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기합의 원천 ‘빳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기합은 적과 대전할때의 그 등등한 기세라든가 함성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훈계 삼아서 주는 그 제재를 의미한다.
흔히 남들이 말하기를 해병대는 기합이 센 군대라고들 하는데, 해병대 기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창설기의 기합은 과연 어떠했을까.
창설기의 기합은 주로 구령대 운반과 몽둥이(이하 본문에서는 ‘빳다’라고 표현한다)를 비롯한 구보와 포복, 또는 기합으로서의 총검술 훈련 등이었다.
구령대 운반은 주로 기마전에서 패했을 때가 해 졌던 기합으로서 목재 구령대 위에 텀블링을 하듯 잔뜩 사람들을 올려태운 다음 그 구령대를 어깨에 메고 연병장을 구보로 돌게 하는 것이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해 차례로 그 구령대를 메고 돌아다니긴 했지만 사람들을 잔뜩 올려 태운 그 구령대의 무게가 대단했으므로 어깨 죽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그 대종(大宗)을 이룬 것은 빳다였다.
특히 훈련소 시절에 얻어맞았던 빳다에 대한 얘기들을 자랑 삼듯 꺼내길 좋아하는 현역 또는제대한 사병들을 보면 불패 상승 전통의 상징인 해병대정신이 빳다에 의해서 근원적으로 창조되기라도 한 것 같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마치 해병대는 기합이 센 군대라고 하는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려는 것 같다.
그 정도로 해병대와 빳다는 상호불가분의 깊은 인연을 맺어온 것이 사실이다.

“충무공 하나! 충무공 둘!”

그렇다면 창설기의 빳다 기합은 과연 어느 정도의 것이었는지 그 증언을 들어보자.
“그 때는 하루의 규정량이 열다섯 대 정도였었는데 만약 특별히 잘한 일이 있을 때엔 그 대수가 감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 반대로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엔 기본 숫자에다 그 수를 배가하는 바람에 하루에 최하 서른 대는 얻어맞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빳다는 우리들에게 말할 수 없이 쓰라린 고통을 강요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참고 견뎌내는 가운데 우리들의 정신과 몸을 무쇠같이 튼튼하게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고, 또 우리들이 그 모진 빳다를 참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빳다를 치는 상사들에게 감정적인 증오심 같은 것을 털끝만치도 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증언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우선 그 빳다의 규정량, 다시 말해서 잘못이 없어도 최소한 그 열다섯대의 규정량은 얻어맞게 되어 있었다는 진실이다. 물론‘잘못이 없어도’란 말은 피교육자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일방적인 말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아무튼 하루에 최소한 열다섯대 이상의 몽둥이를 맞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들은 빳다를 맞을 때 “충무공 하나! 충무공 둘! 충무공 셋!”하며 스스로 힘껏 구령을 붙여야만 했는데, 그 구령 소리는 대수가 늘어감에 따라 차츰 애처롭게 시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럴 땐 그것을 핑계로 더 세게 맞든지 아니면 대수가 증가되었으므로 장병들은 시종일관 안간힘을 다해 큰소리로 대수를 헤아려야만 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근절되다시피 한 이 빳다 치기 기합이 어느 시대의 어느나라 군대에서 시작된 것인지 익히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해병 1기생들 을 훈련시켰던 당시의 조교나 선임관, 또는 소대장들이 거의 일본해군이나 육전대 출신들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본다면 그들이 일본 군대에서 겪었던 그 체험을 그대로 살린 것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했던 사실은 그들 모두가 장차 국방의 최강 부대가 될 무적 해병을 길러 낸다는 그 막중한 사명감과 뜨거운 애군심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짐짓 그랬었기에 그들은 수없이 빳다를 쳤지만 죄인들에게 형벌을 가하는 형리들의 태형일 수가 없었던 것이며, 언제나 의지와 지성과 공정성에 공감이 되었기에 스파르타식 훈련의 연장과도 같은 그 빳다에 대해서 누구 한 사람 사감을 갖거나 원한 및 불편 불만을 터트리는 자가없었던 것이다.

