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에 김일성 당부
1978년 9월 9일 (북)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립 30주년 경축일.
조선 측은 중국에 고위급 경축사절단의 방문 활동을 초청하였다.
지난 몇 년간 고위 대표단이 여러 차례 조선을 방문하였는데 이번에는 건립 30주년을 맞은 방문이자 의의가 자못 커서 당 중앙은 덩샤오핑(鄧小平) 부총리가 대표단을 인솔하여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덩과 김일성의 관계는 보통이 아니었다.
김이 75년 중국을 방문하여 저우 총리를 만났을 때 저우는 김에게 이후 자신이 없을 때 무슨 일이 있으면 대신 덩을 만나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전에도 덩 역시 조선 지도층과 여러 번 왕래가 있었다.
62년 조선 노동당 제4차 당 대회가 열렸을 때 덩은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으로 가서 조선 당위원장 김일성의 열렬한 접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63년 소련의 후르시쵸프가 물러난 뒤에 덩은 비밀리에 조선을 찾아가 국제 정세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문제를 두고 의견을 나눴다.
75년 4월 김일성이 중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와 72년 12월 조선이 헌법을 개정하여 김이 수년 동안 맡아왔던 수상 직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국가 주석 직을 맡기 시작한 때, 마오 주석이 중난하이 저택에 있을 때, 그리고 저우 총리가 입원했을 때 등을 제외하고서는 덩샤오핑이 김의 환영 연회를 주관해 중·조 양국 관계 및 국제정세 일반에 관해 광범위한 의견 등을 교환한 적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김의 중국 방문 때 덩이 김을 안내하여 난징(南京)을 방문하고 장강(양자강)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는 등 거듭 김과 같이 다닌 적도 있었다.
덩이 이처럼 김과 친숙한 교제를 하였기 때문에 덩이 중국대표단을 인솔하여 조선을 방문하자 조선 측은 보통과는 다른 특별히 고급스런 대우를 해주었다.
그 때 마침 나는 조선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던 때인지라 나는 베이징에서 보내던 휴가를 마치고 본청 아주국에 잠시 머물며 덩샤오핑의 조선 방문단을 수행하도록 하는 얻기 어려운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분주한 준비 과정을 마치고 중국 대표단은 78년 9월 8일 전용기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오전 11시 쯤 평양 순안기장에 도착, 조선 측 박성철(朴成哲) 부 수상의 영접을 받았다.
비행장에는 천 명이 넘는 군중들이 대오를 이루고 환영 나와 있었다.
덩샤오핑은 영빈관에 짐을 풀기도 전에 조선 측 안내에 따라 차편으로 주석궁으로 나아가 김일성과 만났다.

■ 호화판 절세(絶世)의 걸작 주석궁(主席宮)
금수산의사당이라고도 불리는 주석궁은 평양시 동쪽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김 주석의 거소 겸 집무실로 이곳에서 외빈을 접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곳은 그때 마침 낙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며 규모는 매우 광대하고 본관 주 건물은 4층, 넓은 대청이 앞에 있고 위층에 회견실, 회담장, 그리고 연회실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김일성의 집무실이 있었다.
본관 서쪽에는 더 거대한 연회실이 있어 근 1백여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전반적으로 건물의 기세가 대단해 보였으며 휘황한 황금빛에 푸른색이 찬란하고 평양에서 제일가는 절세의 걸작이었다.
덩이 주석궁의 2층 회견실에 도착하자 김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영접, 두 사람은 한동안 악수를 나누며 문안 인사를 주고받은 뒤 대청에 들어가 자리 잡고 곧 대화를 시작했다.
덩 부총리가 먼저 중국 공산당 중앙과 정부쪽 국무원을 대신하여 김에게 30주년을 축하하고 중국 영도자들의 안부 인사를 김도 충심으로 고맙다는 답례를 전하고 서로 환담을 나눈 뒤 오찬장으로 안내하여 덩과 중국 대표단 전원을 다시 환영했다.
덩은 30주년 경축예물, 잘 조각된 꽃병자기 1점을 비행장에서부터 운송해 온 조선 측 요원으로부터 인수받아 연회가 시작되기 전 김에게 전달했고, 김은 이를 받아본 뒤 거듭 고맙다고 치하해 마지않았다.
김일성은 풍성한 음식과 안주를 준비하여 덩을 대접했을 뿐만 아니라 쉬지 않고 중국말을 쓰며 환담했다.
분위기는 한결 친숙하고 우호적으로 무르익어갔다.
이번 국경일에는 중국 외에도 유수의 국가 원수 급이 또한 왔으며 고위 대표단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측은 덩샤오핑에게 최고의 예우를 했다.
경축연회는 물론 각종 보고회, 연극에 덩 부총리를 김일성 주석 곁 좌석에 안배하여 눈에 띄도록 했다.
또 이종옥(李鐘玉) 총리를 배치하여 덩이 조선의 공업도시 함흥을 순방할 때 안내하도록 했으며, 3만 명이 넘는 인원을 동원하여 환영하고 연설하도록 배려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일성이 분망한 중에도 하루 동안 시간을 내어 오전 오후 두 번에 걸쳐 덩과 회담토록 하여 국제 정세 등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룰 수 있도록 하였다.

