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특집
되돌아보는 이달의 6·25전쟁영웅 -국가보훈처 선정-

■ 성관식 해병소령 (2020.4.)
성관식 소령은 소위 시절, 해병 제1연대 3대대 2소대장에 보직되어 장단 일대에서 중공군과 대치했다. 1952년 9월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포위 공격해오자, 그는 연대의 포병지원으로 적의 후속 부대를 차단시킨 가운데 교통호까지 진입한 적과 격렬한 수류탄전과 육박전을 벌이며 진지를 사수했다. 특히, 적군의 포격으로 참호가 무너지면서 대원 5명과 함께 매몰되는 위기를 맞았으나 매몰된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무전기를 찾아 교신을 재개, 아군의 포병 지원사격으로 고지를 포위하고 있던 적군을 격멸했다.

■ 김문성 해병중위 (2019.6.)
김문성 중위는 해병 제1연대 3대대 9중대 2소대장으로 중동부전선 도솔산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김문성은 도솔산 24개 목표 중 가장 험준한 지점에 투입되었다. 김문성은 선두에서 소대를 지휘하며 총탄을 무릅쓰고 적의 진지 50미터 지점까지 육박해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목표를 바로 눈앞에 두고 적탄에 피탄되어 장렬히 전사하였다. 소대장의 전사를 목격한 소대원들은 격분하여 총돌격을 감행하여 마침내 적을 격멸시켰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 박정모 해병대령 (2018.9.)
박정모 대령은 1946년 해군 1기로 입대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소대장으로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용전분투했다. 이어 1950년 9월 27일, 서울탈환 작전 시 해병 제2대대 제6중대 1소대장으로서 소대원들과 함께 새벽에 공격을 시도해 치열한 교전 끝에 중앙청 안으로 들어가 중앙청 옥상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가장 먼저 게양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정부에서는 6·25전쟁 기간 중 이룬 그의 혁혁한 공에 대해 을지·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였으며, 2010년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김형우 해병삼조 (2017.3.)
김형우 해병삼조는 해병 독립 제5대대 분대장으로 1951년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김포지구 월암리 전투에 참가했다. 적에게 포위돼 위기를 맞은 순간 김형우는 결사대에 자원, 5명의 대원을 이끌고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본대의 철수를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결국 실탄이 떨어지자 김형우와 5명의 결사대원은 마지막 수류탄을 던져 15명의 적을 사살하고 과감히 돌진,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일당백의 육박전을 벌이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정부에서는 이런 고인의 공적을 기려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 이장원 해병중위 (2016.11.)
이장원 해병중위는 적에 대한 후방 교란과 해안 봉쇄 작전을 수행하는 해군 엄호의 임무를 띠고 해병독립42중대 소속 황토도 파견소대장으로 부임했다. 1951년 11월 29일, 두 차례의 기습공격이 이장원 부대에 의해 연달아 실패한 북한군은 1개 대대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 황토도를 향한 최후의 일격을 가해 왔다. 아군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해병에 당황한 적은 결국 아군 진지에 집중포격을 실시했고, 이 중위와 그의 부하 3명은 결국 적의 포탄에 전사했다.

■ 고종석 해병일등병조 (2015.8.)
고종석 일등병조는 해병 2기생으로 김성은부대에 배치돼 지리산과 제주도 일대의 공비 토벌 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6·25전쟁 발발 후 진동리전투, 통영상륙작전 등에 참가했다. 당시 원문고개에서 적군과 치열한 백병전을 펼쳐진 전장에서 분대장 고종석은 적 3명을 무찌르고 도망치는 적 6명을 사살하는 등 분전을 거듭했다. 부상에도 후송을 거부하며 전장에 남았던 고종석은 적의 수류탄이 호에 떨어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엎드려!” 외침과 함께 수류탄이 떨어지는 곳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 강길영 해병중위 (2014.11.)
강길영 중위는 1949년 4월 15일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소총병으로 인천상륙작전, 수도 서울 탈환작전 등에 참여해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해병간부후보생 제3기로 종합학교에 입교해 군사훈련을 받고 1951년 소위로 임관해 가리산 및 화천지구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51년 9월 1일에 해병 제1연대 3대대 11중대 선임장교로 강원도 양구 전방의 펀치볼 확보를 위한 전술적 요새인 924고지 전투에 참가해 중대의 선두에서 돌격전을 감행하던 중 적탄에 의해 전사했다.

■ 진두태 해병중위 (2013.3.)
진두태 중위는 1951년 3월 강원 정선군 여량리에서 평창군 대관령을 향해 1개 분대를 이끌고 눈길을 진격하던 중 매복하고 있던 적에게 포위됐다. 진두태는 적의 공격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부하들을 먼저 안전하게 철수시킨 후 단독으로 적과 교전해 수 명을 사살했지만 적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 전장에서의 혁혁한 전공과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한 그의 고귀한 정신을 기려 정부는 중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또한 2001년 전쟁기념관에서 진두태의 흉상이 제막됐다.

■ 김종식 해병대령 (2012.1.)
김종식 대령은 진동리지구전투,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등에 참가했으며, 장단지구 전투 때는 해병대 전투단 1대대장으로 대원들을 삭발시켜 비장한 결의로 중공군과 결전을 벌였다. 전선으로 출동하기 전 묘지에 ‘故 해군소령 김종식지묘’라고 쓴 팻말을 꽂아 놓고 출전하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해병대가 수행한 거의 모든 전투에 참전한 김종식은 휴전 이후 해병대 1연대장, 헌병감을 역임했고 1991년 별세했다. 정부는 생전에 그에게 금성을지훈장과 금성충무훈장을 각각 수여했다.

■ 안창관 해병대령 (2011.8.)
안창관 대령은 1948년 9월 해사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임관, 1949년 4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돼 진주, 제주도에서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했다. 진동리지구전투에서 북한군 1개 정찰대대를 급습, 적 90명을 살상하고 2대의 전차와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는 전공으로 을지무공훈장를 수여받았다. 이후 안창관은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작전, 도솔산전투, 김일성·모택동고지전투 등 6·25전쟁 당시 해병대가 참전한 대부분의 전투에 참해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해병대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적해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