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에서 태어난 김사준 학생
김사준 소년은 부친이 1920~30년대에 전남 목포에서 범선 급에 해당하는 목선 10척을 갖고 있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 당시 목포항은 조선의 무역항이고 경제가 활발한 곳으로 “동네 개도 천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이 흔한 곳이었다.
그렇게 돈이 흔한 부자 도시에서 상류층 금녕김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김사준 중학생(현 고3)에게 전쟁이라는 시련이 다가왔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가족이 어청도(서해 해군기지)로 피난을 갖다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목포로 다시 나왔다.
당시 목포공업중학(6년제) 졸업반이었던 김사준 학생은 어청도 헌병대 문관으로 뽑혀 근무하다가 귀향 후 육군 학도병으로 가서 심부름만 잔뜩 하다가 다시 목포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1951년 4월 해병 7기로 해병대에 입대, 신병교육 수료 후 목포부대로 배치되었다.
전선이 아닌 후방이어서 편안하게 군 생활을 하는가 싶더니 영암 월출산 공비토벌대로 차출되어 도갑사 일대 공비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 도솔산 및 김일성고지 전투에 참가하다
김사준 노병은 목포부대에서 도솔산지구전투에 투입될 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목포부대에 근무 중 밤중에 비상 소집이 내리는 거예요. ‘어디로 가느냐’고 하니 ‘진해로 가나봐…’하며 전우들이 서로 수군댔죠.”
그렇게 긴급 출동하여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파카와 내복 등 미제 보급품이 들어있는 ‘지빽’을 지급받았다.
그걸 둘러메고 난생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에 올라 원주비행장에 도착, GMC에 승차하여 도착한 곳이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도솔산 펀치볼 앞 연대 운동장이었다.
당시 김동하 부연대장이 연대장(전임 김대식 연대장 부상 이송)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일을 알 수 없는 전쟁터에 곧 투입될 상황에서 보충병들이 일주일간 배치되어 있는 동안 지급 받아온 좋은 군복류를 모두 도둑맞는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 당시 상황을 김 노병은 이렇게 말했다
“군인이 동절기에 파카가 없으면 얼어 죽을 것 아닙니까? 그런 생명과 같은 보급품을 긴바이(도둑) 당한 거예요. 그 사실을 안 연대장이 어느 날 연병장에서 영화 관람이 있으니 모두 집합하라는 겁니다. 그리곤 집합한 전 대원들 앞에서 긴바이 해 간 5명을 나무에 묶더니 즉결 처분시키는 거예요. 바로 해병대 군기를 세우는 것이지요.”
김 해병은 연대장까지 부상당하는 치열한 전투와 전쟁 중에만 허용되는 즉결 처분의 군율을 몸으로 느끼면서 전투에 투입되었다.

■ 오정근 장군과의 인연
그 전쟁에서 김 해병은 오정근(예·준장, 초대 국세청장) 선임 장교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김 회장은 당시의 만남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대에 배치되자 오정근 선임장교(해간 3기)가 ‘자네 어디 다니다 왔어’거 물어 ‘공업중 6년(고3) 다니다 왔습니다’고 했더니 ‘차에 타! 너는 이제부터 9중대 서무병이다’고 명령한 것이 인연이 되어 제대 후 오정근 선임장교와는 광주초등 군사반 교육 때 사회인이었던 나와 평생지기가 되었습니다.”

■ 총알 피해가는 법 터득하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김사준 해병은 영암 월출산 공비토벌작전과 도솔산지구전투에서 사선을 넘기며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즉, 적진에서 날아오는 총탄 소리만 들어도 어디로 날아오는지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김사준 해병은 신참 후배들에게 “총탄에 네 이름 있으니 잘 봐라”고 교육시켰다.
총탄 날아오는 소리만 들어도 직선인지 또는 포물선으로 날아오는지를 알 수 있는 전쟁 생존법 노하우를 가르치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자신이 가르쳤던 신참들이 총알 소리만 듣고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다.
“전쟁 중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질문하자 엄동설한에 장비가 얼어터지지 않게 했던 일이라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북동부 전선에서 영하 47도의 강추위를 못 이겨 80미리 박격포판과 기관포, 포신이 쩍쩍 갈라지고 뚝뚝 끊어지는 거예요. 그때 강철이 추위에 얼어터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상관이 ‘장비를 얼어터지게 만든 것은 기합이 빠졌기 때문이다’고 ‘빳다’를 치고는 포신을 모포로 감싸고 잠을 자라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나려면 무기를 잘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필수 아니겠습니까?”며 뼛속까지 얼어오는 무서운 추위를 말했다.

