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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해병 130기) 전 국회부의장 별세
故 홍사덕 의원 영정

故 홍사덕(해병 130) 전 국회의원이 지난 6월 17일 숙환으로 향년 77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고인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재학중이던 1962년 해병대 130기로 자원입대하여 2년간 의장대원으로 복무했으며, 서울대 출신으로는 첫 해병대 사병이었다.
홍 전 부의장은 중앙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을 거쳐 11대 총선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2대 국회에선 신한민주당, 14대 국회에선 민주당, 15대 국회에선 무소속, 16대 국회에선 한나라당, 18대 국회에선 친박연대 당적으로 당선돼 6선을 지냈으며,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당적으로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홍 전 부의장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후 해병대 출신 정병국, 강석호, 신학용 의원 등과 함께 연평도를 2011년 1월 2일 방문하여 1박2일간 연평도에서 동굴진지에서 근무하는 장병들과 식사도 같이 하고 야간에는 보초근무를 서는 등 주둔부대 장병들과 고락을 같이 하는 가운데 그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기여한 공로가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많은 지인들이 다녀갔으며, 특히 해병대 출신 정치인들도 빈소를 다녀갔다.
발인은 20일에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유가족으로는 배우자 임경미 여사와 1남 2녀 중, 아들 홍재선(해병 702), 며느리 손욱, 장녀인 홍은진, 첫째 사위 조정익, 차녀 홍세나, 둘째 사위 정해인이 있다. 【박흥배 보도국장】
 

故 홍사덕 의원이 말하는 해병대정신

젊은 시절, 충동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린 덕분에 평생 큰 덕을 보는 경우가 있다. 나의 해병대 입대가 그랬다.
대학 1학년을 마친 다음 등록금이 없었다. 그냥 노느니 군대로 때우자고 생각했고 기왕 군 생활하는 것, 남들이 힘들다고 하는 해병대나 가볼까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종로4가에서 해병 신병모집 광고를 본 게 동기의 전부였다.
신병훈련소가 얼마나 살인적인지, ‘빳따’라는 게 얼마나 가공스러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키 큰 값 하느라 향도로 뽑혔다.
소대원들 기죽이고 군기 잡기 위해서 향도가 대표로 ‘빳따’를 맞아야 한다는 상식 중의 상식도 없었기 때문에 저지른 실책으로, 첫 3주일은 엎드려서 자야만 했다.
신병훈련을 마친 다음은 늑대 굴을 지나서 만세를 부르다 보니까 사자굴인 격이었다.
해병대사령부 의장대로 뽑혀 서울대 출신 사병 1호에게 대검 꽂은 M1 소총을 공깃돌 가지고 놀 듯 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했을까 했지만… 가능했다.
해병대니까 가능했다. 다른 데라면 안 됐겠지만 해병대에서는 가능했다.
제대 이후 내가 ‘해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은 해병대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장모님이 격렬하게 반대했던 결혼 때는 물론, 선거를 치르거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해병대정신은 끝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용기와 결단력을 공급했다.
돈 없으면 선거운동이 안 되던 시절 거의 맨주먹으로 정면 돌파를 해낸 것도 해병대정신이었고, 양 김씨가 영호남을 갈라서 싸울 때 거기에 가담하지 않은 것 역시 해병대정신이 아니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故 홍사덕·이건희·김무일 ‘삼총사의 우정’

故 홍사덕 의원의 별세 소식에 생전 고인과 절친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김무일(해병학교 35, 전 현대제철 부회장) 본지 고문의 우정이 회자되고 있다.
해병대 출신 故 홍 의원, 재계를 대표하는 이 회장, 그리고 서울사대부고 총동창회장을 두 차례 연인한 바 있는 김 고문, 세 사람은 서울사대부고 13회 동기종창으로 삼총사라 불리며 우정을 쌓아왔다.
당시 故 홍 의원과 김 고문은 유도반이었고, 이 회장은 레슬링반으로 서로 힘자랑을 겨루기도 했다.
또한 해병대에 사병으로 입대한 故 홍 의원과 장교로 입대한 김 고문은 현역 때 의장대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김 고문은 “이승에서의 많은 사랑과 기쁨, 슬픔과 번뇌를 소백산 산자락에 묻는 날, 관 뚜껑 위에 정성껏 성경책 한 권을 올려놓고 돌아설 때 새삼 인생무상이 눈앞을 가린다. 새로운 조국의 구상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나보내고 나니 못내 아쉽고 애절하다. 하늘나라에서라도 내 나라 내 조국에 대한 평화와 안위를 지켜주며, 저승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고명석 기자】

 

박흥배 기자  phb74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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