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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

원로언론인 신용석 인천개항박물관 명예관장이 최근 인천일보에 연재하는 칼럼을 통해 61년 전 4·19 직후 미국 TIME지에 편지를 보낸 사연을 공개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하야 당시 그의 업적이 물거품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한 서울대학생의 진심을 담은 편지를 보낸 것을 회고한 내용이다. 본지는 신용석 명예관장의 허락으로 칼럼을 전재한다.

▲ 신용석

인천개항박물관 명예관장

원로언론인

전 조선일보 프랑스특파원, 논설위원

1960년 3~4월은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4·19 학생혁명으로 승화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전환기였다.
근 한 달 동안 지속된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서 이 대통령은 장기 집권과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매도되고 반세기에 걸친 독립운동과 건국대통령 그리고 6·25전쟁에서 극적으로 나라를 구한 그의 업적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경이었다.
4월 26일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이 대통령의 육성 방송을 들은 후 대학 신입생이던 필자는 인천우체국에서 항공봉합엽서를 사서 짧은 영어로 미국의 대표적인 주간잡지 TIME지 편집자에게 편지를 썼다.
“그동안 한국 학생혁명에 대한 공정한 기사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승만 정권을 규탄했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한다.”
세 문장 33단어로 된 짧은 글이었다.
당시 TIME지는 매주 500만 부를 발행하는 세계적인 시사 잡지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영어공부를 위한 교재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편집자가 도쿄특파원을 통해서 필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전화가 왔기에 보낸 사람이 실존하는 대학생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TIME지의 철저함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TIME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가 실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편 집배원이 미국에서 온 편지를 매일 수십 통씩 배달해 주면서였다.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이 박사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알던 분들과 한국전 참전용사들이었다.
이들은 보기 드문 애국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본국에서 독재자로 매도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는데 그의 공적을 평가하는 글을 보고 안도하고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몇몇 분들은 성경책 또는 ‘일본의 실체’ 같은 저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하와이에서 끝까지 이 박사 내외를 돌보던 윌버트 최 선생을 뵙게 된 것도 TIME지에 게재된 짧은 글이 인연이었다.
지난달 조부님 제사 자리에서 당시 TIME지를 찾아 읽고 싶다는 말에 조카 웅재 군이 이베이에서 1960년 6월 6일자 TIME지를 어렵사리 구해주었다.
한국 대학생이 쓴 세 문장의 짧은 글을 읽은 수 많은 사람들과 400여 통의 편지까지 받게 된 미디어의 영향력에 감동하여 대학 재학 중 4년 동안 ‘대학신문’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고 졸업 후 ‘조선일보’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고향에서 ‘인천일보’에 매주 칼럼을 쓰는 61년째 되는 글쟁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변함없는 것은 ‘불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는 국민은 죽은 국민’이라면서 4·19의 숭고한 정신에 책임을 지고 하야한 이승만을 평가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도리라는 믿음이다.
오늘(2021.3.26.)은 그 분의 146회 탄신일이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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