■ 17일 만에 깨어나니 깁스로 꼼짝 못해…
“김 회장님은 전쟁 상이용사이신데 언제 당하신겁니까?”고 물었다.
“우리 해병대와 맞붙었던 막강 정예부대라고 자랑하는 북한 5군단이 갑자기 없어지더니 개성 송악산에 나타났다는 거예요. 우리는 적 5군단을 잡으러 밤중에 트럭으로 문산으로 직행했습니다.”
미 해병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신생 한국 해병대는 화력이 막강했다.
“12명 1개 분대에 BAR 3정, 60mm 박격포와 50mm 기관총으로 무장됐으니 막강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육군 1개 대대가 맡았던 곳을 해병대 1개 중대와 임무교대를 할 정도니까요…”라고 김 노병은 기억을 되살리며 해병대의 화력을 자랑했다. “적군과 붙었다 하면 여지없는 거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대원들은 문산을 가려면 서울 구경을 하겠다고 들떠 있었지만 의정부로 오더니 냉큼 문산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서울 구경도 못하고 서부전선 장단지구로 투입됐던 겁니다”며 서울 구경을 못하고 전선으로 투입된 것을 아쉬워하며 당시 송악산 전투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3대대 9중대 맨 앞에 배치되어 인민군 5군단을 향해 포복으로 공격해 오르던 중 송악산 정상에서 아래로 갈기는 인민군 총포탄에 고전을 면치 못했어요. 개성은 인삼밭에 적합한 토질 때문인지 비만 오면 땅이 꺼지고 심지어는 대인호마저 뭉개져 내리기 때문에 은폐 장소를 만들 수가 없는 거예요” 하며 부상 장면을 이렇게 말했다.
“1953년 4월, 관측병을 맡아 망원경으로 관측도중에 적탄이 날아와 나의 양손과 대퇴부를 박살냈던 겁니다. 졸도했다가 17일 만에 깨어나 보니 양손을 모두 깁스를 한 채로 꼼짝 못하게 된 상태인겁니다”고 말하며 생명의 은인이 오정근 선임 장교라고 했다.
자신이 부상당하자 오정근 선임장교가 미 해병대에 헬기 지원 요청을 하여 즉시 미 121야전병원으로 후송시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인천 병원선으로 이송되었다가 진해 해군병원, 부산 해군병원선으로 이송되었다.
몇 달 후 깁스를 풀었으나 팔과 손가락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아 완전한 불구자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마사지 치료사가 상당 기간을 주무르며 치료를 해줘서 팔과 손가락을 펼 수 있었으나 무감각 상태, 이렇게 평생 불구자가 된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김사준 해병은 입대한지 30개월 만에 신현준 사령관의 무공표창장을 받고 상이용사로 명예제대 명령을 받았다.
지금 같으면 “훈장을 왜 안주는가?” 하겠지만 당시는 사령관 표창장이 최고의 명예였다고 한다.

■ 망망대해로 몰린 상이용사들과 함께
당시 국가재정은 복지를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전상이용사들이 어느 정도 살 수 있으면 군에서 내쫒다시피 전역시켰다.
병원에서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삼시세끼 걱정을 안했지만 사회에 나오는 순간 망망대해를 헤치며 홀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제대 명령은 곧 군에서 내버림당하는 순간이었다.
전쟁 상이용사들은 적군을 죽이며 자신도 부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인데 당장 생존의 압박을 받는 처지이다 보니 국민들에게 이유 없는 반감(?)을 가졌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대였다.
김사준 해병 역시 1953년 12월 25일 일등수병(하사)으로 명예제대 명령을 받았으나 상이군인이 살아야 할 길이 막막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천성이 선했던 김사준 상이용사는 입대 전에 해군 서해부대 헌병대 문관으로 잠시 있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목포경찰서 사찰주임을 하다가 대한상이군인회총본부 감찰과장 등을 역임하며 상이용사들을 달래며 마음을 다스려주는 일들을 했다.

■ 오정근, 혁명군 한강도하 대대장의 권유로…
5·16군사혁명이 일어나자 오정근 중령(초대 국세청장)이 혁명군을 이끌고 한강을 도하한 최초의 대대장이 되었다.
김사준 해병을 전쟁터에서 서무병으로 발탁했던 선임장교였고, 자신이 제대 후 평생지기 친구의 인연을 맺었던 그 사람 아니었던가?
혁명주체 세력의 막강한 오정근 장군이 친구 김사준에게 공무원을 해보라는 권유를 했다.
마침 상이군경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 경제기획원으로 첫 임지를 발령(1961. 12) 받았다.
초창기 경제기획원 공무원들 중에서 기계과 출신은 없는 실정이었다.
당시 외국 원조물자와 차관을 도입하여 공장을 건설하고 수출 공단을 만드는 일 등에 김사준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5개년 경제개발계획의 주요멤버 역할하다
‘공업중학 출신이 어떻게 국가 주요 정책에 참여했는가?’며 의구심을 갖은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목포중학의 전신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일제가 조선의 고급 인력을 양성하여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세운 송정공립직업학교가 목포로 와서 1944년 목포공립상업학교와 송정공립을 합병하여 목포공업(중)으로 되었고, 다시 1950년 공고로 개편된 호남권 공업학교의 효시라 할 수 있다.
2017년 현재 87회 졸업생 총원 26,724명을 배출하여 대한민국 발전의 중추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사준 회장은 그 학교 기계과 1회생으로 당시는 공부를 꽤 잘해야 들어갈 수 있는 학과인 기계과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술인은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기치를 내걸고 기술과학 발전을 역동적으로 추진할 때 그 핵심 부서에서 청춘을 바쳤던 엘리트 기술공무원이기도 하다.
경제개발 5개년을 4회에 걸쳐 실시하는 국가 정책에 김사준 엔지니어 공무원이 기여한 비중이 매우 컸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중에 마산자유지역 수출관리청장 비서관 등을 거처 다시 기획원에 돌아와 외자관리, 물가정책, 예산편성관리 등을 두루 거치면서 만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1977년 10월 공직에서 옷을 벗었다.
김 회장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1977년 (주)대주종합기술단을 창업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지금까지 40년간 변함없이 운영하면서 대한민국 엔지니어링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업계 발전의 대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대주종합기술단은 토목, 기계, 전기, 산업설비 플랜트 분야의 전통 있는 회사로 우리나라 엔지니어링계의 산업플랜트 분야 선도자로 현재까지 군림하고 있는 중이다.

