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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제13대 해병대사령관 누군가?부인 정남연(도솔회장) 여사에게 듣는다
설한지 스키훈련 당시 지휘하는 김정호(中) 사령관
김정호 제13대 해병대사령관

▲ 김정호 제13대 해병대사령관
경남 고성 (1931.11.21.~2013.7.15.)
6·25전쟁, 베트남전쟁 참전
1950.11. 해포대 최장기 일선근무, 1951. 해병학교 제3기, 1952.3. 장단지구 제2중대장, 제1대대(해포대)장, 1971. 준장 진급, 1975. 소장 진급, 1979. 중장 진급, 특검단 관리차장, 해병지휘참모대학 총장, 합참전략정보국 차장
1961. 미 육군 포병학교 고군반 수료, 해병작전학교 육군보병학교, 미 버지니아 종합군사학원, 미주리 종합군사학교, 미 육군참모대학. 미 해군참모대학, 미 합동참모대학, 국방대 학·석사, 국방대 교수,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 국보위, 한일연맹간사 건양기업, 대한중석광업 대표이사
충무금성무공훈장, 대통령 표창, 4등 보국훈장 천수장,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민정당 국회의원

지난 7월 15일은 故 김정호 제13대 해병대사령관 별세 7주기였다. 김정호 사령관은 해병대 2사단 및 해병대전우회 창설의 주역으로 해병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본지는 김정호 사령관의 관련 보도 중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부인 정남연(도솔회장) 여사를 만나 비화를 취재했다.

정남연 여사

■ 학생·학자·교수 같은 해병장군의 동반자, 정남연 여사
김정호 제13대 해병대사령관 부인 정남연 여사는 남편이 대령이었을 때 결혼, 해병의 아내가 됐다.
프로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 사령관은 미국 군사학교를 수시로 오가며 공부를 하느라 대령이 되기까지 결혼을 못했다.
정남연 여사 역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하여 혼기를 놓친 상태에서 김 대령과 결혼을 하였다.
“저는 남편이 학자 같기도 하고 학생 같기도 하면서 교수님 같은 분이라 생각하며 강직한 장군님으로 존경하며 살아왔습니다” 말하는 정 여사는 아직도 김 장군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온기가 뜨겁게 남아 있었다.
이번 호는 정남연 여사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호 장군의 비화를 들어본다.
정남연 여사의 해병대 사랑은 당시 해병들에게는 엄마였고 엄격한 참견자였기에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정 여사의 종착지는 해병대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 해병대 제2사단 창설, 그 탄생의 숨은 이야기
“해병대 역사에서 제2사단 창설이 얼마나 중요한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섭섭합니다”고 서두부터 불만을 거침없이 말하는 정남연 여사에게 “2사단 창설의 중요성이 무엇입니까?” 질문하자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된 후 해병대 존폐가 위급해 있을 때 2여단이 사단으로 증강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정호 장군은 이 일을 해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김포·강화 지역 해병대 2여단을 육군 사단으로 교체하려고 합동참모총장 한신 대장을 김포 2여단에 보냈다.
도착해 보니 그가 가장 미더워 하는 김정호 장군이 있는 게 아닌가?
“어! 김 장군이 여기 있었군” 하며 친숙한 대화를 나눴다.
美 버지니아 종합군사학교, 미주리 종합군사학교, 미 육군참모대학, 미 해군참모대학, 미 합동참모대학 등 美 고급장교들의 엘리트코스를 모두 이수한 김정호 장군이 하필이면 자신이 정리하려고 왔던 2여단의 최고 지휘관 아닌가?
한신 장군은 김정호 장군으로부터 해병대가 서부전선을 사수해야 하는 역사적 배경과 작전 개념을 상세히 경청한 후 박 대통령에게 “서부전선 이상 없습니다. 해병여단을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진언했다.
여기에 김 장군 부인 정남연 여사도 크게 일조했다.
정 여사 형부인 김윤호 장군(육사 10기, 제18대 합동참모의장, 육군대장)이 박통과 절친한 사이였는데, 그의 조언과 로비력이 더하여 2여단을 교체하기는커녕 사단으로 승격, 해병대 제2사단으로 창설키 위해 국방장관과 유병현 합참의장의 결재를 받는데 성공, 드디어 일을 해낸 것이다.
박통과 군 수뇌부들은 해병대사령부 해체를 통해 해군에 예속시키려 했던 의도를 크게 벗어나 오히려 해병대 1개 사단을 증설했다는 것은 북한의 야욕을 저지시키는데 중요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작전통인 김정호 여단장은 “반드시 사단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사단본부 위치 등 작전상 주요거점을 미리 예비했던 꿈을 이룬 사건이었다.

■ 해병대전우회 창설의 초석
1986년 3월부터 이두호(해병 1) 초대 사무총장은 김정호 장군과 손잡고 해병대 예비역 자생단체를 규합하여 해병대전우회중앙회 창설에 앞장섰다.
1987년 2월 중앙회 초대회장으로 추대된 김정호 13대 사령관은 사재 1억을 희사하여 그 자금으로 전국 지회를 직접 찾아다니며 창립행사를 개최, 전우들을 규합시키고 전우회 인증서와 지역 전우회장 위촉장 수여를 통해 해군에 예속되었던 해병대를 독립시키는 후방 지원 세력의 역할을 했다.
1988년 4월 8일 김성은 제4대 사령관을 중앙회 총재로 추대하고 김정호 장군은 부총재를 맡는 등 해병대 상하질서를 성실히 실천하는 본을 보였다.
김 장군은 1991년 9월부터 2년 동안 사무총장을 역임한 후 1997년 12월부터 98년 9월까지 총재를 맡았을 때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 장군은 자비로 창립 준비 행사를 개최하면서 식사 등 일체 경비를 조달했던 해병대전우회 창설 역사의 초석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신동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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