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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들이여, 역사를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 김현생

인천학도의용대6·25참전회장

해병 6기

■ 인천 지키기 위해 모인 학도의용대
후세는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특히 6·25전쟁을 기억해야 그 참상을 알 것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자유롭게 농사와 산업에 종사하고, 학생은 평화롭게 부모님 슬하에서 근심 걱정 없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 군인은 없었고 경비대만이 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무기라고는 일본군들이 버리고 간 구구식 소총뿐으로, 야포와 탱크는 생각지도 못하고 구경도 못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학은 소련제 신형탱크와 야포를 앞세워 38선을 넘어 철원, 문산, 서울의 공공건물과 공장을 건물을 박살내면서 점령했다.
한강을 도강하여 인천, 수원을 박살내면서 민간인 자유 대한민국에서 거주한 사람은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학살하고, 학생과 젊은 사람은 의용군으로 밧줄로 묶어서 북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생사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나는 충청남도 어느 산골에서 피난 생활을 하며 여름이라 덥고 먹을 게 없어 구걸하다시피 살았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인천에 와보니 선생님도 생사를 모르고 학교 건물만이 남아 있었다.
학교 선배가 우리들을 모아 놓고 나라가 있어야 배움도 있고 학교가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한 뒤 학도병을 조직했다.
인천의 남녀 학생 약 3천여 명이 모여 “인천의 치안이 엉망이니 우리가 각 지대를 편성하여 인천을 지키자”고 결의했다.
중구·동구를 서구지대, 부평구·서구·계양구를 북구지대, 남구·남동구·연수구를 남구지대로 하여 각자 지역에서 순찰과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 함경도까지 점령하였으나 중공군이 개입하여 인해전술로 작전을 세워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기 시작해 인천까지 온다하여 학도의용대 3천여 명 남녀 학생이 모여 12월 18일 축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출정식하고 인천에서 출발했다.

■ 고난의 여정 끝 해병대 입대
오후 3시경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었다. 밤새도록 걸어서 새벽 4시경 도착한 곳이 안양이었다.
빈집에서 2시간 정도 휴식을 하고 다시 걸어서 수원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경, 부모님이 주신 주먹밥을 펴보니 날씨가 너무 추워 밥이 꽁꽁 얼어있었다.
휴식하면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수원역으로 가서 보니 대구로 가는 화물차가 있었는데 인산인해로 짐짝처럼 가득 차있었다.
그래도 가야된다는 생각밖에 없어 화통, 지붕 등에 매달려서 대구에 도착해서 육군본부에 가서 우리도 학도병으로서 싸우겠노라고 하니 이곳도 위험하니 마산으로 가서 대기하라고 했다.
걸어서 김천까지 가는 도중에 구걸하며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걸어가면서 배고픔을 우물물로 달래면서, 저녁에는 민가에서 구걸하듯 얻어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김천역에 도착했다.
마침 화물열차가 피난민을 태워서 정차하고 있어서 얻어 타고 삼량진까지 가서 삼량진에서 걸어서 마산까지 가니 1950년 2월 29일 도착했다.
전 학생을 집합하라하여 마산역에 모이니 3천여 명 인원 중 2천여 명만 도착해 있었다. 나머지 1천 명의 생사는 알 수가 없었다.
마산에서 구걸하면서 10여 일이 지났는데, 진해 해병대에서 600여명을 차출한다 하여 그 대열에 끼어서 나는 해병 6기로 입대했다.
당시 다른 학생들 중 1,400여 명은 육군으로 입대했다.
나는 해병대에서 엄청난 힘든 훈련을 받고 서부전선, 중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
중동부전선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도솔산고지를 점령하고 앞에 있는 대우산을 공격, 승리 후 924고지(일명 김일성고지)로 이동했다.

■ 역사를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험악한 산세 속에서 공격하던 중 고지 30미터 정도 공격했을 때 허리에 총알 2발과 탄띠에 불이 붙어 배에 화상을 입고 진해 해군병원에 후송됐다.
3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해 다시 서부전선으로 배치되니 신병이 전방에 오면 전투 경험이 있다 하여 교관이 되어 신병 전투훈련을 시켰다.
휴전이 되었으나 바로 제대는 안 시켜줘 6년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 귀가하여 생활전선에서 자영업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했다.
재향군인회 중구회장, 자유연맹, 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운동 등 봉사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지역 활동을 했다.
나이 70에는 대한노인회 인천중구회장과 노인복지회관 관장을 역임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행사 시 인천중구 성화봉송주자로 참가했다.
나는 해병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며 해병대를 전역하여도 선후배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지내고 있다.
내 나이 89세로 지역의 발전과 학도병 동지를 위해서 지난 2012년 인천학도의용대6·25참전회 8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현재 9~11대 회장를 연임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후세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서두에 말과 같이 과거 전쟁의 비참함을 생각하여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야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젊은 세대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단합되어야 한다. 국민이 분열되면 세계 각 나라에서 무시를 당한다. 국민이 단합이 되면 이웃 나라에서 존경을 받는다.
경제대국 부강한 나라를 만들 각오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후세들이 역사를 올바르게 알아야 될 것이며, 세계에서 5위권이 될 수 있는 경제대국이 되어야 하고, 특수무기를 개발하여 어떠한 나라도 대한민국을 침범을 할 수 없게 해야 안전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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