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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해병대 마지막 4성 장군 別世故 정광호(예·해병대장) 제8대 해병대사령관
故 정광호 사령관 영정.
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이 운구를 마친 뒤 경례하며 마지막 가시는 길 인사를 하고 있다.

해병대 마지막 4성 장군으로 제8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한 故 정광호 예·해병대장이 지난 12월 9일 향년 98세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은 1922년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1948년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1949년 해병대 창설기에 초대 헌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6·25전쟁 당시 2대대 7중대장으로 경인지구 작전, 목포·영암지구 및 원산·함흥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해병대 1여단장, 사령부 참모장, 1사단장, 부사령관을 지냈으며, 특히 사령관 재임 중 국군의 장비 현대화 계획에 따른 신형장비 도입과 최전방 진지를 요새화함으로써 전력 증강에 기여했다.
1971년 해병대사령관으로 예편한 후에는 제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고인은 해방 직후 창군기부터 평생을 대한민국과 해병대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고인은 생존해 있던 마지막 해병대 4성 장군이었다.
해병대사령관이 대장으로 임명된 것은 고인을 비롯해 故 강기천 제7대 사령관부터 故 이병문 제9대 사령관까지 총 3명이었으며, 故 강 사령관과 故 이 사령관은 지난 2019년 별세했다.
장례는 해병대장(葬)으로 치러졌으며, 영결식은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하여 별도 시행하지 않고, 안장은 대전현충원 제7묘역에서 유가족만 참가한 가운데 이뤄졌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춘희, 장남 정운남(치과의사), 딸(정문희·정미희·정원희·정민재), 사위(방영길 은퇴목회자, 고무겸 재미사업가, 백순명 연세대 의과대 교수) 등이 있다. 【박흥배 보도국장】
 

故 정광호 사령관이 살아온 길

故 정광호 사령관

故 정광호 사령관은 경기도 화성 출신으로 1922년에 태어나 19세 때까지 출생지의 시골 간이학교의 훈도로 있다가 전쟁 말기 조종사를 양성한 만주 항공회사에 취직했다.
정광호 사령관은 해방과 함께 귀국, 당시 동대문에 위치한 광복군 국내지대 사령부(사령관 오광섭)에서 활동하던 중 1946년 5월 창군기의 해병병단에 입대했다.
준사관교육대와 해사특교대(제1차)를 거쳐 소위로 임관한 뒤 헌병대장을 거쳐, 1949년 3월 창설기 해병대로 전입, 초대 헌병대장으로 임명됐다.
그 후 명에 의해 해군으로 복귀했다가 6·25전쟁이 일어나 제주도에서 해병대 제2대대를 편성할 무렵 해병대로 복귀, 2대대 7중대장으로 임명되어 경인지구 작전을 비롯해서 목포·연암지구 및 원산·함흥지구 전투에 참가했다.
특히 경인지구 작전 중 7중대가 서울 서대문 뒤쪽 고지로부터 독립문 일대에서 잔적소탕을 할 때 아군이 서울시가지에 진입한 것을 알지 못한 채 민가에서 지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주먹밥을 리어커에 싣고 가는 1개 분대의 적 취사병을 몽땅 생포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전쟁 이후 1962년 준장으로 승진한 뒤부터 순풍에 돛을 달 듯 여단장, 행정참모부장을 역임하고, 소장으로 승진했다.
1966년 3월 강기천 사단장의 뒤를 이어 제1사단장으로 임명되어 특히 파월 교체부대 병력에 대한 특수교육을 위해 불철주야 정진했다.
1969년 7월 대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제8대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사령관 재임기간 중 2차에 걸친 미 해병대 방문을 통해 국군의 장비 현대화 계획에 따른 신 장비 도입과 최전방 진지의 요새화를 도모함으로써 유사시에 대비한 모군의 전투력 강화에 이바지한 공이 컸다.
1971년 6월 해병대장으로 예편 후 1973년 9대 국회가 구성될 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한 1기(3년) 의원으로 선출, 소속분과인 건설분과위원회의 상임간사직을 맡는 가운데 소임 완수를 위해 성념을 다했다. 【박흥배 보도국장】

재임 당시 진해기지를 방문한 故 정광호 사령관.

 

 

 

박흥배 기자  phb74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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