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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과연 국군의 뿌리인가?대통령 추념사, 서훈 수여 추진 ‘김원봉 논란’

■ 문 대통령, ‘김원봉’만 꼭 집어 언급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이 만든 조선의용대가 편입된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해 큰 논란을 낳았다.
북한 정권 수립에 공헌한 북한군 창설의 주역이자, 6·25전쟁의 남침 주범 중 한 사람인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일컬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의 이름만을 꼭 집어 언급해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특히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었던 지난 2015년에도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

■ 김원봉풍(風)’에 빠진 대한민국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과 함께 대한민국 사회가 ‘김원봉풍(風)’에 빠졌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추진을 주장하고,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TV 드라마가 방영되는 등 ‘김원봉’ 여론 몰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산하기관인 독립기념관을 통해 김원봉의 ‘독립운동 업적’ 등을 주제로 한 일련의 토론회를 계획하고, 관련 좌파 민간단체 역시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수여하자는 청원이 올라 사흘 만에 6,300명의 동의를 받았다.

■ 고도로 기획된 서훈 수여 작전인가?
반면, 정치권에서는 이런 사회적 움직임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이 나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원봉을 추켜세우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균열을 원하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당대표는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날 이와 같은 언급은 호국영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문 대통령의 추념사는 고도로 기획된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를 위한 작전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재향군인회 등 시민단체들은 김원봉 서훈 반대 집회를 여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이와 같이 논란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조항상 서훈이 불가능하다”며 한 발 물러난 상태다. 【고명석 기자】

북한 정권 수립 때 김일성의 초대내각. 앞줄 가운데가 수상 김일성, 둘째 줄 왼쪽 2번째가 국가검열상 김원봉이다. <사진제공=NARA〉

 

문재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 히스토리

현충일 추념사 하는 문재인 대통령

■ 2019년 현충일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중략)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2019.6.6.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中

■ 2015년 광복절
“일제 경찰이 백범 김구 선생보다 더 높은 현상금을 내걸 정도로 항일 투쟁의 치열함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분. (중략)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
- 2015.8.15.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SNS에 올린 글 中

 

김원봉, 누구인가?

김원봉(1898~1958)

■ 북한 월북 후 정권 요직 역임
남시욱 저 한국진보세력연구 개정증보판(청미디어, 2018)에 따르면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했다.
이후 1945년 박헌영이 조직한 조선인민공화국 각료에서 군사부장을 맡았으며, 해방 후 반탁 문제 등으로 김구와 대립하자 중국 시절의 조선민족혁명당을 서울에서 복원하고 당명을 인민공화당으로 바꿨다.
김원봉은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에 참석하며 월북했다.
이후 북한 정권 수립 때 국가검열상에 임명된 후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6·25전쟁 때 남파간첩 직접 지휘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북한 최고인민회 상임위원회는 ‘공화국 남반부 해방지역 군면리 인민위원회 선거 중앙선거지도부’를 구성했다.
이때 김원봉은 9명의 지도부 중 첫 번째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북한이 점령한 남한 영토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행정 기관을 철폐하고 북한 통치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전쟁 중 김원봉은 남파 간첩을 훈련하고 파견하는 것을 직접 지휘했으며, 북한군의 군량미를 생산하는 일도 책임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6·25전쟁 공훈자에게 수여하기 위해 만든 ‘로력훈장’의 첫 번째 수상자였으나, 1958년 김일성과 대립해 국제간첩 혐의로 연행되자 음독자살로 최후를 마쳤다. 출처 : 남시욱(2018),[한국진보세력연구 개정증보판], 도서출판 청미디어

 

 

고명석 기자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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