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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나라 사랑합니다”이진섭(해병 26기) 본지 고문·목사
이진섭 본지 고문·목사

전북 정읍시에서 이진섭(본지 고문·해병 26) 목사는 정읍경찰서 개설 이후 경목으로 일생을 지내온 해병대 원로다.
그러니까 경찰서에 좋은 일과 궂은일로 관계가 있다면 이진섭 목사를 자연히 알게 되고, 특히 궂은일이 있는 본인이나 연고자들은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이다.
힘든 사람들은 목사님의 기도가 얼마나 힘이 되는가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진섭 목사의 이야기는 매우 많지만 그의 6‧25전쟁 경험담을 6‧25의 달에 들어 본다.
1953년 해병 제26기로 입대한 이진섭 해병이 훈련을 마치자, 부대는 그를 기차 화차 칸에 태워 어디로 간다는 말 없이 무작정 출발시켰다.
낮에는 시골 역에서 정차했다가 밤이면 이동해 간 곳이 연천이었다.
내리니 16기 선배 해병이 이 해병 일행을 인솔하러 왔다.
캄캄함 밤에 여기저기 예광탄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곤 “지금 훈련 중입니까?” 물으니 “야, 인마! 여기 전투 중인 곳이야!” 하며 윽박지르곤 그날 저녁에 제1전투단 11중대 3소대 1분대 소총병으로 전투 배치받아 산을 기어올랐다.
그곳엔 홍성철 중대장과 임경섭 대위가 함께 했으며 포탄이 빗발치는 산악을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내가 생존하기 위해선 적을 죽여야 한다’는 필승전략으로 싸워야 했다.
이진섭 신병은 적진 정찰 분대 13명에 끼어 정찰을 실시하던 중 포탄이 분대 중앙에 작열하는 바람에 선두 3명, 후미 4명이 그 자리에서 전사하고 이진섭 해병은 눈, 얼굴, 발, 팔 등 온몸이 파편이 박혀 진해로 긴급 후송된 후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지금도 고막과 우안 이 파손되는 상처를 안고 있는 중이다.
이진섭 목사는 태어났을 때 어머니 젖을 먹지 못하고 동네를 다니면서 젖을 얻어먹었다.
성장하여 군에 갈 나이가 되자 기필코 해병대에 가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해병대 지원했으나 체력 미달로 퇴짜를 당했다.
그는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썼다. ‘죽도록 나라 사랑합니다’는 글을 본 모병관이 엉덩이를 때리며 “합격!”하여 해병대에 나가게 된 것이다.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고 했지만 이진섭 해병은 이미 만들어진 해병대정신이 존재해 있었기에 온몸에 전상을 당하고 치료받은 후에도 6개월을 더 군 복무를 했던 진짜 해병대 사나이다.
그의 혈통은 아들과 손자에 흘러 3대 해병대명문가를 이뤘고, 해병대 남편의 정의로운 모습을 본 아내는 친정 동생에게 “해병대에 가라” 권유하여 처남까지 해병대가 된 자랑스러운 해병대 가족이고 원로다. 【신동설 발행인】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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