해병대 빳다가 남긴 추억

빳다를 맞는 데에도 요령이 있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한 두대의 경우이지 한꺼번에 이삼십 대씩이나 맞게 될 땐 다들 그까짓 요령 따위에 집착하려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일종의 일과처럼 되고 만다.
그 친근(?)하면서도 구차스런 규정량 또는 벌과량의 빳다를 어떻게 하면 시원스럽게 후딱 맞아 넘겨 버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 나머지, 결국 “충무공 하나! 충무공 둘!”을 외치는 그 힘찬 목소리로 빳다를 맞는 전술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빳다에 의한 상처는 시퍼런 멍으로 나타나기 마련일 것인데, 하루에 이삼십 대씩 열흘, 스무날 또는 두 달, 석달간을 계속 맞은 사람들의엉덩이와 허벅지가 어떤 모양으로 돼 있었을까 하는 것은 상상이 되고도 남을 일이다.
그들은 입대식 첫날부터 잠들 때가 되면 으레 무언의 작업처럼 서로 옆 사람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살며시 어루만져주고 주물러주는 습성을 지니게 됐다.
또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진해시내에 있는 민간 목욕탕에 갈 땐 서로 끔찍한 상처들을 대하며 탕 내에서 안마도 해주고, 심한 상처는 바늘 끝으로 따서 그 속에 응어리져 있는 시커먼 피를 뽑아내 주기도 했다. 그들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낱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어폐가 있는 말이긴 하겠지마는 몽둥이로 인한 상처는 몽둥이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그런 소신으로 그 무서운 빳다 공세를 감당해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심신은 그러는 가운데 마치 강한 무쇠가 대장간에서 달궈지듯이 강인하게 단련되어 나간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신념은 ‘필승’ 바로 그것 일 수밖에 없었고, 또 철석 같이 굳은 신념은 여간한어려움은 극복해낼 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에 의해 백석같이 굳어져갔던 것이다.
해병 1기생들을 사나운 표범이나 무서운 사자 같은 강병으로 길러 내는데 유효했던 빳다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그것의 효시가 되고 근원이 되었던 빳다는 비록 격류와 난류의 흐름처럼 강약의 차도는 있었을망정 상당 기간 동안 지속하여 오다가, 휴전 후 부터 세차게 일기 시작한군대의 민주화 여론에 의해 차츰 그 기세가 꺾였다. 이후 음성적인 경향으로 그 명맥만을 유지해오다가 근래에 와서는 완전히 근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합을 훈련처럼, 훈련을 전투처럼

다음은 구보에 관한 얘기가 남아있는데, 구보 기합은 예나 지금이나, 또 어느나라 군대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다만 한 가지 덕산비행장 내에 있던 동네산에 관한 얘기만은 언급하고자 한다. 당시 석산비행장 내에서는 해발 약 사십 미터 정도의 작은 고지가하나 있었다.
그 고지 위를 하루에도 수십 미터씩, 그러니까 연(延)인원으로 따진다면 하루에 2~3만 개의 발(足)이 구보를 하며 사정없이 짓뭉개며 밟고 다녔는지 라그고지 위엔 풀이 씨 마르고 지표는 반질반질해진 끝에 나중에는 차돌같이 단단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몽둥이와 구보 외에 시멘트 바닥(활주로) 위에서의 포복과 총검술 등도 특별히 언급해 둘 만한기합들이다.
소총을 양손으로 받쳐 든 자세로 땅 위에서 포복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한고통이 따르기 마련인데, 하물며 시멘트 바닥으로 된 활주로를 포복으로 전진해야만 했으니 그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팔꿈치와 정강이 쪽의 천이 여지없이 헤어졌을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고, 거친 시멘트 바닥과 정면대결한 결과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양 팔꿈치와 무릎에선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고, 그 쓰라린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기합을 훈련 시 하고 또 훈련을 전투시했던 그 당신의 훈련담당자들은 강병육성의 신조에 충실했던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피를 보지 않거나 끝을 보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훈련에 피교육자들에게는 정말 초인간적인 인내가 강요되는 그러한 기합이었다. 앞서 ‘끝을 보지 않고서’라고 표현을 했는데, 당시 기합으로 실시한 총검술이 바로 그런 실례였다.
얼차려를 주는 상사의 입에서 “총검술 시작!”이란 말이 한 번 떨어지면, 다들 기진맥진한 끝에앞으로 푹 고꾸라져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중지하라는 구령을 내리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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