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전우소식
해병 3·4기생들과 인천상륙작전

평화의 섬 제주도와 해병대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제주4·3사건 발발 이후 국군 수뇌부는 해병대의 제주 이동을 결정했다. 당시 신현준 해병대사령관은 “제주도민 모두와 생사고락을 함께 할 각오로 친형제나 다름없이 지내줄 것”을 당부하며 “피폐한 제주도의 재건을 위해 치안을 확보하고 경제부흥에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의 청년들은 해병 3·4기생들로 입대,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한 무수한 작전에서 위기에 놓인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쳤다. 지금의 자랑스러운 해병대 전통은 해병 3·4기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장하정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
 

■ “신병 3천 명을 모집하라!”

6·25전쟁이 발발한 뒤 신현준 사령관은 해군본부로부터 제주도에서 신병 3천 명을 모집하라는 비밀지시를 받았다. 해병대사령부는 제주도 각지에 신병모집을 공고하자, 제주도 청년들의 입대 지원이 쇄도했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위국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국충청의 결의로 승화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 우국충정 결의로 모인 해병 3·4기생

1950년 7월 해병 3기생 1,700여 명에 이어 8월 해병 4기생 1,250여 명이 모집됐다. 제주도에서 모집한 3천여 명의 신병들을 9월 초 본토로 이동시키기 위한 함정지원계획이 수립됐다. 이에 따라 열악한 상황 속에서 훈련했던 3기생과 그나마 군사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4기생들은 본토로 이동, 전선에 투입됐다.

 

■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 여해병

해병 3·4기생 모집 당시 제주도 특유의 강인함을 가지고 있던 여성들도 입대 지원했다. 이들은 초등학교 및 중학교 교사, 여중 2학년(만 16세) 이상 등의 미혼여성들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이었다. 신현준 사령관은 행정, 보급, 정비, 간호보조, 헌병, 정훈, 통신, 교환 등의 분야에만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승인 받았다.

 

■ 제주를 떠나 전선에 투입돼다

9월 1일 출정의 날, 제주항에서 해병 3·4기생들은 수많은 인파의 환송을 받으며 LST 안동호 등 수 척의 수송함에 올라 제주도를 떠났고, 다음 날 진해항에 입항했다. 우리 해병대는 미 제1해병사단에 배속돼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는 것이 결정됐다. 우리 해병대는 미군의 표준장비와 화기를 지급받으며 사기 충전했다.

 

■ 세계전사에 빛날 인천상륙작전

9월 15일, 261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유엔군 제7합동상륙기동부대가 미 제1해병사단과 대한민국 해병대를 선두로 세계전사에 빛날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했다. 해병 3·4기생들이 포함된 한·미 해병대는 400여 척의 상륙장갑차 및 상륙주정으로 상륙, 인천을 방어하던 적군을 격파하고 인천 시가지와 해안두보를 확보했다.

 

■ 해병 3·4기생들이여, 영원하라!

투철한 해병대정신으로 용맹무쌍하게 싸운 해병 3·4기생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작전을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또한 적의 최후방어선인 104고지, 연희고지 일대에서 저항하던 적을 격파하며 수도 소울 탈환의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마침내 중앙청에 태극기가 게양됐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적해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