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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해병이 되기까지… “인간개조 지옥훈련 돌파!”Marine Intelligence Unit 천하무적 MIU 이질범 전우 이야기 ②

▲ 지난 호 이야기
전라도 시골에서 태어난 이질범은 해병 253기 지원부터 “선착순 병무청사 돌아!”에 합격하여 해병대 응시 전형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야간 군용열차를 타고 진해에 가던 중 밀양에서 <해병대 곤조가>를 알지 못하여 원산폭격 기합을 받으며 곤조가를 익힌 후 신병훈련소에 들어가 “오른쪽 돌아 가! 왼쪽 돌아 가!” 등 제식훈련과 각개전투 훈련을 돌파하면서 오성장군보다 더 높은 자칭 칠성장군 교관으로부터 무지막지한 훈련교육을 마쳤다.

정예해병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던 신병교육훈련

■ “너희는 생사를 같이하는 공동운명체다”
생전 들어 보도 못한 욕과 해병대 곤조가를 모른다고 “대가리 땅에 박아!” 하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각개전투훈련이 끝나자 사격훈련이 시작됐다. “내 생전에 총을 만져보다니…”하며 신기하기만 한 사격훈련을 받는다니 정말 해병대가 된 것만 같았다.
사격훈련은 실탄을 넣고 사격하는 것이라서 교관들은 여간 신경 쓰는 것 갖지 않았다. 극도로 예민한 눈초리로 교관들은 훈련병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리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소총을 조금만 잘못 잡아도 교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훈련이 시작되자 두 개조로 나뉘어 한 조가 잠적호에 들어가 타깃을 보고 신호를 보냈다. 사격 개시 명령에 의해 사격한 사람이 몇 방을 적중했는지 알리는 것이다. 그 잠적호 앞에는 배수로가 있어 물이 흐르는데, 조교들이 그곳에 오줌을 싸서 흥건해 있다. 훈련병을 그곳에 엎드리거나 눕게 한 다음 사격훈련이 실시된다.
만약 쏘다가 중지하거나 눈에 거슬리면 그 배수로에 머리를 처박게 한다. 그런 와중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입이나 코로 찌들은 오줌을 들이킬 수밖에 없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교관이 후려치는 몽둥이세례가 이어진다.

“군인이란 함께 먹고 자는 일만 아니라 전장에서 생사를 같이해야 하는 공동운명체다”라고 하면서 “단체 기합이란 공동 의식체인 해병대 전우애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하는데 할 말이 없어진다.
단 한 번으로 합격을 받는 전우가 있는가 하면 몇 번씩 해도 점수 미달인 전우가 있다. 그럴 때면 늦은 시간까지 잡혀 있으면서 “전우를 잘못 둬서 죄송합니다” 하는 참으로 기도 안 차는 구호를 계속 외치며 오리걸음으로 돌게 했다. 그런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동기생들은 손에 손을 잡고 하나로 뭉쳐 갔고 마침내 8주 훈련이 끝났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8주 훈련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도가 높고 기합 센 훈련으로 가장 잠을 적게 자고 휴식 시간도 제일 짧다”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해병 253기는 505병이 입대해서 3명이 낙오하고 마침내 무적해병으로 태어나는 수료식이 왔다.
고향의 부모 형제들이 모두 올 수 있는 수료식에서 그렇게도 바라던 빨간 명찰을 가슴에 달았다. “이제부터 피와 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의 세계 최고의 강군의 반열에 너희들은 올랐다. 축하한다!”하는 훈시를 들으며 새 군복과 군화를 받은 나의 가슴엔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 “귀관은 저 단상 위에 서라”
수료식이 끝나자 각자 주어진 병과 별로 후반기 교육을 위해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이질범은 자신이 지원했던 헌병(군사경찰)이 되기 위해 헌병학교로 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중대원들이 집합해있는 쪽으로 지프차가 오더니 거기서 내린 키가 쭉 뻗고 잘생긴 상사가 앞에 멎더니 “귀관!”하고 지적을 했다. 
“옛 이병 이질범!” 영문도 모른 채 관등성명을 배운 대로 힘차게 외쳤다. “귀관은 저 단상 위에 서 있는다” 하는 말에 “옛!” 나는 명령대로 단상 위로 뛰어가 올라가 서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상사는 “잘 들어라! 저기 서 있는 해병처럼 키가 180 이상이고 ‘차렷’ 자세에서 양 무릎이 닿는 정자세 폼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자진해서 여덟 명만 올라온다. 알았나?”

