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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대한 고찰
최복내 (해병 220기) 해병대충남연합회 이사

■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남아있네
인류의 고향은 숲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숨어있는 이 건물은 생각할 것도 없이 석기시대의 숲속의 한 은신처를 닮은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 생명의 안쪽은 인류가 살았던 숲속의 온갖 본능들의 아득한 무의식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문명이란 기껏해야 자연의 과장된 모방의 문명이라 할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 현자가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설파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숲을 약탈적인 소비로 파괴하는 생산과 개발의 ‘야만’이 오랫동안 문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한 가닥의 죄의식도 없이 정당화되면서 숲은 황폐화돼왔던 것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남아있네!”라고 했다.
이는 나라는 망해도 숲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 노래한 것이리라.
이백만 년 전 인류 조상이 숲에서 살기 시작 한 이래 인류는 그 역사의 90%를 숲의 삶으로 살아왔다.
아직도 70억 인구 중 45억이 취사, 난방, 조명을 나무를 사용함으로써 이어간다.

■ 산림 소비는 심각한 문제될 것
지금 한국은 산업화 몇 십 년 질주 후 1백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근대 식민지시대의 산림 훼손과 전란 중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례없는 산림녹화 모범 국으로 성공하였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의 종이 산업이나 목재 산업을 보면 보루네오밀림의 남벌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이 자국의 산림 정책만 강화하고 다른 나라 산림의 소비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끝내 지구적인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숲은 매년 4천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숲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승용차 5천만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가스를 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외적인 요인도 있다고 하지만 작금의 미세먼지 소동은 ‘우리의 숲을 지속적이고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끝없는 욕구 충족으로 인한 산림 파괴, 산업화와 자동차의 증가는 또 다른 인간의 산림녹화를 비웃는 격이 된다.
고대 및 고대 이전의 삶에 견줄 수 없는 근대의 삶이 베풀어주는 행복에만 몰입하는 오류는 반드시 수정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 미래의 숲, 환경 위한 대안
한편 미래의 숲과 환경을 염려하고 생각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 대안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첫째, 헐벗은 북한의 산을 푸르게 할 나무심기 방법과 묘목지원 방법을 모색할 것.
둘째, 초·중등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도입, 명상과 심신단련, 나무 이름 익히기, 나무 심기 등 숲에서의 공부를 제도화할 것.
셋째,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을 미래의 ‘꿈나무’라 하고, 사람의 가능성을 ‘사람 재목’이라고 하듯 취직, 결혼, 출생 시에는 나무 심기를 법제화 할 것.
넷째, 산림청과 그 부속기관을 주요 부서로 승격하고 공직자 등용 선출 시 자격 요건에 나무 심기 경력을 포함시킬 것.
아직도 자연은 모든 오염과 모독을 치유하는 정화의 원리로 이어지는 생명의 본체이다.
오늘의 인류는 자신의 의미를 그 일부나마 자연에 반환할 줄 알아야한다.
장차 130억 7천만 년이라는 지구의 수명 앞에서 숲의 정신을 인간정신의 제일의적인 가치로 삼을 때 거기서 인간의 미래라는 것도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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