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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 | 기제사(忌祭祀)의 유래

역사에 나타난 기제(忌祭) 제도는 고려 고양왕 2년 포은 정몽주 선생의 발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례 규정에서 비롯됐다.
그에 의하면 대부(大夫) 이상의 벼슬에 있는 사람은 3대, 육품(六品) 이상은 2대, 칠품(七品) 이하의 일반 시민들은 부모 제사만을 지내라고 했다.
이후 조선시대의 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편에는 사대부(士大夫) 이상은 4대, 육품 이상은 3대, 칠품 이하는 2대, 일반 시민은 부모 제사만을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 당시는 전제군주로서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제사의 봉사(奉祀) 대상도 계급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
그러나 그때에 칠품 이상은 불과 2할 미만이었고, 일반 시민은 8할 이상이었으므로 우리나라의 민속화된 기제사의 봉사 대상은 대부분이 당대 만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고종 31년(1894년) 갑오경장의 여파로 계급사회가 무너지면서 모든 사람이 양반이 되고 싶어 너도 나도 4대 봉사로 정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제일은 휘일(諱日)이라고도 하며 고인의 별세한 날을 말한다.
별세 전날이 입제일(入祭日), 별세한 날이 망일(忘日), 그 다음날이 파제일(罷祭日)이다.
입제일에는 제주와 주부가 목욕재계하고 음주를 삼가며 가무를 금하고 문상도 안 가는 법이며,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고인의 생존 시를 회상하면서 추모하는 법이다. 【기사 제공 : 전하수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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