중대원들은 모두가 “옛!” 하며 힘차게 복창했지만 자발적으로 나온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저 상사가 누구며 어디로 배치될지 모른 채 해당자들은 모두가 머뭇거리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가? 그러면 지금부터 지목하는 자는 앞으로 나와라” 하며 “귀관~! 귀관~!” 하며 7명을 지목했다. “이제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의장대 요원으로 뽑힌 것이다. 축하한다.”
그들은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나머지 중대원들은 부러운 표정들이었다. 나는 그동안 고된 훈련을 시킨 교관들에 대한 원망과 밤잠을 못 자게 괴롭혔던 모든 고통이 싹 사라지며 이제부터 아가씨들이 줄줄 따르는 해병대 의장대원이 된다는 희망에 하늘색이 유난히 싱그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만 남겨놓고 나머지 중대원들은 4주간 후반기 교육을 위해 각기 흩어져 출발했고, 우리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한 실무병이 급하게 뛰어오더니 “선임하사님! 이번 기수에는 의장대 TO가 없답니다. 차출 인원 모두 원대 복귀시키라는 사령부 전통입니다”라고 말했다.
잔뜩 이마를 찌뿌린 채 상사는 “그럼 진작 말했어야지, 여기 인원들 모두 복귀시켜!” 하는 명령을 남긴 채 상사는 대기한 지프차에 오르자 그냥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를 비롯한 8명은 모두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마음이 되어 허탈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행운의 여신 옷자락이 스쳐지난 것이라는 허망함을 느끼며 “어쩐지~ 이게 웬 떡인가 했더니…”를 뇌까리며 상남훈련소에서 보병교육을 받기 위해 수송트럭에 올랐다.

고된 4주간의 보병교육을 마치자 김포여단으로 배치 명령을 받아 다른 동기생들과 함께 야간 군용열차에 올랐다. “드디어 이제 내가 서부전선을 지키는 해병대가 되었구나!” 하는 감개무량함과 “제대가 30개월 남았다”며 벌써부터 고향으로 가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용산역에 내리자 우리를 기다리던 군용트럭 20대에 나뉘어 오르자 터덜터덜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골구석에서만 살았던 나는 김포로 배치받자 마냥 좋아했었다. 당시의 김포는 국제선 항공기가 뜨는 서울 근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점점 시골로 들어가면서 북한 확성기 방송이 들리는 살벌한 기운이 도는 전방임을 알자 긴장이 되기조차 했다. 아들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동구 밖까지 나와 “질범아, 내 예 있다. 질범아!” 하는 어머니 생각에 “어무니!” 하며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 눈가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터덜거리는 트럭에서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날이 1972년 11월2 6일이었다. 

야간 침투 훈련.

■ 불어오는 지옥의 휘파람
국제공항이 있는 김포가 북한과 맞닿아 있는 살벌함을 느끼는 곳인 줄 이제야 알게 되면서 내가 해병대 요원으로 최전방의 전사가 된 것에 자부심을 갖기로 했다. 우리를 태운 트럭은 여단 연병장으로 들어가 모두 하차시켰다. 여단장께 신고식을 한 후 거기서 예하 대대로 뿔뿔이 흩어져 다시 중대 소대 단위로 각자 위치로 배치되는 과정이었다.
내가 배치된 곳은 2연대 2대대 2중대 2소대였다. 겨울 눈발을 맞아가며 저녁에는 야간 근무를 하고, 낮에는 얼음을 깨 가며 옷을 빨아 입는 등 점차 신병 생활이 익숙해졌다. “그동안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옷 하나 빨아 입는 것도 힘든데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며 당신이 할 일 모두 다 하셨던 엄마가 그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제대하면 엄마한테 잘해 드려야지” 하며 엄마를 불러본다.

신병 생활 2달이 다 되어가는 1월 25일 한미합동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됐다. 나 역시 해병대 일원으로 훈련에 참가하여 산을 오르내리며 고지를 점령하고 밤새가며 그 고지를 사수하고, 눈이 쌓인 산속에서 배식 수송이 오지 않을 때는 비상식량으로 때우는 등 명령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이동 명령에 의해 헬기 탑승 대기 중이었는데 “250기, 251기, 253기, 254기 해병들은 훈련을 중단하고 뒤로 집합한다!” 하는 중대장의 핸드마이크 소리의 비상 명령이 떨어졌다. 영문을 모른 채 우리 신참병들은 여단본부 연병장으로 실려 가 하얀 천막이 있는 곳으로 갔다.