□ 일문일답

- 우선 회장님의 하는 사업을 설명해주십시오.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은 산업기계 및 화학공장 등 설계·감리, 각종 공장시설 이전설계 평가용역, 냉동기계 및 건축기계 설계용역, 미곡종합처리장 시설 및  사료공장 시설 설계, 감리용역 등 플랜트 엔지니어링 분야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 회장님은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계십니다. 최근에도 사업을 새로 개척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시대적인 흐름에 부응하여 사업 범위를 연구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노동력을 대체해 줄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를 들면 옛날엔 벼를 탈곡하여 말려서 정미소에 가는 과정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시설을 하는 일을 합니다.
즉, 벼를 베어서 넣으면 탈곡, 건조, 정미, 포장까지 한 번에 나오는 자동화 공정시스템을 설계하여 인력 수요를 줄이고 있습니다.

-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일을 언제까지 진행시킬 예정입니까?

나의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줄기차게 해나갈 겁니다.
요즘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지역 쌀 생산 국가에 플랜트 수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미 미얀마에 플랜트 수출을 하여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국가에도 지속적으로 플랜트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 국내에서는 얼마나 호응을 얻고 있습니까?

전북 고창, 김제 평야를 중심으로 전국 농협 미곡처리장 시설을 설계, 시공 감리한 실적이 150여 곳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실적을 쌓기까지는 20년 이상의 노하우가 축적되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저희와 한번 인연을 맺은 농협이나 법인에서 추천해줘서 일거리가 확장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기술 사업에서는 실적이 가장 중요한 신뢰 조건이기 때문이죠.
사장인 아들이 토목을 전공하여 공장 기초부터 급배수처리 시설까지 모두 일괄 공정으로 완벽하게 처리하고 있어서 호흡이 잘 맞고 있습니다.

- 회장님은 우리나라 엔지니어링 계통의 선두주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의 연세가 87세인데 아직도 현역에서 지휘하고 계십니다. 그 연세에 가능한 일입니까?

나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나 같은 노하우를 축적한 사람이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평생을 기계 분야에서 일했고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평가와 타당성 검토 등 기술행정 업무를 했던 사람이죠.
그러다 보니 내가 일할 영역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리고 해병대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정신이 살아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겁니다. 나이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 회장님의 해병대정신은 무엇입니까?

무적해병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동지들의 외침과 같이 국가의 선봉에 서서 국민과 나라를 위하여 각기 맡은 소임에 충실하고 영원한 해병으로서 행동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남기고 싶은 인생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국가가 존재하려면 국토, 민족, 언어의 3대 요건이 갖춰져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본은 강점기를 통해 언어를 빼앗고 성씨를 못 쓰게 해서 민족을 말살했지요.
독립운동가 선열들의 희생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해방 후 남북은 사상이 갈라지고 국토가 분단되는 비운을 맞은 채 6·25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런 환경하에서 나는 더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 채 전선으로 투입되어 참으로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감내했던 사람입니다.
6·25참전세대들은 모두가 그런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18세기 작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이상적인 글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의 냉전시대에서 미·쿠바의 일촉즉발의 위험을 넘기고 미국이 공산국 중공과 해빙의 물고를 터서 평화가 오는 듯한 세계정세 속에서 우리나라는 월남전에 참가하며 자유를 지키고 우리 국민들이 열사의 중동 건설 현장에서 외화를 벌어 오면서 4차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6·25전쟁에서 우리 세대가 국가를 지켰기 때문이라는 전제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세대들이 바라는 것은 지도자들이 오로지 자손만대 선진국가 대열에 항상 서있길 바랍니다.
이것만이 총탄에 만신창이가 된 나의 바람이고 편안히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사준 노병

김사준 노병 사무실에 진열된 여러 상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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