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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km 오간 해병학교 35기의 ‘2019 현충’해병학교 35기 동기회(회장 김중치)
지난 6월 1일 7명의 동기생이 안장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참배하는 해병학교 35기생들.

호국보훈의 달 맞아 서울·대전 두 군데 현충원 찾은 동기회원들
‘불멸의 민족혼 상징’ 순국선열과 전몰장병 및 동기생들 추모해…
해병학교 중대장 송재신 대위 지휘 27중대 전몰자 묘역도 참배


■ 7년 만에 찾은 국립대전현충원
해병학교 35기 동기회(회장 김중치)는 지난 6월 1일 국립대전현충원(안장 동기생 7명)에 이어 6일 국립서울현충원(안장 동기생 2명)을 찾아 고인들을 추모하는 한편 유족을 위로했다.
매년 국립서울현충원의 이수장 중위와 한장석 소령, 해병학교 구대장 김갑수 대위 묘소를 참배해온 35기 동기회의 대전국립현충원 참배는 2012년 이후 7년만의 일이었다.
이번 참배는 지난 5월 11일 타계한 김형남 동기(전 1사단 포병 11연대장, 사령부 감찰실장) 대전국립현충원 안장이 계기가 됐다.
“내게 강인한 기상과 불굴의 정신, 올곧은 인생관과 역사의식을 갖게 해주고 훌륭한 선후배, 동료, 전우와 남은 삶을 함께 하게 해준 해병대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고 했던 고인.
국방대학원 교수로 10년간 재직, 해병장교의 우수성을 과시했던 그도 끝내 고엽제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계, 유족과 동기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1968년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 2대대 6중대가 야습한 베트콩에 포위됐을 때 여단 포병은 물론 인접 미 육군 포병부대 화력까지 총동원, 적을 패퇴시켰던 고인의 활약상은 해병 포병사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나머지 6명 동기와 달리 석비도 아닌 목비에 이름을 올린채 홀로 누워 있는 고인.
그 유택 앞에서 동기 19명, 부인 9명 등 참배자 28명은 솟구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지난 5월 12일 고인 발인 때는 35기 동기 중 처음으로 대통령 근조기가 전달된 바 있다.
장수근 동기회 총무는 지난 1일 추도사에서 “어찌도 그리 일찍 가족과 동기들 곁을 떠났소? 너무 서운하고 야속하구려. 김 동지. 해병학교 35기 동기회를 누구보다 아끼고 또한 많은 도움을 주었던 그대는 진정 35기의 자랑이었고, 긍지였소. 동기여, 이제 천주님 부름 받고 그 분 곁으로 가셨으니 부디 천주님 사랑받는 가운데 천복(天福) 누리시기 바라오. 비록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나긴 했어도 가족과 동기들의 그대 그리워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다오”라고 애도했다.

■ 애도와 슬픔 쌓인 국립서울현충원
유족과 참배객들의 애도와 슬픔이 군악대 진혼곡 연주에 실려 서달산 봉우리와 계곡에 켜켜이 쌓였다.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
이 날만이라도 잠에서 깨어나 6월의 밝은 태양과 푸르른 날을 함께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35기 동기회는 두 명 동기와 구대장 유택에 이어 제2여단(청룡부대) 5대대 27중대(중대장 송재신 대위) 전몰 아홉 해병 묘소도 참배했다.
35기 참배자들은 후보생과 해병학교 중대장으로 인연을 맺은 송재신 대위를 대신해 9명 묘소에 소주 한 잔씩을 올리고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송재신 중대장은 현재 미국 LA에 거주중이다.
일행은 26묘역에서 옛 전우를 찾아온 27중대 출신 윤재화, 최정구 해병과 故 서정수 중사(26묘역 1133) 형님도 만나 위로, 격려했다.
27중대 해병 10명의 전몰은 참으로 안타까운 희생이었다.
청룡부대 5대대는 1967.7.14. 추라이에 도착, 여단 예비대가 되었다.
“중대본부 대원들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송재신 중대장 방침에 따라 27중대 본부는 매복대를 운영했다.
1967.8.30. 여단본부 인근 교량 수로에 투입된 본부 매복대는 교량 건너편 월남 민병대가 슬그머니 자리를 뜨면서 27중대 매복대 위치와 병력 정보를 베트콩에게 흘리는 바람에 야습을 당했다.
故 서정수 하사가 인솔한 1개 분대 병력 중 생존자는 3명. 월남 도착 1개월 16일만의 참변이었다.
중대장은 반격대 투입 승인을 요청했으나 대대는 “야간이라 위험하다. 여단 특공중대를 보낼 터이니 참으라”고 말렸다.
송재신 중대장은 그날 받은 쇼크로 5일 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다.“이제 님들이 가시고 남은 자리에
가눌 수 없는 슬픔이 고입니다.
눈물이 새로운 눈물을 불러 넘쳐
보내드리고 싶어도 보내드릴 수 없는 가슴 저림으로
통곡하며 무릎 꿇습니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 바친 9명 동기. 35기는 날이 갈수록 그 충성과 희생이 새로울 것으로 믿으며 고인들에게 하직을 고하고 현충원을 떠났다. 【기사 제공 : 장수근 해병학교 35기 동기회 총무】

지난 6월 6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추모 행사를 실시했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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