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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도 모르는 해병대 이야기국군 최초의 여군은 해병대였다
진해에서 전투복을 착용하고 훈련받은 해병 4기 여해병들.

본지의 모사(母社) 도서출판 청미디에서 근간 예정인 박종상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저서 ‘귀신도 모르는 해병대 이야기’ 중 여해병에 관한 내용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 세상에 알려지게 된 ‘여해병’
국군 최초의 여군은 해병대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1994년 이전까지는 제주 출신 해병 제3‧4기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4년 8월 10일자 동아일보와 1994년 8월 15일에 발간된 ‘해병전우신문’에 보도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96년에 강기천 장군의 회고록 ‘나의 인생여로’에 해병대 여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1997년에는 MBC에서 특집프로로 방송을 하기도 했다.
제7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한 강기천 장군은 여군을 훈련한 당시의 해군신병훈련소 소장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7월에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는 모슬포 1대대를 고길훈부대로 명명하고 군산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8월 중에는 제주도 내에서 3,000여 명의 지원자가 해병 제3‧4기로 입대했다.
이때 해병 제4기에 제주도의 중학교 여학생 및 여교사, 그리고 육지에서 제주도로 피난 온 여성을 포함하여 126명이 해병대에 입대한 것이다.

■ 조국수호 앞에 남녀차별 없다
이들은 제주도 내의 2개 여학교(제주여자중학교와 신성학원)와 남녀공학이었던 한림중학교, 교사양성소 학생(제주여중 4년을 하고 양성소를 수료하면 교사자격증을 부여하는 제도가 있었다)과 현직 교사도 일부 있었다. 교사들은 미혼만 선발하였다.
당시 신현준 사령관은 해군에 여자군인 제도가 없기 때문에 지원하는 여학생들을 여러 번 제지하고 달랬으나 “조국수호의 대의 앞에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하고 적극적으로 희망하였기에 후방에 행정업무를 담당시키는 것은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아래 그들의 입대를 허용하였다.
1950년 8월 27일부터 28일 사이에 입대하여 제주 동국민학교에 집결한 다음 신체검사와 간단한 구두시험을 거쳤으며, 합격 판정을 받은 126명은 8월 31일 제주 북국민학교에서 입대식을 가졌다.
이들은 중학교 교사 1명과 대학생 2~3명, 국민학교 교사 약 20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여중 2~3학년생이었다.
다음날 9월 1일 제주항에서 해군함정(LST)에 승선하여 해병대의 전 병력과 함께 진해로 가게 되었다.

■ 신병 기초훈련 받은 126명의 여해병들
9월 2일 진해에 도착한 그 126명의 여성 해병들은 특별분대(중대)로서 경화국민학교에서 배소재 소위와 서정애 소위 등 2명의 해군 간호장교로부터 9월 19일까지 신병 기초훈련을 받았다.
그 후 해군 간호장교 2명은 해병대의 김성대 소위(해간 1)와 부사관 1명(조교)의 새로운 교관으로 대체되었다.
신병교육대는 여군 신병들의 수용과 교육을 위해 별도의 내무실과 교육장, 여성 전용 화장실과 세면장 및 위생재료 등 필요한 시설물을 갖추었다.
9월 20일 해군 진해통제부로 이동하여 10월 10일까지 경화국민학교에 설치된 해군 신병훈련소 특별분대(중대)에서 나머지 훈련을 받고 수료했다.
이들은 교육 기간 동안 남자 해병들과 동일하게 M1 소총과 칼빈소총을 휴대한 단독군장으로 제식교련, 총검술, 사격훈련, 포복훈련 등의 훈련을 하였다.
10월 10일 40여 일간의 교육을 마치고는 각자의 희망에 따라 실무배치와 귀가를 선택했다.
이때 귀가를 희망한 51명은 계급을 부여하지 않고 귀가 조치했으며, 75명은 계급을 부여받고 실무부대에 배치됐다.

■ 경력‧학력 따라 계급 부여
이들 중 대학교를 다녔거나 졸업한 신영희(전남대 의대 재학), 이순덕(대학 졸업 후 서귀포여중 교사 재직), 강재삼(대학 졸업 후 서귀포국교 교사 재직) 등 3명은 수료와 동시에 소위 계급을 부여받았다.
또한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중 입대한 인원과 교사 양성소 교육생 및 중학교 이상 졸업생은 경력과 나이 등을 고려하여 병조장(2명), 일등병조(7명), 이등병조(9명), 삼등병조(15명)의 계급을 부여받았으며, 중학생 신분으로 입대한 90명은 일등수병 계급을 부여받았다.
장교로 임관한 3명 중 신영희‧강재삼 소위는 해군진해병원에 배치되어 위생장교로 보직되었으며, 이순덕 소위는 해군통제부 정훈실 정훈관으로 보직되었다.
부사관 및 병사 계급을 부여받은 72명 전원은 진해 해군통제부로 전속되어 통제부 내 여자숙소에 숙영하면서 참모부서 및 직할부대 등에 배치되어 행정, 선무공작 및 정훈활동, 보급‧정비, 통신, 헌병, 기계제도 등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해병대에는 단 한 사람도 배치되지 않고 전원 진해 해군통제부를 비롯한 진해의 해군 단위부대와 해군본부 등에 배치되어 근무했다.

■ 국군 최초 여군으로 역사에 남다
여자 해병은 근무한 지 한 달 보름가량이 지난 1950년 11월 23일부로 학교로 복귀하여 공부를 계속할 인원과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전역을 희망한 인원 등 42명이 전역했다.
이후 장교 3명을 포함한 33명만이 현역으로 남아 계속해서 근무했다.
이후 군에 남아 계속 복무하기를 희망한 인원들도 1951년 3월 5일 1명, 5월 10일 20명, 5월 29일 1명이 전역하여 6월 이후에는 11명 만이 현역으로 복무했다.
그리고 다시 7월 12일 8명이 전역하고 장교 2명도 1951년 8월과 12월에 전역함으로써 1952년부터 휴전까지 전쟁 기간 중 이순덕 중위 1명 만이 군에 남아 있게 되었다.
이순덕 중위도 진해 해군통제부 정훈실 정훈관으로 근무하다가 1955년 1월 17일 전역함으로써 여자 해병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결국 해병 제4기의 일부로서 모집이 된 그들은 그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여자 해병은 6‧25전쟁 이후에도 여군으로서의 맥을 이어가는 육군과 달리 2000년까지 45여 년이라는 휴지기를 보내고 2001년에 다시 여자 장교 및 부사관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해병대의 여군은 비록 오랜 기간 동안 그 명맥이 끊기기는 하였지만 1950년 9월 1일부로 육군 제2훈련소 예속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창설하여 1950년 9월 4일부로 입대식이 실시된 육군 여군보다 6일 앞선 1950년 8월 30일에 입대한 국군 최초로 여군이었던 것이다.

▲ 박종상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국제정치학 박사

훈련 수료 후 제복을 입고 기념 촬영 하는 해병 4기 여해병들.

6‧25전쟁 발발하자 적극적으로 입대 희망한 제주 여해병들
해병 4기로 여교사‧학생 등 126명 입대… 신병 기초훈련 수료
1950.8.30. 입대, 육군 여군보다 6일 앞선 ‘국군 최초 여군’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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