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에서 봉사활동하는 필자 김무일 고문.

무더운 날씨 탓에 방(房)문들을 활짝 열어젖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알록달록한 그물망이 드리운 방도 있어,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쪽방에는 빛바랜 러닝셔츠만 걸친 채 누워있는 사람들이 숱하다. 길바닥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 좁은 골목길에 불편해 보이는 몸으로 물을 뿌리며 빗자루로 쓸어내는 장애자들도 눈에 뜨인다. “조금 있으면 급식차가 올테니 기다렸다가 밥먹고 가. 저 구텡이에 줄 서면 밥줘.” 구겨진 밀짚모자를 쓰고 허리가 구부정한 70代 후반으로 보이는 강氏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며칠 전에 소개받은 주월 청룡부대 고엽제전우(戰友)인 그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문간방 쪽방에 들어서니 텅 빈 쪽방에 열기(熱氣)가 후끈 달아오른다. 신발을 벗는둥 마는둥 들어서자 등줄기로 땀이 비오듯 흘러 내린다. 언뜻 보기에 바깥 온도보다 한 3,4°는 더 높은 듯 하니 아마도 섭씨 40°가 훌쩍 넘기는지 숨이 막힌다. 어둑침침한 방 안에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한 뼘 남짓한 작은 창문이 뚫려있긴 해도 옆 건물에 가려 바람 한 점 없다.

벽면에 붙은 낡은 선풍기 한 대로는 역부족으로, 바닥에 깔린 돗자리가 끈적거려 오히려 더욱 덥게 느껴진다. 무덥고 습한 느낌보다 먼저 감지되는 것은 방의 크기인데, 학원가의 고시방이 좁다는 표현을 할 때 흔히 두 팔을 벌리면 양쪽 벽면에 손끝이 닿는다고 하던가? 쪽방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0.7평 정도로, 이곳에서는 팔 하나도 제대로 펼 수가 없을 정도다. 천장에 머리가 닿아 똑바로 설 수도 없고, 누워서 몸의 위치를 바꾸려면 팔을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들어 몸통을 굴려야 할 크기다. 성인 남성 한 명이 들어가면 아무것도 더 들어갈 공간이 없을듯, 공간이 워낙 비좁다보니 잡다한 세간살이도 없다. 철 지난 옷가지들이 벽면에 너절하게 걸려 있고, 화면이 손바닥만한 구닥다리 TV 한 대와 머리맡 한쪽 귀퉁이에 작은 봇짐이 전부다. 가장자리가 뜯겨나간 돗자리가 몸 크기와 비슷해 운신하기도 힘들 정도인데, 체험 삼아 바닥에 누워서 두 발을 주욱~ 뻗어보니 방 끝과 발끝이 거의 맞닿는다. 천장의 백열등에 두 눈이 희미해지는 이 房은 房이 아니라 꼭 棺 속에 드러누운 기분이다.

쪽방이란 표현 그 자체가 ‘쪼개어 쓰는 방’이라는 풀이로, 집의 한 부분인 방을 쪼개고 또 쪼개 房을 만들어 쪼갠 방에 한 명씩 들어가 기거한다. 이곳에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月 21만 원가량의 집세를 내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고령과 病苦에 시달려 일을 할 수가 없는 기초수급자나 혹은 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널리 알려진 이 쪽방촌은 도시 빈민의 마지막 보루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서울의 경우 용산구 동자동과 갈월동 뒷골목, 그리고 이곳 중림동 쪽방촌이 독거노인 불우이웃 1번지다. 반면에 규모가 제일 큰 쪽방촌을 든다면 영등포구 本洞과 문래동, 다음은 이곳 만리동을 포함한 후암동 일대로 서울의 쪽방촌 거주자가 모두 합쳐 근 2천5백 명이 넘는다는 서울시 복지후생과 지원센터의 설명이다. 매주말 고엽제 후원회원들과 땀 흘려 씨름하며 지난해 여름을 그렇게 보냈지만 보람은 있었다.

■ 가을철로 접어든다
온누리를 태워버릴 듯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간다. 내친김에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영등포 쪽방촌을 찾아 봉사키로 했다. 이곳 쪽방촌은 영등포역 인근에 있었던 옛 홍등가 일대가 모태다. 6·25 한국전쟁 직후 서울 도심 기차역 주변으로 사창가가 자생적으로 생겨났는데, 서울역전의 양동(陽洞)과 동자동 윤락가, 청량리역 주변의 588, 그리고 용산역과 鍾三이 그중 대표적인 홍등가였다. 저마다 말 못 할 사연들을 제각각 가슴에 품고 모여든 윤락녀들은 벌집 같은 쪽방에서 먹고 자며 목숨을 부지키 위해 생판 모르는 뭇 손님들을 응대해야만 했는데, 性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이곳에 있던 사창가는 규모가 크게 줄었다. 영등포구에 따르면 금년 1월 현재, 영등포 쪽방촌에는 총 67棟의 쪽방 건물이 남아 있는데, 房 개수로 따지자면 대략 580개쯤 된단다. 여기에 사는 무의탁 쪽방촌 거주민은 약 6백여 명 정도로 이중 5백 명 이상이 상주하는데, 나머지 백여 명은 매일 방세를 내며 오가는 뜨내기 1泊 숙박객이란다. 50세 이상 남성이 거의 대부분이고 그중에 60代 이상 고령자가 제일 많다. 여성 거주자도 더러 있기는 한데 60代가 主고 젊은 층은 거의 없다고 했다. 아마도 젊은 여성은 무얼 해서라도 먹고살기가 남성보다 나은가보다.

