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1기생들(2중대 3소대).

“전쟁터에서 피를 적게 흘릴 수 있는 길은
오직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리는 데 있다”
신현준 초대사령관, 결의 굳게 다지는 훈시
■ 해병대 역사의 시작, 창설기념식
해병 1기생들이 덕산으로 이동한 것은 1949년 3월 28일이었으며, 입대식은 4월 1일이었다.
해병 1기 신병들의 입대식은 간소하기 짝이 없었지만 곧 해병사(史)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현준 사령관은 훈시를 통해 해병 1기생들은 해병대의 주춧돌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훈련에 정진할 것을 엄히 당부했다.
4월 15일, 역사적인 창설기념식은 삼라만상이 생동하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덕산비행장 어귀에는 국방부장관 이범석 장군이 친필로 쓴 ‘해병대사령부’의 입간판이 세워졌다.
이날 국방부 측에선 신태영 제2국장이 장관을 대리 참석했고, 해군본부 및 통제부 측에서는 손원일 총참모장을 비롯해서 해병대 창설에 공이 컸던 여러 지휘관 및 참모들이, 그리고 진해읍에서도 읍장을 비롯한 몇몇 유지들이 참석하여 뜻깊은 자리를 빛냈다.
해병대 참석 장병 380명 중 300명은 해병 1기생들이었고, 나머지 인원은 기간장병들이었다.
초대 해병대사령관 신현준 대령은 “장차의 전쟁터에서 피를 적게 흘릴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리는 데 있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 어떤 시련과 역경도 극복하고 최강 부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전 장병이 한 가족처럼 일치단결하여 정진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고 훈시했다.
신 사령관의 훈시는 이날에 임한 장병들의 결의를 한층 더 굳건히 가다듬게 했다.
창설기념식이 끝난 뒤 장병들은 진해 읍내 유지들이 선물로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나눠 먹으면서 즐거운 오락시간을 가짐으로써 창설일을 자축했다.

해병대 발상지 기념비

■ 해병대 잡는 ‘북해도 곰잡이’ 훈련
해병 1기생들에 대한 본격적인 훈련은 입대식 직후부터 시작됐다.
훈련 부대는 2개 중대로 편성되고, 각 중대는 4개 소대로 편성됐다.
각 중대중과 소대장 또는 분대장들은 대개가 일본군 출신의 쟁쟁한 멤버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소대장들과 분대장들의 경우는 하나같이 호랑이 같은 기질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있듯 어찌 저들에 의해 천하무적의 강병들이 육성되지 않고 배겨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그런 느낌마저 들게 했다.
훈련은 입대식이 끝난 직후에 강행된 기마전으로부터 시작됐다.
팬티 하나만 걸쳐 입고 실시한 중대 대항 기마전은 스파르타식 강훈련의 시작으로 해병 1기생들의 추억 속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훈련병들의 감투정신과 단합심을 기르기 위한 기마전에서 패하게 될 경우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기합이 가해졌기에, 그 기합을 면하기 위해서도 사생결단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마전 외 교과목에 의한 강훈은 철두철미한 제식 교련과 비행장 내 동내산(43고지)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면서 강행된 각개 전투 훈련, 총검술 훈련 등을 손꼽을 수 있겠지만 특히 이색적인 것은 ‘북해도 곰잡이’ 훈련이었다.
혹서기의 역경을 극복하는 인내력을 기르기 위한 이 훈련은 옷을 많이 껴입은 것이 마치 북해도 곰잡이들의 행색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는데, 훈련병들에게 무한한 고통을 강요했다.
그들은 각자의 관품 상자 속에 있는 모든 옷, 그러니까 여름옷, 겨울옷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다 껴입어야만 했으니 거동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한증막 속 같은 무더위였다.
6~7월 복더위 속에 강행되면 공기가 통할만한 곳으로는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났고, 신발 속에는 마치 뜨거운 물 속을 지나가는 듯 후텁지근한 물이 흥건했다.
또 그런 차림에다 ‘앞의 총’ 자세로 약 1km 가까이 떨어진 곳까지 구보 왕복을 하였으니 그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역경 속에서 강인한 의지력 키운 해병대
훈련과 기합 속에 감투정신과 전기 연마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전통 만들어…

■ ‘상거지 중의 상거지’ 꼬락서니로…
당시 사용했던 훈련용 장비는 99식 소총과 목총뿐이었다.
단발 소총인 99식 소총은 어떻게나 낡아빠진 고물이었던지 공이가 빠져나가고 없는 것이 수두룩했고, 게다가 총신 내부의 공선이 닳아 빠져 훈련 도중 각자 다섯 발씩의 실탄 사격을 했을 때 제대로 표적 안에 들어맞는 실탄이 지극히 드물 정도였다.
그처럼 낡은 고물 소총이었지만 병기를 아끼는 마음만은 대단해서 언제 봐도 늘 안팎이 반들반들하게 손질돼 있었다.
훈련복은 대부분 미국 해군 수병들이 입다 버리고 간, 마치 자루 같은 크고 낡은 흰 바지에다 역시 미 해군 수병들의 중고 상의 등을 걸쳐 입었고, 그 위에다 일본 해군이 쓰다 버리고 간 파이버 없는 철모나 미군들의 철모를 썼다.
그나마 그대로는 쓸 수 없어 일본 해군 또는 미국 해군 수병들이 쓰던 흰 모자를 파이버 대신 안에다 받쳐서 쓰곤 했다.
또한 신발도 주로 미 해군 수병들 것을 신었는데, 더러는 커서 못 신고 발에 맞지 않아서 맨발로 훈련에 임하는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그런 모양의 신발 또는 맨발의 발목 위에 일본군의 각반을 맸으니, 타국 군인들이 버리고 간 그 온갖 고물들로 무장했던 그 상거지 중의 상거지 같은 꼬락서니들이란 비록 초창기의 일이었다고는 하나 일찍이 동서고금의 군대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가난하게 태어났던 해병대는 그러한 역경 속에서 오히려 강인한 의지와 인내력을 배우는 한편, 심한 훈련과 기합 속에 무적해병의 감투정신과 필승의 전기를 연마했다.
모든 장병들이 일심동체로 개척해 나감으로써 해병대 전통정신의 모체가 되는 가족적인 단합정신을 공고히 다져갔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황량한 ‘무(無)’에서 출발한 해병대는 진실로 찬란하고 위대한 ‘유(有)’를 창조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99식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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