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인근 교회에서 노숙인들을 만나고 있는 필자 김무일 고문.

李씨 할아버지 말처럼 이와 같이 쪽방촌에 몰려드는 도움의 손길은 꽤 많은 편인데, 대표적인 곳이 종교단체들이다. 영등포역 6번 출구를 나와 좌회전 해 걷다 보면 ‘토마스의 집’이라는 노숙인 무료급식소가 있다. 이 일대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몰려드는 급식소로 어느 가톨릭 단체가 운영한다고 했다. 염수정 추기경이 영등포성당 본당신부로 봉직하던 1986년부터 시작됐는데, 매주 목요일을 제외하면 週 6일 점심을 제공하는 이곳에서는 하루 5백명 분이 넘는 급식을 한 끼 오백 원에 제공한다. 구태여 식대 오백 원을 받는 이유를 물으니, 이웃 광야교회에서 식사를 끝낸 노숙인들이 다시 이곳 ‘토마스의 집’으로 오는 이중 식사를 예방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했다.

낮 12시 점심시간쯤 되니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모여든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길래 우리 일행도 덩달아 줄을 섰다. 이날 메뉴는 잡곡밥에 오이 초고추장 무침과 된장국, 멸치볶음과 김치 等이다. 마침 앞에 선 쪽방촌 거주민 조○○(77) 氏는 “광야교회는 밥을 더 달라 해도 주질 않는데, 여기는 원하는 만큼 밥을 더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토마스의 집’에서 100m 쯤 떨어져 있는 ‘성요셉병원’에서는 공짜 상비약을 주고, 화요일이면 무료 이발도 해 준단다. 영등포 보건소 等 의료기관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찾아 의료 활동을 지원한다. 근처의 광야교회, 신성교회, 사랑의 교회 等도 영등포역 고가다리 밑에 천막을 치고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에게 간식과 음료수를 무료 제공한다. 이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이곳 영등포역 주변의 급식소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노숙인들이 항상 장사진을 치며 서서히 계절이 바뀐다.

■ 겨울이 왔다모질고 세찬 바람에 맘 놓고 식사할 천막도 문을 닫는다. 쪽방의 유일한 창문은 겨울철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스치로펌이나 靑테이프로 막아놔 통풍도 제대로 안 된다. 겨울용 이동식 급식차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영등포 쪽방촌을 찾는데, 대한성공회가 운영하는 급식단체인 ‘성공회 푸드뱅크’의 이동식 급식차다. “車 온다!” 도시락을 기다리던 쪽방촌 주민들 80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두 줄로 늘어서는데, 한 줄은 빵 줄, 다른 한 줄은 밥 줄이다. 이날 도시락 반찬은 닭도리탕 볶음과 양파 장아찌, 김치, 김이다. 하얀 스티로폼 용기에 가득 담긴 보리밥도 함께 주어진다. 이날 푸드트럭은 평소보다 30分가량 늦은 오후 3시 30분경에 도착했다. 각 50명 분씩 준비된 도시락과 빵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어~ Ce발 한발 늦었네!” 트럭이 분배를 끝내고 막 떠날 때쯤 헐레벌떡 뛰어온 상이군인 차림이 내 뱉는다. “쫌 일찍 오지 그랬어!” 푸른색 눈화장을 짙게 한 50代로 보이는 한 여성이 안타까운 듯 자기 몫 半을 갈라 주며 위로한다. 서로 안면이 있는 눈치다. 이곳에도 낭만은 있어 보인다.

무료급식을 타기 위해 외부에서 발품을 팔아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올해 83세인 정씨 할머니는 매주 화, 금요일 오후 3시면 무료도시락을 받기 위해 대림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와 시간도 때울 겸 두어 시간을 기다린단다. 이 할머니는 무료로 도시락을 타 가면서 되레 쪽방촌 주민들에게 역정을 낸다. “젊어서부터 일을 안 한 사람은 손바닥이 맨질맨질해. 일 안 해도 여기저기서 먹을 거 퍼 주니까 일도 안 하고 얻어먹기만 하는거지!”, “옷도 주고 빵도 주니까 요즘 이 동네 사람들은 물건 아까운 줄도 모르고 막 버려!” 하며 쪽방촌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성공회 푸드뱅크 차기영 실장은 “날씨가 궂고 추울 때일수록 줄 선 사람들이 몰려와 질서를 안 지키고 북새통을 이뤄 통제불능일 때도 허다해요. 그러다가도 분배가 언짢으면 험한 욕설을 마구 퍼부울 때가 섭섭하곤 하지요.”라고 술회한다.

