대인 제3중대의 엄호와 지원 하에 장항에 상륙한지 약 7~9시간 만에 부득불 부대를 군산으로 철수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부대의 전 병력이 겨우 3백 명 남짓했고, 중화기중대가 보유하고 있던 화기라는 것이 고작해서 기관총 4문(경기 2문, 중기 2문)과 박격표 2문(91밀리 1문, 60밀리 1문)에 불과했다.
또 보병중대 대원들의 주무기라는 것이 낡아빠진 99식 소총뿐이었으니 M1소총 같은 신무기를 보내 달라고 상부(해본)에 긴급 요청을 하는 등 비상책을 강구했다.
한 발 한 발씩 쏘게 돼 있을뿐더러 총을 쏘면 약실에 탄피가 달라붙는 바람에 지렛대를 가지고 쑤셔대는 등 불편하기 짝이 없던 그 일제 99식 소총의 성능이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 육군의 작전 협조 요청
그리고 이날 철수 작전에서 철수 부대의 엄호를 위해 끝까지 고지에서 분전했던 대원들은 1중대 기관총소대(소대장 강영구 소위)의 사수와 부사수 및 그들을 대신해서 감투한 2명의 전령들이었다.
이들 사수와 부사수는 물밀듯 밀려오는 적을 맞아 계속 불을 뿜고 있다가 부상을 당해 후송이 되고 말았다.
이때 소대 전령인 김재곤, 김병천 등 두 이등 해병은 사수와 부사수를 대신해서 기관총의 윗덮개가 떨어져 나가고 실탄이 약실에 달라붙어 발사 기능이 마비될 때까지 사격을 계속했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기관총을 메고 고지를 뛰어 내려 부두까지의 10리 길을 엎어지며 쓰러지며 뛰고 또 뛴 끝에 부두에서 막 떠나가고 있는 철수 부대의 마지막 돛단배에 타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기까지 했다.
훗날 포로로 잡힌 북한군 병사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6·25전쟁 이후 물밀듯 남으로 밀고 내려오다가 장항지구에서 비로소 전투 같은 전투를 해본 것이라 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사용했던 그 낡아빠진 99식 소총으로 그처럼 강력히 저항한 아군을 가리키며 그들은 혹시 일본군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아군이 장항에서 철수한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당시 전주지구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육군 서남지구 전투사령부에서는 참모장 원용덕 준장을 아군 부대의 본부로 보내어 작전상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 하나는 서남지구 전투사의 관장 하에 있는 금강 상류 지역에 대한 아군의 정찰 활동을 계속해 달라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1개 중대 병력을 이리지구로 보내어 그쪽 방면으로 침투해 오는 적을 최대한 저지 내지는 지연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요청을 받게 된 고 부대장은 수색대로 하여금 금강 상류 지역에 대한 정찰 활동을 강화케 하는 판면, 부부대장 김병호 대위로 하여금 이봉출 중위가 지휘하는 제3중대를 거느리고 이리로 출동케 하여 그곳에서 임무를 수행한 뒤 본대의 철수 예정지인 목포에서 합류토록 명령했다.

■ 군산에서의 철수 계획
장항에서 군산으로 철수하게 된 고길훈부대는 그로부터 이틀 후 다시 군산을 철수하여 목포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날이 바로 고길훈부대가 제주도에서 군산에 도착한지 꼭 엿새째가 되던 날이었다.
고길훈부대가 군산을 철수하려 한 것은 그동안 정부미의 해상 반출 작업도 웬만큼 진척이 되기도 했었지만, 그 때 이미 적은 신성리에서 금강을 도하하여 군산을 남동쪽으로 포위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어느 새 장항쪽 해안에는 괴뢰군의 야포들이 모습을 나타내어 포격을 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철수를 결심하게 되었던 고 부대장은 우선 제3중대를 육군 서남지구 전투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이리 방면으로 보내어 그쪽 방면으로 침공해 오는 적을 저지하다 육로를 통해 목포로 향하도록 했다.
수색대는 정찰 임무 수행 후 마지막 철수 제대로 해상에서 대기 중인 LST에 승선토록 하명하고, 그 밖의 제1붕대(화기중대)는 부대본부와 2중대의 승선을 엄호한 후 철수토록 지시했다.
그런데 고 부대장의 이 같은 명령에 따라 이리 방면으로 향하게 되었던 3중대는 이리 북방 약 1킬로 지점에서 이리 쪽으로 전진해오는 강력한 적 부대와 조우하여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낸 격전을 치른 후 다음날 철로를 따라 목포에 당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산 외곽지에서 적정 탐색의 임무를 수행한 몇몇 수색소대 대원들은 시내에서 북한군 정찰대의 기습사격을 받아 3~4명의 부상자를 내었을 뿐 아니라 그 중 2명은 중상자로서 실종이 되었는데도 생환한 부상자들에 의해 전사자로 보고됐다.
그런 비보를 전해들은 수색소대장 김종식 중위는 부하를 잃은 슬픔과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바닷가에서 자신의 권총으로 자결을 기도하려고까지 했다.