도착하니 검은 선글라스 맨이 우리를 훑어보며 “지금부터 너희 중에 장남이나 독자는 앞으로 나와라. 그리고 고졸 이하 학력자도 나와라” 하자 4명이 옆으로 나왔다. “너희들은 해당 사항이 없으니 자대로 돌아가 훈련을 계속하라 알았나!” 그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나머지에게는 기대가 되는 뉘앙스였다.
검은색 선글라스 맨은 남은 우리를 하나씩 불러 “자넨 학교를 어디 나왔나?”, “운동은 무엇을 했나?”, “형제는 몇이나 되는가?” 등을 물으며 합격 대상자들을 따로 선별해 세웠다.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꽤 높은 분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런 사람이 나를 직접 뽑았다는 것에 옅은 흥분이 목줄기를 타고 올랐다.

70년대 신병교육훈련 모습.

■ 너의 이름을 잊어라! 목숨을 새의 깃털처럼 여겨라!
그는 “선발된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원대 복귀한다” 하며 모두 보낸 후 내 귀를 의심할 정도의 폭탄 발언을 했다. “선별에 합격한 너희들은 행운 중의 행운아다. 보안대 요원으로 차출된 것이니 국가를 위해 부여된 더욱 큰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눈웃음과 미소를 지으며 닥쳐올 군 생활을 상상했다. 보안부대가 무엇인가, ‘방첩대, 정보요원 등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사복을 입거나 자신의 신분을 밝히 않은 채 계급 여하를 따지지 않고 사찰하는 특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전라도 시골 촌놈의 인생이 확 바뀌는 절대절명의 시간이 오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각자 자대에 가서 개인 꼰뽕을 들고 다시 집합하라” 명령에 의해 자대로 돌아가 곤뽕을 갖고 나오는데 중대장이 이 소식을 듣고는 “축하한다! 보안대 가거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해서 우리 2중대 특별히 생각해 주게”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날 밤 12시 깜깜한 산중을 뚫고 13명의 보안대 요원으로 뽑힌 우리를 태운 트럭이 여단 연병장을 출발했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내가 가는 곳이 어딘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트럭은 전혀 사람이 살 곳 같지 않은 산중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비밀부대여서 역시 숨겨져 있는 장소에 있구나’ 나름대로 생각을 하며 “무슨 보안대가 산속에 있어?” 하자 “어느 놈이 떠드는 거야. 너희는 지금 이 시간부터 두 명 이상 모여서 말하면 안 된다. 알았나!” 선글라스 맨의 호통이 떨어졌다. “옛” 대답은 했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마치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악몽의 예감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가설 건축물로 보이는 스산한 막사였다. 선글라스 맨은 마치 우리를 사냥해온 노획물처럼 노려보며 다시 일갈했다. “잘 들어라. 지금 여기에 온 너희들은 이제부터 군번 따위는 없다. 훈련소에서 지급 받은 모든 피복과 개인 사물은 버려라. 지금까지 썼던 너희들 이름도 잊어버려라!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 최강 해병대원으로 나의 목숨을 새의 깃털처럼 여기는 동시에 한목숨 조국을 위해 기꺼이 바친다는 충성스런 군인이란 사실만 기억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상관의 지위 계급 성명을 알려고 하지 말라. 지금까지 말한 수칙은 특수임무를 맡은 여러분들이 지켜야 할 사항이다. 알겠나!”
“옛!” “복창 소리가 쥐 좆만 하구나! 다시 묻는다! 알겠나?” “옛!” 우리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대답했다. 그리고 가만히 머리를 정리해 봤다. ‘보안대라는 것이 특수임무를 통칭하는 말인가 보다. 상관 관등 성명도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 사복을 입어서 그러는가 보다’고 막연히 생각하며 뭔가 모르게 지옥의 문으로 들어온 같은 마음이 들었다.  <계속>

▲ 이질범(해병 253기)
해병북파특수공작대(MIU)

각개전투 훈련장 김일성 모형 허수아비 설치.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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