■ 덩샤오핑과 김일성의 관계
덩샤오핑은 국제정세의 흐름과 평가를 소개하고 비록 국제정세가 복잡하나 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 된 사이에 서방 국가들은 발전을 도모하여 대외적으로 시장을 찾아 나서고 있는 만큼 우리들 사회주의 국가들에게도 좋은 기회이니 이 기회를 붙잡아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력을 스스로 증대시켜 자신들 스스로를 강건케 하고 국제적 지위를 차지하여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내보일 때라고 말하였다.
김일성은 조선의 국내정세를 소개하고 덩샤오핑의 국제정세 분석과 시국관을 흥미 있게 경청하였다.
이렇게 방문 시간을 나눠 양국 관계를 더욱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것임을 내보였다.
덩은 조선 방문을 마치고 열차 편으로 동북(만주) 각 지를 살펴본 뒤 국제정세를 시원스레 평가하고 중국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반드시 가야할 길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실제로 그 해 12월에 소집된 당 제11차 중전(中全) 회의에서 개혁을 결정하는 전주곡이 되었다.
덩샤오핑 동지와 김일성 주석은 말한 대로 평범한 관계가 아니었다.
1982년 덩 동지는 이미 82세의 고령이었고 자신의 말마따나 이제 더 이상 (외국을) 방문 외교에 나설 임무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김 주석의 요청에 응하여 예를 깨트리고 4월에 전용 열차를 타고 비밀리에 다시 조선을 방문하였다.
이번에는 후야오방(胡耀邦)동지가 수행하였다.
덩과 김은 회담하는 가운데 다음 번 김이 중국을 다시 방문하면 자신의 고향인 스추안(四川)성을 한 번 방문해 주도록 청하였다.

■ 김일성에게 개방 필요성, 서울올림픽 참가 설명
그 해 9월 김일성이 중국을 공식 방문하게 되자 덩샤오핑은 김일성을 위해 영빈관 댜오위타이에서 연회를 베풀고 그와 함께 열차편으로 스추안성의 성도인 청두(成都)를 방문했다.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 두 사람은 중국 국내 사정, 중조 양국 관계 그리고 국제 문제 등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청두에서 열린 인민환영대회에서 덩샤오핑은 (환영)연설도 하였다.
1983년 9월 김이 다시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하자 그는 다렌(大蓮)에 까지 가서 김일성을 만났다.
잊기 어려운 일은 샤오핑 동지와 김일성의 회담에서 덩은 여러 문제에 대한 중국 측 견해를 소개하고 깊이 있게 말해 김의 찬동을 얻어 내기도 하였다.
1987년 김일성의 중국 공식 방문 때 우리나라 지도자와 회담하는 가운데 중조 두 나라의 관심사 외에 남조선의 올림픽 개최에 당면하여 중조 두 나라가 취할 문제를 논의했는바 우리가 협조할 일이 있는가 제의하는 등 일찍이 전에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있었다.
샤오핑 동지는 올림픽 개최문제는 간단한 일이 아니므로 댜오위타이 회담에서 전문적으로 많은 경비 조달, 안전문제 등 매우 중요하며 복잡한 일로 내년으로 당도하여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다고 하였다.
소련이 그 이전에 한 번 올림픽 참가를 거절하여 서울올림픽도 다시 배척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도 않다고 하였다.
중국도 이 올림픽에 참석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했다.
샤오핑 동지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긍정적인 암시를 했고 김일성도 경청한 후 찬의를 표시했다.
이어 1986년 중국은 서울의 아시아대회에 큰 대표단을 보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에 대규모 체육대표단을 보내 참가하였다. <계속>

▲ 박 실 초역 / 전 국회사무총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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