■ 적의 기습 공격
이날 고 부대장은 장항 쪽 대안에 배치되어 있는 북한군의 야포 때문에 LST를 군산항에 갖다 댈 수 없어 부득이 군산비행장 끝머리 쪽 해상에다 정박시켰다.
그리고 어선을 이용, LST를 군산항에 옮겨 타게끔 준비를 갖추어 놓고 일단 비행장에 집결하여 철수를 개시했던 것인데, 예정된 철수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색대원들 중 군산과 이리 간의 개정리 쪽으로 나가 있던 진두태 상사와 신영철 하사는 계속 돌아오질 않고 있었다.
이날 아침 이들은 조천동고지까지 함께 진출했던 수색대장의 지휘에 따라 보다 전방 지역으로 나간 것이었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수색대장은 부대 본부에서 수색대의 철수를 지시하기 위해 보낸 공병장교 최정주 소위가 적병의 저격탄에 맞아 차체와 함께(운전병도 같이) 길옆으로 뒹구는 광경을 멀리서 목격했다.
즉시 대원을 시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부대 본부로 다녀오게 하니 부대 본부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사태의 다급함을 직감하게 되었던 수색대장은 때마침 철도 오른편 고지에 배치돼 있던 서청(西靑) 대원들의 협조로 철도원의 보선 공사용 차량을 손으로 작동하여 이미 텅 비어있는 군산역을 거쳐 급히 해양대학으로 갔다.
그곳엔 부대의 철수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보급관 이원혁 중위가 수 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장만한 주먹밥을 주계차에 싣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김 중위는 수색대의 한종원, 강태준, 김동원 하사 등을 그 차에 태워 개정리 쪽으로 나간 진 상사와 신 하사를 데리고 오도록 지시하곤 이 중위와 함께 곧장 비행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후에 돌발된 것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경과된 후 그 차를 타고 귀대 중에 있던 진 상사는 아직 상황이 급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는지 일단 해양대학에 들렀다가 비행장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런데 차량을 군산역을 거쳐 곧장 비행장 쪽으로 운행케 하지 않고 굳이 해양대학 쪽으로 몰고 가게 한 것이 화근이 됐다.
차량이 해양대학의 후문이 보이는 옛 명월관 앞 노상에 이르렀을 때 그만 돌산 쪽에서 북한군 정찰대의 일제사격을 받은 끝에 차는 길가의 민가를 들이받고, 타고 있던 사람들은 거의 전원이 중경상을 입고 만 것이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진 상사와 신 하사는 총격을 당하여 각자 나가떨어진 그 장소에서 실신하고 말았는데, 그 비보는 구사일생 비행장으로 달려간 다른 부상자들에 의해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부상자들도 거의가 다리에 총탄 세례를 받은 자들이었기에 누구 한 사람 쏜살 같이 뛰어가는 자는 없었고, 다만 적의 추격을 피해가며 각개약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의 누군가가 자기 손목시계를 민간인에게 벗어주고서야 간신히 구한 자전거를 타고 필사적으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그 대원의 다리에선 선혈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 최후의 철수장면
한편 이 같은 불상사가 빚어지고 있는 동안 이들의 도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바닷가의 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적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한 군산항에선 철수를 할 수 없어 비행장 끝 쪽의 바닷가에서 철수를 하고 있던 고길훈부대는 그 때 이미 모든 부대가 소형 민간 선박을 이용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정박 중인 수송선으로 이동 완료했다.
수색대장 김종식 중위를 비롯한 몇몇 대원들만이 바닷가에서 이들이 나타나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며 안절부절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수송선에서 출항 신호를 급하게 울려대자 부하들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했던 수색소대장 김 중위는 차라리 옥쇄를 하든지 자결을 해버리겠다면서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일본도로 할복자살을 기도했다.
곁에 있던 김익태 분대장과 계병도 하사관 등이 일본도를 빼앗아 던져버리자 이번에는 권총을 뽑아들고 자결을 하려기에 김 분대장과 계 하사관등이 저지했다.
“소대장님,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저희들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다. 꼭 올 테니까요.”
그러고 있던 참에 자전거를 타고 쓰러질 듯 달려오는 대원과 또 그 뒤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2~3명의 대원들로부터 그들이 당한 비보(진 상사와 신 하사가 전사한 것으로 보고)를 전해 듣고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한 척의 전마선을 타고 출항 신호를 다급하게 울리고 있는 수송선으로 향했다.
그 뒤를 추격하는 북괴군의 총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으니 군산 철수 그 최후의 장면은 너무나도 숨 가쁘고 절박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

고길훈 부대장

군산·장항·이리지구전투 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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