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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탄약 긴급공수 작전
▲ 윤태헌해간 11기, 예·대령

■ 탄약 긴급보급 요청이 들어오다
파월 중 구정작전 시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 청룡부대는 계획된 작전 명령에 의거 1967년 말부터 추라이작전 지역에서 호이안 지역으로 북상 이동하며 숙영시설 및 진지공사가 한참 진행중인 상태에서 전면적인 구정공세를 받게 된다.
적은 주야를 가리지않고(통상 야간전투 위주) 연일 피아교전하는 바람에 여단본부상황실은 초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적정파악과 아군의 작전상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적은 호이안시내로 잠입, 고적 문화재 시설물과 양민을 방패삼아 연일 계속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특히 호이안시는 국보급의 고적 고궁 유적지가 산재되어 있어서 여단장님으로부터 고적 문화재를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특명이 있어서 기갑부대를 진입시킬 수도 없는 전황 속에서 보병 작전으로만 공격을 하다 보니 자주 난관에 부딪히고 있었다.
나는 여단병기참모로서 이틀간의 상황실 근무에 잠시 피로를 풀고자 할 때 호이안시를 공격 중인 보병중대로부터 휴대탄약 소진 상태로서 탄약 긴급보급 요청이 들어왔다.
시간은 오후 3시경, 당시 작전부대는 앵그리코 통신망을 통해 보급지원 요청하면 즉각 A.S.P(다낭탄약보급소)에서 건쉽 헬리콥터의 엄호를 받으며 탄약공수지원이 이루어지는데, 당분간은 공수지원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 헬기 공수 작전으로 출동
이유인 즉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북쪽 케산 지역의 격전으로 헬리콥터가 전부 케산 지역으로 출동하였다는 것이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탄약 지원이 안 되면 중대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즉시 여단장실로 뛰어갔다.
여단장 김연상 장군님께 간단히 상황을 보고하고 이 위급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단장 헬리콥터 제너럴보트를 내줄 것을 요청하고 사용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직접 출동하여 공수하기로 결심했다.
제네럴보트에는 미 해병대 소령 조종사와 호위용 M60 기관총사수로 편성되어 있으며, 여단장님 핼기 출동 시에는 건쉽 2대가 근접호위를 하게 되어 있었다.
지금 이상황에서는 내가 직접 단독 출동할 수밖에 없었다(탄약을 탑재하기 위하여 용적 공간 최대 확보)..
나는 헬기 조종사와 기관총 사수에게 신속히 협조해줄 것을 당부하고 행운을 빌며 직접 제네럴보트에 몸을 싣고 다낭 A.S.P에가서 필요 탄약을 탑재하고 호이안 작전지역으로 이동해보니 축구장 4개 정도의 모래 개활지에 개인호를 파고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중대를 포위하고있는 주변은 우거진 숲과 여기저기 건물이 숲과 어우려져 있었으며, 숲속에서는 불꽃이 튀어 올라오고(우리 헬기에 소총 공격) 있었다.

■ 마블마운틴으로 불시착한 헬기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조종사, 기관총 사수, 그리고 나는 수신호로 의견을 교환했다.
조종사는 적의 저격탄을 피하고, 기관총 사수는 숲속에 집중사격을 가하며 나와 더불어 탄약 박스를 발로 투하하기 3회에 걸쳐서 공수작전을 감행하고 성공적으로 작전지역을 벗어났다.
귀대하는 중 제네럴보트가 ‘풋츄 풋츄’하며 기체가 떨리기 시작한다.
나는 즉각적으로 ‘적의 스나이핑에 당했구나’ 생각할 때 조종사가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흔든다.
다낭 마블마운틴 근처에 숙달된 조종 기술로 무사히 불시착했다. 이미 석양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약 1개 분대의 우리 해병이 달려와서 즉각 사주방어 태세에 돌입하고 나는 다른 헬기로 무사히 부대복귀했다.
먼저 여단장님께 결과를 보고하고 상황실로 가서 전황을 파악하니 투하된 탄약은 전량 회수하였고 역습 준비에 임하고 있다 한다.
이 모든 정황의 신속한 연계 통신이 우리에게 파견된 미 해병대 앵그리코의 역할이 컸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나 잠시 후 적은 약 9시경 야음을 틈타서 철수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나의 벙커(분대 천막에 약 1미터 높이 센드백 축성)로 들어와서 전령이 준비해준 저녁 식사로 요기를 하고 하루의 일과를 점검해본다.

■ 비무장 상태에서 공격 받은 귀국 병력
1967년 8월 청룡부대 병기참모(소령)로 부임하여, 여단장님 방침에 따라 각 중대방석 전술기지를 순회하며 격려·위로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순회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월남전의 실상과 6·25전쟁의 비교 양상을 체험하며 전쟁 분위기를 체득할 무렵인 12월 말에 생각지도 않은 중령 진급이 심사 통과됐다는 희보를 받게 된다.
부득이 조기 귀국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1968년 1월 1일부로 중령으로 진급되고 여단장님께서는 T/O에 의한 조기 귀국은 부당하다는 의견과 유임을 주월사에 건의하고 있던 중 구정사태가 발발하여 우리 청룡부대 작전지역은 각 중대 책임 구역별 큰 피해 없이 승리를 거듭하고 평정을 되찾고 안정을 기하게 됐다.
주월사에 건의된 나의 유임 관계는 하위 직급 근무는 불가하다는 회신을 받게 된다.
나는 월남공화국으로부터 금성무공훈장, 청룡부대장으로부터 전공표창장을 받게 되며 3월 초순 귀국 명령을 받고 귀국제대 지휘관으로서 호이안에서 다낭까지의 교체 병력 약 150명을 인솔하고 육상 차량 이동을 하게 된다.
차량 이동 중 중도에서 적의 최루탄 공격을 받는다. 귀국 제대 병력은 비무장이다.

■ 유명을 달리한 전사자 전우들이여…
차량의 선두 선미에 특공중대 1개 분대씩 무장하고 호송 중이었다.
선두 지프차에 탄 나는 흰 손수건을 높이 휘두르며 빠른 속도로 가스 지역을 벗어나 다낭 승선 집결지로 무사히 도착했다.
다낭에서 귀국선에 승선하니 맹호부대, 백마부대, 백구부대, 군수지원단 등 많은 귀국 용사들이 승선하고 있었다.
나는 월남전선을 떠나며 짧은 기간이나마 운명을 같이한 수 많은 전우들 중 유명을 달리한 전사자 전우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으로 심신의 고통을 받는 전상 부상자 전우들의 쾌유와 앞날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뱃고동 소리와 더불어 멀어지는 월남전선에서 용전분투하는 전우들의 무운을 주님의 가호와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도했다.
여기에서 나는 육·해·공군 귀국제대 총제병지휘관으로 임명되어 함상 규칙을 잘 지키며 아무 사고 없이 약 일주일간의 항해 끝에 무사히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나는 부산부두에서 온 국민들의 뜨거운 환영 속에 총제병지휘관으로서 귀국 신고와 더불어 환영식을 무사히 마치고 7개월 만에 정든 포항 해병 제1상륙사단에 복귀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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