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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동행 주필. 태산승강기 [주] 회장 병 263기 이강민

2006년 한 여름의 일입니다. 나는 그때 우리 해병대 동기회 총무로 있었습니다. 연말 선물로 동기들에게 나누어 줄 캘린더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경기도 발안 근처를 지나게 되었고, 문득 발안에 있는 해병대사령부 PX에 가면 멋진 해병대 캘린더를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핸들을 사령부로 돌렸습니다.
 그때 처음 만난 사람이 사령부 정문을 지키는 헌병 김덕수였습니다.
녀석은 나에게 오더니 삐딱한 경례를 붙이고는 용건을 묻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 까?” 나는 쭈볏 거리다 “내가 해병대 263기 동기회 총무인데 동기들에게 줄 캘린더 좀 살려구.” 내 말이 끝나기도전에 녀석은 “나는 263기 동기회 그런 거 모르구요. 차 저리로 빼세요. 등록 안된 차는 못 들어갑니다.” 녀석은 나에게 선배 대접은 아랑곳없이 호루라기를 ‘획 획’ 불어가며 “뒤차 오니까 차 얼른 빼세요!”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어쩌랴! 애써 거기까지 갔으니 그냥 올 수가 없어 차를 후진해 주차장에 대놓고 PX로 갔더니 어라? 거기서 근무하는 놈은 더 기가 찹니다.
 “아저씨, 그런거 사려면 남대문 시장에 가셔야지. 여기는 그런거 없어요.” 하며 아주 측은한 듯 바라보는 눈빛에 기분이 확 잡쳤습니다
녀석의 눈빛은 ‘아니, 이 아저씨는 제대해서 먹고 살 궁리나 하지, 무슨 동기회다 해가지구 늙어서까지 해병대를 팔아먹구 사누.’ 하는 아주 비꼬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캘린더고 뭐고 기분이 ‘확’ 잡쳐 한가득 욕설을 뱉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런 쫄따구들 기압이 쭉빠져 가지고….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 군대 시절엔 휴가 나와 선배 만 보아도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고, 선배는 곧 자랑스러운 해병대의 전통이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배우며 지냈는데. ‘뭐, 나는 동기회 그런거 모른다고? 그런거는 남대문 시장이나 가서 찾아보지 여긴 왜 왔냐구?’ 그날 저녁 우리 동기회 홈페이지에 오늘 내가 겪은 수모 스럽고 창피한 일을 올렸더니 동기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당장 사령부로 쳐들어가 헌병대와 PX를 폭파시킬것 같은 울분에찬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이 지난 후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사령부 헌병대 수사과장인데 며칠 전 사령부 정문과 PX에서 이런 저런 일이 있었느냐는…. 나는 의아해하며 있었다고 얘기하고, 그걸 어떻게 아느냐 물으니 우리 동기 홈피에 올린 내 글을 어느 후배가 사령부 홈피에 퍼올려 그걸 사령관님이 보시고 지금 사령부가 발칵 뒤집혔다는 겁니다.

사령관 특별 지시로 사령부는 물론, 각 예하부대 헌병대에 초비상이 걸려 근무자세 확립 기강 지시가 떨어졌다며, 그러면서 CCTV를 확인해 보니 사실인 것 같으니 수사에 좀 협조해 달라는 것이며, 그 헌병은 오늘 영창에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아! 좀 화가 났지만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한 것이 아닌데 정말 일이 아주 꼬여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저는 사령부 헌병 일병 김덕수입니다.”라고 시작하여 선배님을 잘 몰라보고 잘못을 저질러 죄송하다는…. 어떻게 보면 정문 헌병으로서 자기 임무를 충실이 한 죄밖에 없었을 텐데 괜히 나 같은 사람 만나 재수 없게 영창 생활하는거 같고, 미안하기도 해 사령부 헌병대 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 잘못도 크니 그만 풀어주라는 탄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연으로 녀석은 휴가를 나오면 우리 집에 꼭 들러 인사를 하였고,  부모님이 안계신 녀석은 나를 아버지라 부르며 우리 식구처럼 친해 졌습니다.
그런 녀석이 불쑥 ‘아버님 저 결혼 합니다. 제주례 좀 해주세요 하고 결혼 주례를 부탁한 것입니다.
어떤 말로 이들의 결혼을 축하해 줄까 망설이다 나는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존 밀러 대위의 마지막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신은 적탄에 맞아 숨을 거두면서도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대장의 명령을 지켰다며 웃음 짓는, 그러면서 울부짖는 라이언을 끌어안으며 “너는 잘 살아야 한다”라는 존 밀러 대위의 마지막 명령을 주례사로 대신했습니다.
 “김덕수 해병, 아내와 함께 잘 살것을 해병 선배인 내가 마지막으로 명령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큰 애가 돌이 되었고, 작은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정말 세상살이는 전부 작은 인연에서 시작되는 거 아닐까요? 작은 인연도 잘 붙잡고 아름답게 가꾸면 말입니다.
그날 사령부 정문에서 나는 그런거 모른다고, 차 빼라고 소리 지르던 덕수가 이렇게 예쁜 가정을 꾸리며 열심히 사는것을 보니 정말 선배로서 내가 마지막 명령 하나는 제대로 내린 것 같아 이번 작전은 완벽한 승리였음을 확신합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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