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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특별대담6·25전쟁, 그날을 증언한다
기념촬영하는 참석자들. <좌측부터> 신동설 본지 발행인, 오산근 소년전차병 1기, 김진부 해병 4기, 권영수 해병 2기, 김사준 해병 7기, 백상현 해병 27기

일시 : 2020년 6월 25일 12시
장소 : 무적해병신문사
참석자 : 권영수(해병 2기), 김진부(해병 4기), 김사준(해병 7기), 오산근(소년전차병 1기), 백상현(해병 27기) 해병대전우회 6·25참전자회 회장
진행 : 신동설(해병 184기) 무적해병신문 발행인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본지는 참전용사들과 함께 그날을 증언하는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본사 사무실에서 실시한 이번 특별대담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5인의 노병이 참석해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정리 : 신동설 발행인, 사진 : 박흥배 보도국장】

특별대담 시 토론하는 참석자들.
▲ 권영수(해병 2기)

■ 해병대 훈련보다 전쟁 나가는 게 좋았다
1949년 8월 1일 해군 13기로 입대하여 곧장 해병 2기로 들어갔다.
6·25전쟁 당일엔 제주도에 있었고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
워낙 훈련이 힘들어서 일요일에는 자느라 방송도 못 들었기 때문이다.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곤 오히려 전장에 나가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병대 훈련은 힘들었다.
고길훈 부대에 배속, 군산항에 상륙해서 군산·장항·이리지구전투에 참전한 것이 첫 전투였는데, 군산항에 쌓아놓은 쌀을 운반해서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한 임무를 완수했다.

▲ 권영수(해병 2기)   |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한마디 |

내가 살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독일은 병정, 일본은 부사관, 미국은 장교를 군의 핵심으로 여긴다. 모두 이치가 있지만 전장에서 경험은 부사관이 핵심이라 본다. 부사관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면 백전백승할 수 있다.

 

▲ 김진부(해병 4기)

■ 피의 능선에서 사선 넘을 때가 가장 큰 위기
고 2때 제주도에서 1950년 8월 31일 해병 4기로 입대해서 통영상륙작전 후발대로 상륙했다.
당시 김성은 부대장이 만면의 웃음으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거기서 조금 있다가 곧바로 4기생 1,500명 전원이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1951년 1월 29일 포병대 창설요원 포병 하사관 1기로 들어가 교육수료 후 홍천 예비대로 빠져 미 해병대로 배속 받아 육군 36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피의 능선에서 3일간 적에게 포위당해 사선을 넘겼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 김진부(해병 4기)   |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한마디 |
강한 부대가 해병대라고 국민들이 믿고 있다. 그 속에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했다. 강인한 해병대 훈련 과정을 잘 넘기면 인생도 성공할 수 있다.

 

▲ 김사준(해병 7기)

■ 긴박한 전시 상황… 비행기로 병력 공수
이미 대전까지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 나는 목포에서 고 2였다.
당시 송인명 목포해군사령관을 따라 어청도로 나가서 인천상륙작전 함정 에스코트를 도왔다.
그러다가 9·28서울수복 후에 해병 7기로 입대하여 제주도로 떨어져 LST를 타고 해안 접안 중 심한 파도로 동기생 10여 명이 물에 빠져 죽는 바람에 다시 목포로 되돌아왔다.
거기서 훈련 도중 영암 월출산 공비토벌 소탕작전에 투입됐다.
덕산에서 원주까지 비행기가 날아와 대기 중인 트럭을 타고 연대로 들어갔다.
당시 얼마나 병력이 긴박했으면 비행기로 공수했는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거기서 도솔산전투에 참가 후 김일성고지·모택동고지 전투에 참전하고, 장단·사천강지구전투까지 전투를 벌였다.

▲ 김사준(해병 7기)   |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한마디 |
우리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 5천년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전쟁이 6·25전쟁이다. 현대전에서의 생존비결은 기합이 들어있어야 한다. ‘총알이 이름표를 달고 날아온다’는 말이 있다. 기합이 들어있으면 그 총알이 어디에서, 어느 무기로 발사했는지를 소리로 알 수 있기에 적절히 은폐, 차폐할 수 있어 살 수 있다. 해병대정신은 곧 해병대 기합이다. 

 

▲ 오산근(소년전차병 1기)

■ 단장, 부단장 일도 전부 맡아서 처리해…
1952년 6월 소년전차병으로 입교를 해서 신병 교육 3개월 받고 부산에서 무선통신교육 3개월을 받는 등 6개월을 교육받았다.
그리고 파주 제1전투단으로 배속되었는데 같이 간 다섯 명 중 내가 제일 어린 신병이었다.
김성은 대령의 눈에 들어 단장실에서 여러 업무를 보좌하며 고길훈 부단장 일까지 맡았었다.
그러다 보니까 단장, 부단장 일은 전부 다 내가 맡아서 했다.
나중에 고길훈 단장 때에도 단장실에 있었기에 해병대장교들은 모두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오산근(소년전차병 1기)   |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한마디 |
‘선배해병여천(先輩海兵如天)’을 말하고 싶다. 선배들의 발자취를 하늘처럼 여긴다면 백전백승, 임전무퇴, 무적해병이 될 것이고 해병대의 긍지가 팽배해질 것이다.

 

▲ 백상현(해병 27기)

■ 단 한 명의 전우도 함께 하는 해병대 전우애
고 2학년 올라갈 17세 나이에 해병 27기로 들어갔다.
고향 김천에서 할아버지가 양조장을 하셔서 풍족하게 살았다.
어느 날 친구 7명이 돈을 몰래 가지고 나와서 친구 7명이 진해를 처음 갔는데, 돈이 떨어지는 바람에 친구 6명은 해군으로 가고 나만 해병대로 들어갔다.
당시는 기합이 무엇인지 몰라서 해병대가 기합이 세다고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알았다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몰랐다.
휴전 2개월 전이어서 사천강지구로 배치된 나는 방어와 사수하는 전투에 참전했다.
그때 얼마나 치열했는지 모른다. 마지막 남북한 땅 따먹기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우리 해병대는 전우가 죽으면 반드시 끌고 나오는 것에 감격했다.
단 한 명의 전우도 우리 품에 있어야 한다는 전우애가 오늘의 내가 있게 만들었다.
지금 전우회 중앙회 6·25참전자회 회장을 맡으면서 그날의 전쟁 영웅들을 볼 때마다 해병대의 전통을 계승한 분들이라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 백상현(해병 27기)   |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한마디 |
선·후배가 화목해야 한다. 그 속에서 질서가 잡히고 계통이 확립된다. 나의 세대가 지금의 세대에 접목하기엔 너무 세대 간 격차가 있기에 우리의 주장만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선·후배 화목에서 해병대전우애가 가장 큰 덕목이라고 확신한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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