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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해병대 역사, 전쟁의 영웅강복구 전 해병대전우회 총재(예비역 대령)
강복구 전 해병대전우회 총재

금년 춘추 93세의 해병대 원로 강복구 전 해병대전우회총재(이하 ‘총재’로 칭함)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강복구!’ 그 이름은 해병대 역사에 영원히 남는 이름이다.
“강복구가 기합 빠지면 해병대 전체가 기합 빠진다”는 말은 해병대의 자랑이고 해병대를 기합의 상징적인 말이기도 하다.
고령의 춘추임에도 강 총재의 해병대정신과 국가 정신은 조금도 흔들림 없었다.
그렇기에 해병대의 역사와 명예를 말하는 ‘무적해병신문’을 강 총재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나는 함경남도 북청군 사람이야. 북청군은 3개 시, 21개 면을 가진 굉장히 큰 군이야. 내가 (이북 5도청) 북청군 새마을협의회 회장이 돼서 50여 명 회장들과 강원도 중학교를 갔어. 그 중학교는 우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서 매년 가는 곳이야. 그런데 말이야~ 저 너머 보니까 도솔산이 보이는 거야”하며 1951년 6월, 17일간의 피비린내 나는 도솔산지구전투에서 중대장을 맡아 지휘했던 그 고지들을 꿈엔들 잊을 수 없었음을 말했다.
“그래서 ‘교장님! 저게 도솔산 같은데…’라고 말하니 ‘어떻게 강 회장님이 도솔산을 잘 아십니까?’ 묻는 거야. ‘내가 도솔산에서 해병대 중대장으로 전쟁한 사람이야요’라고 했더니 ‘어떻게 살아났느냐’고 깜짝 놀라는 거야.”
도솔산지구 격전지는 적 사살 3,263명의 승리의 전투였지만 아군 피해가 700명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기적이라는 말일게다.
그러면서 그 교장은 격전지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현충일에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추모행사를 해야 하는데 추모비가 없어서 힘드니 사령관께 말씀 드려 만들어 달라고 하더란다.
“당시 이갑진 사령관에게 말했더니 전사과장과 정훈실장을 보내서 조사를 시키더군. 이갑진 사령관이 영어를 잘하는 분이예요. 미국에 6·25전쟁 전사 자료를 요청해서 자료가 왔는데 도솔산전쟁이 소상하게 있다는 거야”하며 이갑진 사령관 칭찬을 한다.
“그런데 말이야, 그 전사기록을 보면 스미스 장군이 말끝마다 ‘해병대’를 그렇게 칭찬했다는 거야”며 해병대의 용맹성을 말했다.
“난 전쟁에서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66년 전을 떠올린다.
“운영위원 30명이 모여서 강복구 대령이 하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나를 중앙회 총재로 추대한 거야. 그렇게 해서 중앙회 총재를 하면서 2년간 했어. 내가 놀란 게 말이야, 그때 누가 붓글씨를 ‘제7대 해병대전우회 총재 강복구’라고 써줬는데 기가 막히게 글을 잘 쓴 거야. 미국에서 나를 예비역 장군으로 추대해줬던 것이 자랑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중앙회 총재를 했다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할 일을 했구나’ 하고 자랑스러웠어.”
해병대전우회 총재를 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그 글하고 태극기를 할머니(부인)가 잘 보관하고 있는 중이야”라고 했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손자가 둘 있는데 그중 한 놈이 해병대를 간 거야. 15년 전 쯤일 거야. 그런데 훈련소 소대장이 해병대 역사에서 ‘강복구 기합이 빠지면 해병대 전체가 기합이 빠진다’고 말하면서 강복구를 말하더라는 거야. 그 자리에 강복구 손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며 자신이 해병대 역사에 올라있는 것에 감사했다.
“나중에 손자가 전했을 때 나는 가슴이 뛰었어” 하면서 백세를 눈앞에 둔 고령의 해병대 창설멤버 강복구 예·대령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전철역까지 모시겠다는 것을 뿌리치며 활기차게 사무실을 나서신다.
해병대의 뿌리를 우리 세대가 아직도 보고 있다는 게 감사했다. 필승!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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