얼마간 함께 줄 서 있다가 앞사람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필자를 팔짱 낀 채 몇 차례 아래위로 힐끔힐끔 훑어보더니 말을 건다. “배고파 온 사람은 아닌거 같은데?” 첫마디에 반말투다. 필자가 저보다 밑으로 보인 모양이다. “거기도 그렇게 보여!” 하며 대화가 시작됐다. 이곳에 15년을 넘게 살았다는 박모氏(75) 다. 척추를 다쳐 치료를 해야 하는데 일을 못 한다고 넋두리다. 박氏는 한동안 경상남도 울산공단에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病이나 방랑 생활이 시작됐단다. 이 통에 가족들과 소식을 끊은 채 마포에서 막노동하다가 추락사고로 병을 얻어 행려 환자로 적십자병원에 실려 가 응급치료를 받고 6개월 후, 어느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이곳을 소개받아 여기까지 왔다고 묻지도 않는 신세타령이다. 필자의 울산 생활이 떠 올라 대화가 길어졌다.

“숨이 차서 일도 못 하고 밥도 잘 못 삼켜. 밥맛도 없고 반찬을 사다 먹어도 금방 시어져요. 겨울에는 추우면 있는 대로 다 껴입으면 되지만, 여름철엔 너무 더워 맥을 못 춰 지겨워. 기초수급비 받아 방값, 약값, 병원비 내고 나면 쓸 돈이 없어. 먹는 거나 입는 거는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얻어먹고 살지만 여윳돈이 바닥이에요. 그래서 오늘처럼 ‘돕빠’를 두 벌 꿍쳐, 한 벌 내다 팔면 한 3만 원은 받아 저녁 술값은 생겨.” 얼른 내 몫을 그에게 전하니 금방 표정이 밝아진다. “언젠가는 나도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갈 날이 왔으면 하는 것이 큰 희망이예요. 보아하니 선생은 우리와 좀 달라 보이니 어여 이곳을 떠나 일자리 얻어 좋은 일 많이하쇼.” 헤어지는 길에 약값에 보태쓰라고 주머니를 뒤져, 있는 것 몽땅 털어주고 그곳을 떠났다.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드는 박氏가 그의 희망을 하루빨리 이루길 바란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돌아오는 길, 골목 어귀 슈퍼에서 목을 축이는데 이곳 쪽방촌 터줏대감 장복순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이런 데는 처음인개벼? 겉보긴 멀쩡헌디 워쩌다가 여기까지 흘러 왔남? 허름한 집이지만 한 몸 눕히기엔 쓸만혀. 내가 여기 세 놓아 자식 셋 모두 공부시켰어!” 올해 85세인 장 할머니는 50년 넘게 영등포 쪽방촌에 살고 있다. 중국 만주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945년 조국 광복과 더불어 귀국해 목포 유달산 기슭에 살다가 다시 이곳에 터를 잡아 살았다. 다리가 불편한 전쟁 상이군인 남편을 만나 삼 남매를 낳아 키웠다고 대견해 했다. 근처 시장에서 생선과 야채를 받아다 팔았는데,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다니느라 요통, 두통은 끊일 날이 없었단다. 할머니는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세 들어 살던 집을 집주인으로부터 사들여 쪽방 5개 달린 2층짜리 집으로 개조했다. 할머니가 50살 되던 해 생일날이었다고 흐믓해 했다.

할머니 살림방은 2층 한가운데 있는데 쪽방은 아니었다. TV와 냉장고 옷장 等 방 하나에 있을 것을 다 구비해 놓았는데, 선반처럼 쓰이는 김치냉장고와 식기세척기도 보였다. 5년 전 쪽방촌의 집 한 채를 추가로 더 사들여 두 집이 앞뒤로 붙어있는 구조다. 할머니는 안채의 2층에 살고 있고 1층에 있는 방 5개는 모두 쪽방이다. 이곳도 사람 한 명 들어가면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갈 공간이 없다. 5개의 쪽방중에 현재 2개가 비어 있지만, 바깥채 5개 방은 세입자로 모두 만석이다. 엄동설한에 빈방은 간혹 ‘응급 쪽방’으로 이용되는데, 서울시 산하 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노숙인 복지시설인 ‘햇살 보금자리’가 월세를 대신 지불해줘, 추위로 생명이 위급한 근처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된단다.

할머니는 “50년간 지켜온 이 쪽방촌을 떠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지하철 타기도 좋고 시장도 가까워 내가 살기엔 더없이 편하다.”고 했다. 현재 받는 월세는 대부분 약값과 병원비로 들어간단다. 한편 인근에 몰려드는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인들을 보는 외부의 시선은 그리 썩 곱지는 않은 듯 했다. 대부분 술에 취해 고성방가로 아무데나 내지르는 모습들을 반길 리가 없을 것이다. 쪽방촌 뒤편에는 일반 주민들의 보행자용 육교가 따로 있는데, 전철역에서 내린 영등포동 주민들이 철길을 따라 육교를 건너려면 필히 이곳 쪽방촌 울타리를 지나야 한다. 육교로 가는 길 주변에는 노숙인들이 악취를 풍기며 담배를 피우거나 만취해 있기 일쑤고, 육교로 오르내리는 계단 밑에는 폐지 수거용 리어카와 쓰레기더미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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