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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따귀 때린 자, 경호실장 임명한 대원군의 용인술

▲ 조성국(해병대사관 34기)

법학박사국가유공자

前 경민대학교 교수·도서관장

前 의정부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

■ 대권을 잡은 이하응
요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각료 임명이 관심사다.
과거 흥선대원군의 경호실장(금위대장) 임명에 관한 일화를 살펴본다.
조선 후기의 왕족인 이하응(1820~1898)은 1843년(제24대 헌종 9년) 흥선군에 봉해지고, 도총관 등 한직을 지내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였다.
왕족에 대한 안동김씨의 감시가 심하자 보신책으로 불량배와 어울려, 파락호로서 궁도령이라는 비칭으로까지 불리며 안동김씨의 감시를 피하는 한편, 제25대 철종이 후사가 없이 병약해지자 조대비(헌종의 대비)에 접근하여 둘째 아들 명복(고종의 아명)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허락받았다.
1863년 철종이 승하하고 조대비에 의해 아들 명복이 12세에 제26대 고종으로 즉위하자 이하응은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의 섭정이 되었다.
이하응은 대권을 잡자 안동김씨의 주류를 숙청하고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부패관리를 적발하여 파직시켰다.


■ 이장렴, 이하응의 뺨을 후려치다
이하응이 젊었던 시절, 몰락한 왕족으로 기생 춘홍의 집을 드나들던 어느 날, 술집에서 추태를 부리다 옆자리에 있는 금군별장(조선 중기 이후 국왕의 친병을 통솔한 무관직) 이장렴과 시비가 붙게 되었다.
화가 난 이하응이 “그래도 내가 왕족이거늘 일개 군관이 무례하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장렴은 이하응의 뺨을 후려치면서 “한 나라의 종친이면 체통을 지켜야지 이렇게 외상 술이나 마시며 왕실을 더럽혀서야 되겠소!”하며 호통을 쳤다.
이하응은 뺨을 얻어맞고도 할 말이 없어 술집을 뛰쳐나갔다.
그 후, 이하응은 대원군으로 섭정하던 어느 날 이장렴을 운현궁(흥선대원군 사저)으로 불렀다.
이장렴은 흥선대원군의 부름을 받고 운현궁으로 가면서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각오로 가족에게 유언까지 하였다고 한다.

■ “좋은 인재 하나 얻었다”
이장렴이 방에 들어서자 흥선대원군은 눈을 부릅뜨면서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이장렴은 “대감께서 지금도 기생 춘홍이 집에서 하던 것과 같은 행동을 하신다면 이장렴의 손을 이장렴의 마음이 억제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장렴의 말에 흥선대원군은 “조만간 그 술집에 다시 가려고 했는데 자네 때문에 안 되겠군. 하하하”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자기 오른손으로 자기 무릎을 “탁!” 치면서 “좋은 인재 하나 얻었다. 술상을 들이도록 하여라!”라고 하며 이장렴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장렴이 돌아갈 때 흥선대원군은 하인들에게 “금위대장(종이품) 나가시니 앞을 물리고, 중문으로 모시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이는 금위대장(한양을 지키던 영문의 수장. 현대 경호실장 겸 수도경비사령관)에 대한 구두임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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