쪽방촌 거주자들 가운데는 기초생활수급자가 과반수로, 이들 거주자 6백 명 중 53%인 340명이 기초생활수급자다. 이중 140여 명은 신체에 장애가 있으며, 매달 20일이면 기초생활수급비 21만 3천 원과 노인연금을 합쳐 나오는 58만 원을 받아 쪽방 월세 21만 원가량을 납부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거주자들은 인력시장을 통해 하루벌어 하루 日當 수입으로 방 값을 치르는데, 이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 ‘日稅’다. 다달이 월세를 낼만 한 목돈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위해 생긴 납부방법으로 일세는 대략 하루에 7, 8천 원선에 형성된다. 이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지난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고 넌덜머리를 내며 이제 가을을 맞아 살 것만 같단다. 돌이켜 보면 쪽방촌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역은 아마도 한 여름철의 폭염(暴炎)으로, 외부 벽면을 접한 쪽방에는 창문 시늉만 낸 것뿐, 그나마 그물코가 촘촘한 방충망에 가려 통풍이 잘 되질 않는다.

조금 나은 방은 선풍기라도 있긴 하지만 창문이 없는 쪽방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날이 더우니 서로 얼굴 붉힐 일도 늘어나는데, 찌는 듯 무더운 방에 다닥다닥 붙어 살다보니 마찰이 빈번하다. 뜨거운 한낮에 주민들은 주로 밖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 곳이 영등포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그네 공원 쉼터’다. 하지만 대다수 쪽방주민들은 쪽방촌 길 옆 블록 그늘에 길게 걸터앉아 하루를 보내는데, 달리 마땅히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씻을 공간도 별로 없어 두 건물 사이로 난 미로처럼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물 내림 밸브도 없는 희뿌연 소변기가 보인다. 지린내가 진동하는 변기를 지나자 대여섯 명 정도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나온다. 수도꼭지가 겨우 하난데 시멘트 바닥에 낡고 벌그죽죽한 고무 합성 플라스틱 다라이가 놓인 화장실에는 날벌레 천지다. 목욕은 공용공간의 수도꼭지를 이용하는데, 사방이 뻥 뚫린 공간이라 속옷을 입은 채 목욕을 해야 했다.

“물은 잘 나오는 편이야. 그래도 여름에는 씻을 때 뿐이지. 저렇게 지붕이 함석판인 양철집은 엄청 더워. 기와지붕도 더운데 오죽하겠어? 너무 더우니 함석판 위에 거적이라도 한 장 덮어달래도 돈 든다고 말을 안 들어. 주인이 나쁜 사람이야.” 수도시설은 좀 괜찮냐는 질문에 한 80代 초반 최씨 할머니의 답변이다. 대부분의 쪽방에 취사 시설은 따로 없는데, 그 이유는 거주자들 거의 주로 밖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무료 급식을 주는 곳이 제법 많아 7, 8곳의 급식 제공 기관이 돌아가며 점심, 저녁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아침을 주는 곳도 더러 있다. 요일별로 방문 날이 달라 굶을 염려는 없어 배식시간에 맞춰 줄을 서기만 하면 된다. “여기는 우리같이 가난하고 病든 늙은이들에겐 天國이여. 공짜 밥 주지, 藥 공짜지. 이발도 무료에 겨울엔 도시락도 그냥 줘.” 하늘색 빛바랜 캡 모자를 쓰고 회색 남방차림에 백발의 80代 중반쯤으로 보이는 李모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는 금년으로 20년째 영등포 쪽방촌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1970년代 末에 경상도 두메산골 마을에서 상경해 영등포시장 일대에서 날품, 좌판 등 한때 돈도 벌어 아파트에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마음이 약해 친척 빚보증을 잘못 서고 하던 일도 실패해 이곳으로 흘러들어 왔단다. 큰아들이 추석을 앞두고 보냈다는 밑반찬 꾸러미를 꺼내 보이며 “떨어질만 하면 한 번씩 마련해 보내는데, 이번엔 좀 일찍 보내줬어.”라고 흐뭇한 표정이다. 그러나 “가족들과 자주 연락하느냐.”는 물음엔 “다른 데서 잘 살고 있다.”며 말끝을 흐린다. 씁쓸한 표정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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