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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대들이 월남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를…
이규웅(해병 147, 부 44기)

필자는 월남전이 한창 격화일로(激化一路)로 치닫고 있던 1967년 무렵 청룡부대에 소속되어 월남전선을 누비며 격전과 격전 속에서 용전분투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워 화랑·인헌무공훈장 및 무공포장을 받은 (자칭) 역전의 용사이며 전쟁영웅이다.
또한 월남전선에서 정글에 살포된 고엽제로 인해 후유증에 시달리며 고통 받고 있는 고엽제 환자이다.
1967년 5월에 첫 번째 파월 배로, 69년에 두 번째 비행기로, 71년 세 번째 배로 등 배로 두 번 비행기로 한 번 참전했다.
월남전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차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굶주림에 시달리고 가난과 궁핍 속에서 허덕이던 60년대 초기의 우리들이, 오늘과 같은 풍요 속에서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으며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월남참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만년의 민족 역사상 최초로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멀리 해외로 진출하게 됐던 월남전.
지난날 우리가 북한 공산 침략자들에 의해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 미국 등 다른 우방국 젊은이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우리를 공산 침략에서 구출했다.
월남전참전자들은 그 전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용맹을 세계에 떨친 것이다.
이들이 월남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호하여 그들의 신뢰와 협조를 얻어 월남 평정 사업에 성공한 막강한 군대가 되었던 것은 우리 참전 전우들 모두가 자랑과 긍지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상품과 기업과 근로자들은 처음으로 월남에 진출해 열심히 땀 흘려 일해 크게 성공했고, 우리 장병들이 벌어들인 외화와 함께 우리 조국의 경제 부흥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리고 월남을 발판 삼아 중동으로 뻗어 나갔고, 전 세계로 그 무대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안보 확보였다.
당시는 우리보다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북한 공산집단은 남반부 무력침공을 공공연하게 떠들던 시기였다.
우리 전투부대가 파월한 것 때문에 한국에 주둔한 미군 2개 사단은 계속 한국 방어에 전념하게 됐다.
월남 파병으로 우리의 장비와 무기 등이 현대화되고, 전투부대가 증편되는 등 국방력이 비약적으로 증강됐다.
월남은 불행하게도 전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국민과 군대가 공산주의를 똑똑히 인식하지 못해 국론이 분열되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전쟁수행 노력이 제대로 이러지지 못해 패망하고 말했다.
미국도 공산주의자들의 교묘한 심리전에 말려들어 무책임하고 망상에 빠진 반전주의자에 의해 국론이 분열돼 닉슨 미 대통령이 “우리는 월남전선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미국 내 월남 정치전선에서 패배했다”고 언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우리는 월남전 패망의 교훈을 명심해야 하며 앞으로의 남북문제, 통일문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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