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타이완 삼각 관계
1992년 봄 우리는 한국의 수교 문제가 무르익어 조건들이 기본적으로 성숙되었다고 인식했다.
그때 중국은 한국과 근 10년이 지나 부드러워졌으며 민간 무역 사무소를 설치하기까지 여태껏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고 크게 발전하였다.
거기에다 (북)조선과 한국이 모두 유엔에 가입하여 각자 (별개의) 국가가 되었다.
1989년 헝가리가 앞서서 한국과 국교를 맺었고 그 후 동유럽의 국가가 앞 다퉈 한국과 국교를 맺었으며 1990년에는 소련도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한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 수립은 다른 나라들과는 분명 크게 달랐는데 그것은 한국과 중국 타이완의 단교 문제에 관련되어 있었다.
한국 측에서 보면 한국과 타이완의 관계는 몇 십 년이 되었고 한국 사회에는 친 타이완 세력이 확고히 존재하고 있었으며 타이완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다만 노태우 대통령의 의지가 강고하여 중국과의 국교 수립을 적극 주장, 그가 취임할 때 내세운 목표를 달성하려 하였다.
1992년 2월 어느 날 외부에는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고 있으나 첸치천 외교부장관의 사무실에는 온기가 봄날 같았다.
첸 장관은 소파에 앉아 전과 다름없는 모양으로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고상하게 말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말을 마치자 그는 발언하기 시작, 각 방면의 정황을 분석하고 한국과의 수교할 여건이 성숙하여 추진할 것을 고려하고 있음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의 말은 많지 않았으나 말투는 확고하고 마음속에 이미 전반적인 고려가 되어 있음을 내비쳤다.

■ 한·중 관계의 미묘한 기류
이 해 3월 중순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베이징에 소집되어 회기 중에 관례에 따라 외교부장의 기자 회견이 있었다.
매년 인민대표 대회기간에는 외국기자 수백 명이 베이징에 몰려들어 대회를 지켜보고 대회장을 찾아 각종 소식에 촉각을 세우고 탐문 취재한다.
한국 기자들도 여러 해 더불어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줄곧 문밖에서 저지되었다.
그러나 이 해에는 신사고에 근거하여 우리는 처음으로 그들이 입국하여 취재할 수 있도록 동의하였다.
과거 여러 해 동안 기자회견장에서 예외 없이 중국과 한국 관계 문제의 질문이 있으면 우리는 예외 없이 중국의 입장은 일관하여 남조선과는 어떠한 관계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해에는 예의 외교부장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중국에 관한 질문이 있을 때 첸치천 장관은 회답하기를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지 어떤 고정된 시간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이런 미묘한 뉴스를 기자들은 재빨리 포착하여 즉각 전 세계에 타전하였다.
이 해 4월 중순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 제45차 연례회의가 베이징에서 열려 국제관례에 따라 한국의 이상옥 외무장관을 포함한 이사회 소속 국가 외교장관들이 모였다.
당시 나는 비록 양상쿤(楊尙昆) 주석의 조선 방문을 수행하여 김일성 주석의 80회 탄신기념활동에 참가했지만 가기 전에 나는 몇 번 대한무역진흥공사의 베이징 주재 사무소 부대표인 김하중(金夏中) 씨를 만나기로 약속하여 이상옥 장관의 베이징 방문 일정을 상의한 적이 있었다.
김하중 씨는 그때 베이징에 온지 1년 정도가 되었으나 외교부 대문 안을 들어가 본 적이 없어 내가 그와 만나자고 하자 아주 기뻐했다.

■ 한·중 관계 일대 전환 이루는 전기
특별히 나는 그에게 첸치천 외교장관이 이 장관을 만나자고 초청하여 연회를 베푼다고 하자 그는 더욱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또 나에게 회견 때 나올 의제 등에 대해 물었는데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중요한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 후 김하중 씨는 당시 한국 측이 회견할 때 양국 관계에 관한 것을 언급할까 말까 주저하고 있었는데 나의 말을 듣고 그들은 돌아가 생각하고 연구한 끝에 마음속으로 자신이 생겼다고 나에게 말했다.
첸치천 외교부장관과 이상옥 장관의 회담은 1992년 4월 15일 정오 댜오위타이 18호실에서 이루어졌으며 중·한 양국은 쌍방의 기자들이 회견 시작 3분 전에 회의장에 들어가 촬영하도록 우선 합의했다.
이 날 회견하는 가운데 양측은 이번 연차회의와 관련된 문제 외에 첸 장관이 한·중 관계에 관해서도 언급하여 양측이 우선 작업팀을 조직하여 양국 관계에 관한 문제를 위해 비밀 접촉을 하자고 제의하였으며 이상옥 장관도 그 자리에서 이에 동의하였다.
양측은 또 이 작업팀은 대표(반장)와 부대표(부반장)를 두고 대표는 차관급, 부대표는 대사급으로 하며 임시로 부대표 둘이 잘 연구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날 회견과 연회는 길지 않았으나 매우 중요한 문제를 논의했으며 양국 관계의 일대 전환을 이루는 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연차 회의 기간에 리펑 총리가 이상옥 외무장관을 만났으며 역시 국제적 의전 절차였지만 우리 두 나라 관계를 중시한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상옥 장관은 이번 방문에 매우 만족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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